[비즈엔터 김소연 기자]
스타가 밥을 잘 먹기 위해서는 정갈하게 차린 밥상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밥상을 차렸던 사람들이 있기에 빛나는 작품, 빛나는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다.
비즈엔터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주 화요일 '현장人사이드'에서 전달한다. '현장人사이드'에는 3개의 서브 테마가 있다. 음악은 '音:사이드', 방송은 '프로듀:썰', 영화는 'Film:人'으로 각각 소개한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에게 듣는 엔터ㆍ문화 이야기
"일요일 밤, 모든 일과를 마친 후 TV를 켰을 때 '드라마 스페셜'이 했어요. 저에게 단막극은 그렇게 소소하게 한 주를 마무리하는 존재였습니다."
2014년 KBS2 드라마 스페셜 '카레의 맛'에 이어 올해 '국시집 여자'에 출연하게 된 전혜빈의 말이다.
한류로 인해 드라마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인 작가와 연출자를 배출하며 드라마 산업의 기틀이 되는 단막극은 시장성을 이유로 외면받고 있다. 한 때 지상파 3사 모두 단막극을 통해 신인 작가를 배출하고, 신인 연출자에게 기회를 줬지만 이제는 KBS의 '드라마 스페셜'만이 남아 있다. KBS가 올해 '드라마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작품은 10편. 1년 내내 방송되던 이전과 비교해 다소 줄어들었지만 시대극, SF, 학원물, 멜로 등 다양한 장르와 볼거리로 시청자들을 만족시키며 일요일 오후 11시 40분, 일주일을 마감하는 존재가 됐다. '드라마 스페셜'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 올해에 이어 2017년 '드라마 스페셜'을 책임 총괄하는 지병헌 KBS 드라마제작센터 팀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지난 11월 27일 '피노키오의 코'를 끝으로 총 10편의 '드라마스페셜 2016'이 마무리됐다. 소감이 어떤가.
지병현 팀장:(이하 지병현) 아쉬움도 있지만 기대 이상으로 잘 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일단 내년 방송 여부나 일정이 일찍 결정돼 빨리 준비할 수 있게 된 점이 성과 같다.
Q: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아쉬웠고, 어떤 부분이 좋았던 건가.
지병현:아쉬움을 느끼는 건 직업병인거 같다. 프로그램을 보면 항상 아쉬운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이건 이렇게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항상 한다. 이 직업을 갖기 전까진 영화도 재밌게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 장면은 감정 연결이 좋지 않네', '필요없는 장면이네' 이러면서 보게 된다. 좋았던 건 생각보다 다양하고 여러가지 드라마들이 나왔고, 그 자체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았던 점이다.
Q: 내부적인 평가는 어떤가.
지병현:좋았다. 그래서 내년에도 10편을 진행하기로 일찍 확정된 거다. 이전엔 '어렵지만 다시 검토하자' 이런 말도 많았다. 사업성이 없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단막이 나가는 걸 보고 경영진이 '이정도 퀄리티면 우리가 헛쓰는게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한거 같다. 고맙게 판단해주신 거 같다.
Q:단막극을 하는데 1년 지원 금액은 어느 정도인가.
지병현:회사에선 거의 1년에 거의 10억원 정도를 쓴다. 단막을 하는데 수익을 보는게 아니다. 전체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크게 부담이 안 될 수 있는데, 경영상으로 힘들어지는 상황이다. 그래서 여유 돈으로 해야하는 느낌이랄까. 편수나 퀄리티를 좋게 하려면 협찬도 따와야 한다.
Q:'드라마 스페셜'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적정 수준의 예산이 어느 정도인가.
지병현:거꾸로다. 주어진 예산에 맞춰 좋은 질을 만드는게 1차적인 목표다. 예산이 확보되면 좋게 만들 여지가 많다. 소품도 리얼하고, 의상, 촬영날짜 모두 그렇다. 마지노선은 1억5000만원 정도인 거 같다.
Q:그 정도면 일반 드라마와 비교했을 때 팍팍한 예산 아닌가.
지병현:스태프, 연기자는 단막은 보통 미니시리즈에 비해 70%에서 60% 선의 금액만 받고 해주고 있다. 의미있는 작업을 함께 한다는 데 의의를 두는 거 같다. 그리고 중요한 건 돈이 아니다. 만드는 사람이 어떤 콘셉트를 갖고 어떤 스토리를 갖고 가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Q:10부라서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다.
지병현: 일단 확정된 건 10부까지지만 늘어날 여지는 있다. 회차가 늘어나는 건 다른 식의 투자가 필요한 부분이다. 신인한테 중요한 건 '이번에 잘했어. 다음에 주목할께' 이거보단 적정의 횟수가 보장되야 하는 거 같다. 그래야 반성해서 할 수 있으니까. 이번에 입봉한 PD가 3명이다. 여기에 입봉 2년차 PD들이 주축이 돼 단막을 하는데 그런 사람에게 중요한건 자기 반성과 자기 발전을 할 수 있는 횟수를 늘리는 거다. 결과적으로는 돋보이는 연출, 작가가 좋은 길을 갈 확률이 높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 친구가 또 잘할 수 있는 게 있다. 그게 단막이 중요한 이유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적정한 기회를 주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거 말이다.
Q:올해 '드라마스페셜'은 방송도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편성도 6월에서 9월로 미뤄지지 않았나.
지병현: 편성이 미뤄지는 건 제가 요청했다. 월드컵은 주목도가 많은 장르라 겹치지 않게 했다. 또 월드컵이 브라질에 열리다보니 주말에도 중계 때문에 편성이 빠지게 되더라. 그러면 '드라마스페셜' 쪽에선 손해가 아닌가 싶어서 끝나서 하자고 했다. 그래서 서운하거나 한건 아니다.
Q:그래도 일찌감치 작업이 마무리 돼 후반작업이 이뤄진 것 같다.
지병현:미리 만들어서 좋은 점이 후반 작업을 많이 할 수 있다는 부분인 거 같다. 그래도 제일 더울때 촬영을 해서 그 부분은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올해 여름은 유달리 더 더웠으니까.
Q:1983년부터 2008년까지 '드라마게임', 이후 2010년 '드라마스페셜'로 부활 이후 위기 상황에도 단막극은 계속돼 온 것 같다.
지병현:이름만 바뀌었지 30년 이상 해 온 것 같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연출자의 부담이 커졌다는 점이다. 몇 년 전만해도 1년, 52주 매 주 단막극이 방송됐다. 이게 연출에게 좋은 점은 자기 색에 맞춰서 처음엔 뭐하고 두 번째엔 뭐하고 그렇게 드러낼 수 있었다. 지금은 연출 개인별로 하나밖에 못하니까, 모든걸 다 담고 싶을 수 있다. 제 개인 생각은 단막은 하나의 콘셉트로 깊게 파는게 좋다고 본다. 그런데 연출자 입장에선 하나밖에 못하니까 집중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Q: 올해도 4부작이 방송되긴 했지만 '드라마스페셜'이란 타이틀은 아니었다. '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는 사라진 건가.
지병현:52주로 방송 될 때엔 단막극도 수익성 내야하지 않겠나. 그래서 반은 연작으로 8부작, 4부작을 선보인 거다. 드라마적으로 성과는 있었다. 더 좋은 작가, 연출이 배출되고 인연을 쌓았다. 그런데 수익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점점 줄여지고. 지금의 단막은 앙꼬만 남게 된 거다. 그래서 꼭 지켜야 한다.
Q:단막극 제작 과정은 어떻게 되나.
지병현:인턴 작가와 작업을 많이 하는데 인턴 작가가 한달에 한편씩 각본을 제출하고 학평회를 한다. 그걸로 할 수 있지만, 학평회를 통해 자신과 코드가 맞는 혹은 본인이 생각하는 아이템을 가장 잘 써줄 수 있는 작가를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걸 기획하기도 하고. 쓰신 걸 작업하기도 한다. 인턴이 아니라 다른 작가들이 있으니까 여기저기서 계속 읽어본다.
Q: 대본 작업 기간은 어느정도 인가.
지병현:잘되면 2주 만에도 나온다. 안되면 4달도 모자라다. 평균적으로 2~3달 본다. 기존에 있는 대본이면 기간이 짧아진다. 수정이 안되서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Q:현실적으로 연출자가 단막극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지병현:맞다. 보통 공동연출, 프로듀서를 하면서 작가와 대본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 여기에만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3달 정도다. 방송 전까지 계속 준비한다고 본다면 6개월 정도다. 빠듯한 일정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70분에 6달 준비면 여유 있지 않냐'고 오해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촬영하는데 스케줄이 7일이라고 하면, 이걸 조율하는데 2주 이상 걸린다. 후반 작업은 일주일. 음악 콘셉트도 모두 새로 정해야한다.
Q:개인적으로는 몇 개의 단막극을 작업했나.
지병현: 1998년 입사해서 4-5개 정도. 입봉작과 2011년 '딸기 아이스크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제일 고생을 많이해서 그런거 같다.(웃음) '딸기 아이스크림'은 3년된 연인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드라마다. 만들면서 이렇게할지 저렇게할지 고민이 많이됐고, 관련됐던 사람들이 모두 '재미없다'고 했다. 그런데 완성본을 보시곤 다들 좋아하시더라.
Q:단막을 작업할 때 다른 드라마와 차이점이 있다면.
지병현:성공보단 '잘만들겠다', '부끄럽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큰 것 같다. 다른 드라마도 물론 그런 생각을 갖지만, 시청률을 좀 더 염두하게 된다. 그래서 단막을 같이했던 작가는 아주 싸우거나 친해지거나 둘 중 하나다. 저는 친해졌다 생각하는데 모르겠다.(웃음).
Q: 드라마 스페셜 팀장의 역할은?
지병현: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업무는 제작비 관리다. 예산이 넘치면 안되니까. 적정 정도 내에서. '이걸 좀 써도 되겠다'. '아껴야 하지 않겠나' 이래서 목표치를 제시한다. 보통 입봉자에겐 좀 더 쓰게한다. 대본은 좋은데 어느 연출이 해도 돈을 들일 수 밖에 없으면 더 많이 예산을 책정하기도 한다. 또 중요한 게 연출과 대본을 협의하는 거다. 이를 통해 균형을 맞춘다. '이건 누구와 겹친다'고 각 연출자들간의 균형을 조절하고, '넌 작년에 이건 해보지 않았냐'하고 각 연출 개개인의 밸런스도 맞춘다.
Q: 이 일은 어떻게 하게 된건가.
지병현:시켰으니까 한 거다. 개인적인 선택은 아니다. 전 안한다. 힘들다.(웃음) 제 뜻대로 해서 좋구나로 느낄 수 있지만 '이렇게 하면 좋았을텐데'를 반복적으로 보는게 즐거운 과정은 아니다. 그런데 지켜봐야 한다. 끝까지 책임져야 하니까. 장기나 오목의 훈수두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된다. 생각도 못하게 이기기도 하지만 훈수를 안들어서 지는 걸 지켜봐야 해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도 일단 지켜본다. 원칙은 조언은 하지만 반대하거나 못하게 막지는 않는 거다.
Q:가장 어려운 점 혹은 부담이 되는 부분은 무엇일까.
지병현: '드라마 스페셜'이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사업성은 안되지만 만드는 의의를 보여줘야 하는 거다. PD 자발성 끌어내야하고,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시청률 잘나오면 성공이고. 만약 올해 잘못되서 내년에 '드라마 스페셜'이 못되면 어떡하나. 큰 부담이다.
Q: 그렇게 어렵게 작업을 해도 발굴은 KBS에서 하고, 남 좋은 일 시킨다는 반응도 있다.
지병현:그런 건 어쩔 수 없다. 우리 회사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도 마찬가지인데 위험을 많이 짊어지기 싫어한다. 작가들이 잘되면 계약을 해야한다. 근데 그 이후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방송사는 편성권이 있으니 '대본이 나오면 보자' 이렇게 된다. 방어적이 된다. 외주사는 이 작가를 가능성이 있을 때 잡아야 하는거다. 10편중에 하나라도 성공하면 빨리 잡아채는 거고. 그래서 우리는 작가가 외주사와 계약을 하면 축하하면서 보내준다. 우리가 인큐베이팅을 했다고 구속하는 건 옳지 않은 거 같다.
Q: 2017년 '드라마 스페셜'은 어떤 모습일까.
지병현: 극본 공모 당선작이 6개 뽑혔고, 그 중 2개 이상을 할 생각이다. 작가를 발굴하고, 연출자가 자기 색깔을 찾게 해주고 싶다. 올해 입봉 PD는 3명이다. 이들에게 새로운 연출과 웬만하면 신인 작가와 대본 작업을 하길 권장하고 추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