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인터뷰, 약간 ‘아사리판’ 될 것 같아”(양성민) “약간? 몹시겠지!”(최아람) 인터뷰 조율을 위해 SNS 메신저로 소환된 양성민 대표와 최아람 대표가 주거니 받거니 서로를 공격하며 만담을 나눈다. 술을 가볍게 마시며 인터뷰를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오자, 이번엔 백승환 대표가 빠르게 치고 나온다. “낮에 해도 ‘망삘’인데 밤에 하면 이거…” 인터뷰에 나서기도 전에 ‘가장 믿지 못하는 건 본인들의 혀’라고 눙치는 유쾌한 세 남자의 공통점은 CJ엔터테인먼트 출신이라는 점. 국내 굴지의 엔터회사에 몸담고 있던 세 남자는 최근 당당히 독립을 선언, 각자의 영역에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그러니까 이번 인터뷰는 한때 직장동료였던 세 남자가 서로의 활동을 응원하고, 영화/연예 비즈니스 세계에서 느낀 소회를 풀어보자는 의미로 기획됐는데, 의외의 재미는 물론 의미도 덤으로 얻은 자리였다. 인터뷰 땐 그들의 유머에 회유당해 정신을 못 차렸는데, 집으로 돌아와 녹취를 풀어보니 말 사이 사이에 곱씹어볼만한 지점들이 상당했다.최아람: 제작사 ‘영화사람’ 대표. CJ엔터테인먼트 마케팅팀과 투자제작팀을 거쳐 지금의 제작사를 차렸다. 그 어떤 사진에서도 ‘엄지척’ 포스를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덕분에 그가 담긴 사진들은 ‘윌리를 찾아라’ 수준의 재미를 보장한다. 올해 4월 ‘임금님의 사건수첩’을 들고 나올 계획. 흥행에 성공하면 ‘10년 묵은 돔페리뇽’을 따겠다는 포부다.
양성민: 매니지먼트 YNK엔터테인먼트 대표.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 시절, 특유의 친화력으로 배우들을 형·누님·동생으로 만들었던 양성민 대표는 그러한 자신의 장점을 살려 캐스팅 전면에 나선 케이스다. 지난 해, 같은 팀원이었던 김민수 대표와 독립해 직접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렸다. 임수정 신혜선 등이 현재 YNK에 소속된 배우다. 배우 지망생들을 위한 책 ‘배우를 찾습니다’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오늘도 찾아 나선다. 좋은 콘텐츠로 인도할 가능성 많은 배우들을.
백승환: 제작사 ‘백그림’ 대표. 이번 대담의 막내인 백승환 대표는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를 거쳐 제작사를 차린 다소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모 영화인은 백승환 대표를 가리켜 “그의 외모는 샤이니 민호에서 차이밍량으로 변했지만 풍류를 즐기고 영화를 사랑하는 모습은 한결같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단편영화 제작에도 힘을 쏟고 있는 영화바라기다. 지난 9일 개봉한 창립작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를 통해 진짜 제작자로 태어난 그는 개봉 당일 인터뷰에 나서는 신인제작자 답지 않은 담대함을 보였는데, 인터뷰 중간 수시로 업데이트 되는 흥행스코어 앞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Q. CJ엔터테인먼트 출신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관계이니, 그 시작을 좀 듣고 싶다.
최아람: 2002년에 CJ엔터테인먼트 공채로 들어갔다. 지금은 그룹공채로 바뀌었는데, 당시는 계열사 공채였다. 딱히 입사 시험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남산 본사에 전 직원이 30여명밖에 안 될 때였다. “너, 주변에 영어 잘 하는 사람 있어?” “사람 필요해? 잠깐만!” 식의 추천채용이 난무했다.(웃음) 영화과 출신으로는 내가 CJ엔터테인먼트 최초 팀원이었다. 영화과 출신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구경하러 오고 그랬다. 그런데 나 이후로 다시는 계열사 공채를 안 뽑더라.(웃음)
양성민: CJ입사는 2004년인데 엔터에 간 건 2010년이다. 제일제당 그룹 홍보실에 있다가 나중에 엔터에 합류했다.
백승환: 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2009년에 합류한 케이스다. 이전 CJ미디어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CQ프로그램이 있었다. CJ 콘텐츠 큐레이터 20명을 선발해서 운영하는 제도였다. 거기에서 최종 1등을 하면 인턴 기회가 주어졌다. 인턴을 거쳐 입사했다.
최아람/양성민: 정말? 이건 우리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백승환: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의 김경원 감독이 그때 나와 같은 기수에 있던 친구다. 그 친구가 더 잘 했는데, 내가 어떻게 잘 비벼서 입사 기회를 얻었다.
Q. 팀은 모두 달랐는데 지금까지도 굉장히 막역하게 지내는 것 같다.
최아람: 놀기 좋아하는 애들은 아무리 떨어뜨려 놓아도 모여서 노는 법이다.
양성민: 사무실에 앉아서 조용히 일하는 유형이 있고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유형이 있는데, 우리 셋은 후자였다. 빨빨거리면서 사무실을 종횡무진 돌아다녔다.(웃음)
백승환: 돌아다니다가 마주치고, 마주치면 1층 커피숍에 모여서 수다 떨고.
최아람: 누가 새로 입사하면 괜히 가서 말 걸고 그랬던 시절이다.
Q. 지금은 제작자와 매니지먼트 대표로 변신했다. 원래 계획에 있던 행보인가,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뀐 건가.
최아람: 중앙대학교 영화과에 들어갈 때부터 꿈이 감독이 아니라, 성공한 제작사 사장이었다. 제작자는 됐으니, 이제 성공만 하면 된다.(웃음) ‘굿바이 싱글’ 흥행? 그건 공동제작이었고, 발만 살짝 담근 거라서 내 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선균-안재홍과 찍은 ‘임금님의 사건수첩’(4말 개봉)이 진짜 첫 시작인 셈이다. 손익분기점(BP)이 300만이 넘는 영화인데, 쟁쟁한 경쟁 작들이 있고 대선이 맞물린 시기에 개봉한다. 휴~
양성민: 매니지먼트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얼마 안됐다. CJ엔터에 있을 때 김민수 대표(YNK 공동대표)를 만났다. ‘MAMA’와 같은 대형 이벤트를 담당하다가, 김민수 대표와 아티스트를 캐스팅하고 성장을 지원하는 ‘TAR/캐스팅팀’에서 함께 활동했다. 매니저 출신인 김민수 대표와 ‘나중에 우리끼리 매니지먼트를 한번 해 보자’라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백승환: 전공이 영화는 아니다. 경제학과-신방과를 나왔는데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씨네필이었다. 졸업 후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싶었는데 녹록치가 않더라. 사실 저예산 영화를 좋아해서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와 ‘스폰지’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런데 거기는 다 떨어지고 CJ엔터에 덜컥 합격했다. 묘하게 일이 풀린 거다.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님과 상당히 친한데, 지금도 만나면 농담으로 그런다. “감사합니다! 그때 떨어뜨려주셔서!”(일동웃음) 독립을 한 건,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다. 제작이든 뭐든 30대에 데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Q. CJ엔터와 백그림의 행보 사이에 쇼박스가 있다. 2012년에 쇼박스로 옮겨서 투자팀에 몸담았는데.
백승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보면 송강호 선배(지역토박이 형사 박두만)는 직감수사를 하고 김상경 선배(서울출신 형사 서태윤)는 과학수사를 한다. 배급도 이전엔 감배급·술배급이었다면, 지금은 과학배급·시스템배급·숫자배급이다. 내가 영업에 좀 특화돼 있는 편이었는데, 이게 혼재돼 있던 당시 배급 일을 굉장히 즐겁게 했다. 다양한 영화를 만나고, 영화 개봉하면 지방 돌아다니고, 술 마시고…(웃음) 내 어필을 좀 많이 하면서 돌아다녔더니, 쇼박스와도 인연이 닿았다. 투자에 관심이 있을 때 옮겨서 활동하다가 독립을 했다.
Q. 양성민 대표는 CJ엔터를 퇴사했지만, 여전히 CJ엔터의 캐스팅 업무를 맡고 있다. 이런 사례는 처음이다.
백승환: 역시 그룹공채 출신은 다르다!(일동웃음)
양성민: 감사한 일이다. 캐스팅 관련해서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다만 매니지먼트를 병행하는 입장이라 조심스러워진 건 있다. 섭외를 하다보면 부탁을 하기도 하고 제안을 하기도 하는데, 캐스팅은 사실 거절의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소속 배우로 인해 거절을 해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두 개를 병행하다보니까, 거절할 때 코멘트 하나라도 더 신경을 쓰게 되더라.
최아람: 투자도 제작도 매니지먼트도 결국 ‘거절의 미학’인 게, 어떤 일정을 하나 들어간다는 건 다른 일정들은 모두 불가능하게 된다는 의미다. 거절을 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거다. 하지만 어떤 작품에서 또 만나게 될지 모르기에, 거절을 정말 잘 해야 한다.
양성민: 그래서 회사 직원들에게 늘 이야기 하는 게, “우리는 갑도 아니고 을도 아니라고 생각하라”다. 포지션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일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절대 갑도 없고, 절대 을도 없다고 생각한다.
Q. 두 분을 비롯, ‘리양필름’ 이한승 대표 등 투자배급사 출신의 제작자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최아람: 많은 투자배급팀이 있다. CJ엔터 안에도 팀원들이 많은데, 그 모든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CJ에 다닐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건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일거다. 임원 수는 한정돼 있고 사람은 많으니까. 그렇다면 넥스트 플랜인데, ‘나도 언젠가 제작사를 차려야 하나’라는 게 있지만 그게 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정태성 대표(현 CJ엔터 영화사업부문 대표)가 “독립하는데, 우리가 도와 줄 거 없냐?”고 하면서 사무실도 임대해 주고 하신다. 그 형님들은 알거든.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CJ엔터에서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응원을 많이 해 주신다. 함께 제작을 하기도 하고.
양성민: 나 역시 그런 케이스인 셈이다. CJ에서 캐스팅 일을 떼어 준 것도 그런 점에서 지원을 해 준거지. 어쨌든 콘텐츠를 만들려면 제작이든 감독이든 작가든 분업해서 해야 하는데, ‘배우 쪽 관련된 건 네가 한 번 해 봐라’가 된 거다. 그렇다고 ‘우리, CJ 출신이니까 뭉치자’ 이런 건 절대 없다. 정글에 놓인 동료들로서 서로 응원 할 뿐. 그리고 투자배급사 출신 중에 개인회사를 차려서 아직 자리를 잡은 사람이 없다. 그러니 서로 ‘으싸으싸’ 해줘야지. 서로 고기도 사 주고 하면서.
최아람: 그런데 너희 너무 먹더라? 얼마 전에 “고기 사 줄 테니까 나와”했더니 YNK 전 직원을 데려왔다.(일동웃음)
양성민: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CJ엔터에 있을 때에도 아람 형과 승환이는 영화인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외부에서 봤을 때 “그냥 CJ에서 일하는 팀원”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있고 “저 사람은 영화인이 다됐네” 싶은 경우가 있는데, 두 사람은 후자였다. 사실 투자배급사 직원을 향한 편견 아닌 편견이 있다. ‘너희가 정말 영화인이냐?’ 식의 편견 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그럼 이물감 없이 영화 현장과 다방면에 잘 동화된 케이스다.
최아람: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렇다. 또 내 경우에는 영화를 전공하다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동기이고 선후배들이다. 그러다보니 현장에 나갈 때도 투자배급사 일원이라기보다 영화인이라는 생각이 좀 강했던 것 같다.
Q. ‘영화사람’과, ‘백그림’이 지향하는 영화는 뭔가.
최아람: 재밌는 오락 영화. 관객들이 보면서 즐거워하는 영화가 좋다.
백승환: 나 역시 상업영화를 준비 중이긴 한데, 젊을 때 작은 영화를 조금 더 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 면에서 작년에 본 영화 중 인상 깊었던 건 ‘우리들’이다. 신생영화사 ‘아토’의 좋은 데뷔였던 것 같다. 이게 끼워 맞추기일 수 있지만, 저렇게 데뷔하고 싶은 마음이 있던 차에 운 좋게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를 창립작으로 내놓게 됐다. 투자가 어떻게 될지 몰랐는데, 배급사 ‘콘텐츠판다’에서 재미있게 봐 주셔서 개봉까지 올 수 있었다.
Q. 투자팀에 있다가 투자 받는 입장이 됐는데, 어떤가.
최아람: 반성하고, 돌아보게 되지~(웃음)
백승환: 맞다. 사실 투자팀이라고 해서 모든 시나리오를 꼼꼼히 읽는 건 아니다. 아람 형도 많이 느낄 텐데 투자팀과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이 사람이 내가 준 시나리오를 꼼꼼하게 읽었는지 아닌지’가 바로 느껴지거든.
최아람: 바로 알지.백승환: 나도 투자팀 직원으로 그랬던 순간들이 있었다. 바쁠 때 리뷰를 좀 서운하게 해 드렸던 제작자들이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는 말씀을…….(일동웃음)
Q. 10년 넘게 영화 비즈니스 세계에 발 담그고 있다. 시장의 변화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있을 것 같다.
최아람: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 제작 과정이 많이 체계화 됐다. 투자배급사가 제작·마케팅에 전혀 터치 안 하던 시기를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여기엔 장단점이 있다. 효율적인 부분에선 분명 좋아졌다. 이전에는 이유 없이 5억 원 씩 구멍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런 부분이 보다 투명해졌다. 다만 너무 시스템화가 되고, 또 그것이 상향평준화 되면서 각 파트의 담당자들이 역량을 발휘하기 힘들어진 면이 있다. 개별의 독특한 아이디어들이 특화되기에는 위에서 너무 숫자-숫자-숫자 하니까. 시나리오도 점수로 매겨지고. 그러다보니 인사이트를 발휘하기가 힘든 구조인 건 아쉽다
Q. 2003년도는 ‘올드보이’(박찬욱) ‘살인의 추억’(봉준호) ‘장화홍련’(김지운) ‘지구를 지켜라’(장준환)등의 수작이 쏟아져 나온, 그러니까 한국영화 에너지가 기이하게 뜨거웠던 해였다. 많은 이들이 독창적인 한국영화가 쏟아져 나온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최아람: ‘지구를 지켜라’ ‘살인의 추억’은 내가 마케팅 했던 영화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슈퍼스타 감사용’(2004)도 그때 담당한 영화인데, 당시는 제작자의 힘이 컸다. 좋은 기획을 밀어붙이려는 제작자들의 동력도 컸고. 제작과 기획의 힘이 컸기에 보다 다양한 영화들이 나올 수 있었다. 만약 지금의 시스템이었다면, ‘플란다스의 개’(2000)로 망한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백승환: 투심(투자심사) 통과부터 애를 먹겠지.
최아람: 어렵겠지. 투심을 제일 먼저 했던 영화가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다. 그 영화 역시 내가 마케팅을 담당한 직품인데, 투심 자리에 제작자인 오정완 대표와 당시 PD였던 이유진 대표(현 ‘영화사집’)도 들어와 있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막 이야기 하는데, 그걸 보는 오정완 대표는 황당했겠지. ‘스캔들’ 제작비가 45억 정도였는데, 결론은 ‘45억에 사극은 너무 부담스럽다!’였다. 그래서 투심반대 결론이 났는데, 그걸 전해들은 당시 CJ엔터 대표가 “응, 그래 알았어. 투자 해.” “네? 이게 이러이러해서 안 될 것 같습니다” “응, 알았어. 투자해” 하면서 영화가 들어갈 수 있었다.(일동웃음) 그러니까 리더의 직관도 컸던 때였던 셈이다. 대표는 ‘스캔들’을 믿었던 거다. ‘이건 된다!’고.
Q. 지금은 투심의 힘이 너무 세졌다. 투심에서부터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검열을 받게 된 상황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도 많고.
최아람: 이젠 투심반대 상황에서 투자가 들어가기란…
백승환: 누군가 한 명이 나서서 총대를 메기가 엄청 부담스러운 시장이다.
최아람: 그땐 “내가 책임질 테니까, 해!” 이런 게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