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김소연 기자]
스타가 밥을 잘 먹기 위해서는 정갈하게 차린 밥상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밥상을 차렸던 사람들이 있기에 빛나는 작품, 빛나는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다.
비즈엔터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주 화요일 ‘현장人사이드’에서 전한다. ‘현장人사이드’에는 3개의 서브 테마가 있다. 음악은 ‘音:사이드’, 방송은 ‘프로듀:썰’, 영화는 ‘Film:人’으로 각각 소개한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에게 듣는 엔터ㆍ문화 이야기.
화룡점정(畵龍點睛). 용을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 KBS2 수목드라마 '김과장'의 화룡점정을 꼽으라면 양경수(33) 작가가 아닐까. 양경수 작가는 온라인에선 그림왕양치기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인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직장인들의 속내를 시원하게 표현하는가 하면, 아기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그림으로 사랑받았다. 그리고 '김과장'에서는 극의 엔딩을 장식하는 삽화를 맡아 이 작품을 더욱 특별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김과장'을 비롯해 다양한 작업을 진행중인 양경수 작가를 만났다. 드라마 작업 특성상 촉박한 스케줄 때문에 빨리 그림을 완성해야 되는 상황. 그래도 양경수 작가는 "그 자체로 새롭고 재밌다"면서 '김과장'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Q:'김과장'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
양경수:제작진에게 메일이 왔다. 같이 작업을 하고 싶고,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 이전까진 전혀 모르고 지냈던 분들이라 그렇게 연락이 닿았다. 미팅 전까지 갈팡질팡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 분들을 만난 순간 빠져버렸다. 정말 아이디어가 많은 분들이더라. 이 드라마는 재밌을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디어에 아이디어를 더하니 잘될 수 밖에 없지 않나.
Q: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양경수: '김과장' 방송일이 수요일과 목요일이다보니 가편집본은 화요일, 수요일쯤 나온다. 그 가편집본을 보고 포인트를 잡아 그림을 그린다. 이전엔 엔딩만 보고 그렸는데, 이젠 내용 전체를 보고 그리고 있다. 물론 제 욕심이다.(웃음) 20초 분량에 삽화가 3개 정도 들어간다. 작업 시간은 8시간 정도다. 힘들 때도 있지만 저보다 '김과장' 현장 스태프들이 더 힘들다는 걸 아니까. 전 '김과장' 제작진들이 참 좋다.
Q:'김과장' 촬영장에 간식도 쐈다고 하더라. 정말 애정이 많은 거 같다.
양경수: 재밌어서 좋다. 재미 없었다면 그냥 관심을 갖는 정도였을 텐데, '김과장'은 본방까지 꼭꼭 챙겨본다. 이렇게 본방을 챙겨봤던 드라마는 1998년 SBS '미스터큐' 이후 처음인 거 같다. 그 이후엔 나이먹으면서 다른 것들도 할 게 많다보니 굳이 본방을 챙겨보지 않았다. 본방에는 가편집본엔 없던 음향 등 여러 효과가 더해져 느낌이 또 다르다. 정말 재밌다.
Q:그래서 카메오까지 출연한 건가.
양경수: 한 번 쯤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간식을 드리러 갔다가 "지나가는 행인1 정도 시켜주시면 가보로 간직하겠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했는데, 이재훈 PD가 즉석에서 "사무실에서 앉아있는 역할을 하라"고 하시더라. 앉아있다가 김원해 씨와 크로스해서 지나가는 것까지 제 역할이었다. 정말 떨렸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TQ사원이다', '일하기 싫다'라고 몇 번이나 생각하고 되뇌었다. 나름 메소드 연기였다.(웃음) 그런데 갑자기 김원해 씨가 갑자기 "계급이 뭔데 인사를 안해"라고 즉석에서 애드리브를 하시더라. 정말 대배우라는 걸 느꼈다. 재밌었다.
Q:양경수 작가가 그린 '김과장'의 엔딩이 사랑받는 이유는 톡톡튀는 아이디어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영감들은 어디서 얻는 건가.
양경수: '김과장'을 보면 떠오른다. 그리고 다른 부분들은 책, 만화 등 다른 콘텐츠를 통해 채워 넣는다. 제가 만화 '덕후'다.(작업실 벽을 가득 채운 만화책과 피규어들을 가르키면서)저기에 놓지 못한 피규어가 400개 정도 더 있다. 그래서 '드래곤볼' 초사이언인, '슬램덩크' 강백포의 디펜스도 생각한거다. 만화 중에서는 '원피스'를 가장 좋아한다. '원피스' 때문에 군대도 해군으로 갔다. '그림왕'이라는 이름도 '원피스'에서 따왔다.
Q:온라인에서 그림을 그리는 웹툰 작가인줄 알았는데, 불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서양화식으로 그리는 작가로도 유명하더라.
양경수:지난 2월까지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에서 진행된 기획전에 그림이 전시되기도 했다. 전시회를 1년 정도 했는데 한 번도 직접 가서 보지 못했다. 3박4일이란 시간이 안나와서 못갔다. 독일에서 또 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그땐 꼭 가보려 한다.
Q:왜 불화와 서양화인가.
양경수:저희 부모님은 불화를 그리시는 분들이다. 저는 서양화 양식을 좋아했고, 그래서 학교도 추계예대 서양화과로 진학했다. 미술은 크게 동양화, 서양화, 판화 이런 식으로 나누는데, 대학에선 그런 기술을 가르켜 주지 않는다. 학교는 학원이 아니니까. 일단 유화, 아크릴화를 좋아하면 서양화과, 먹을 좋아하면 동양화과를 가고 자기 사상은 그곳에서 진화시키는 거다. 저 같은 경우,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대학에 와서 보니 제 뿌리는 불교였다. 모든걸 거부하고 나왔지만, 전 불교적인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다. 불교에선 신격화가 없다. '붓다'라는 뜻 자체가 깨달은 자인데, 내가 깨달으면 내가 붓다다. 이게 가장 핵심이다.
Q:그럼에도 양경수 작가의 작업 방식은 '혁신'이라는 평가다.
양경수:
2600년전 불교가 처음 나왔을 때에도 불교의 모든 것들은 새로운 문화였다. 잘생긴 왕자가 모든걸 다 버리고 "내려놓음"을 이야기 하니 얼마나 멋있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독보적인 셀럽이 된거다. 그런데 그런 내용들을 어렵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통도 좋지만 그걸 현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지켜나가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Q:유화도 그리고, 컴퓨터로도 그림을 그린다. 다양한 환경에 똑똑하게 적응을 한 거 같다.
양경수: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불화만 그리길 바라셨다. 그 때문에 갈등도 있었다. 고등학교때 미술학원에 다닐 때에도 학원비의 절반만 주셨다. 친구들의 여자친구 얼굴을 그려주는 아르바이트로 학원비를 보탰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했다. 그러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어떻게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던 거 같다. 예술가도 직업 아닌가. 그래서 수익에 대해 계속 생각해왔고, 다른 일을 할 때에도 그림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왔다.
Q:새로운 길을 가다보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 시기와 질투, 공격도 받지 않았나.
양경수: 그냥 제 일에만 집중했다.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살아온 방식이 다르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어쨋든 나오면 무한경쟁 아닌가.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그림은 그렸기 때문에 자존감이 상한다거나 '내가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이런 마음도 없었다. 어차피 계속 그림은 그리고 있으니까. 지금 보면 그렇게 열심히 외부활동을 하고 아웃사이더였던 애들이 다 잘먹고 잘사는 거 같다.
Q:운전, 인테리어, 간판 작업 등 정말 다양한 일을 했더라.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일까.
양경수:밤에 장애인 분들이 만든 복조리를 파는 사람들을 운전해서 술집 밀집 지역에 내려주는 일을 했다. 그걸 팔았던 친구들 중에 지금 요리사, 선생님이 된 애들도 있다. 그때 '돈을 벌고, 일을 하는 것 자체에 높고 낮음이 없구나'란 생각을 했다. 고급스러운 일이라는 게 어떤 건가. "공부해서 휼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공부만 했다가 괴물이 된 사람도 요즘 사회적으로도 드러나지 않았나.
Q: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
양경수:어릴 땐 랩과 춤을 더 좋아했다. 제가 어릴 때 지금처럼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가수가 되지 않았을까.(웃음) 제가 격동의 시기를 살았다. 초등학교 때 SBS가 개국하고, 고등학교 때 H.O.T가 활동했다. 인터넷이라는 것도 학창시절에 처음 등장했다. 요즘은 춤과 랩을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학원도 있었는데, 그땐 평생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을 못한 거 같다. 반면 그림은 제가 좋아하기도 했고, 부모님도 불교 미술을 해서 가업을 잇길 바라셨다. 미술을 하면 지원도 받기 쉬울 것 같았고.(웃음) 그래서 평생할 수 있는 일, 화가가 되기 위해 미대에 진학 한거다.
Q:많은 경험, 일을 했지만 정작 직장인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고 하더라. 그럼에도 직장인들이 공감하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양경수:그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데, 어릴 때부터 사람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을 관찰하고 스케치하는 게 습관이었다. (작은 스케치북 10여권을 보여주면서) 얼마 전에 찾은 것들인데, 이렇게 사람을 그리고 대사를 써놨더라. 이런 호기심 덕분인 거 같다. 어떻게 보면 전 굉장히 산만하다. 학교 다닐 때에도 '주의 산만', '정서 불안'이란 평가가 항상 따라왔고, 지금도 작업할 때엔 모니터 3개를 한 번에 띄워놓고 한꺼번에 한다. 하나를 집중해서 끝내는 건 아니지만 어쨋든 전 3개를 다 완성은 한다. 이게 제 작업 방식이다.
Q:소위 말하는 '착한 학생'은 아니었던거 같다.
양경수: 학교에 올바르고, 선생님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학생만 있는건 아니지 않나. 그렇게 공부 잘했던 친구들을 보면 지금 그냥 다 회사 다닌다. 열심히 공부했던 친구들을 무시하는게 아니라, 인생이란 레이스는 긴 거 아닌가. 학교에서 "저렇게 놀아서 뭐 먹고 사냐"는 얘기 들었던 친구는 영업으로 외국계 회사 탑이 돼 도끼만큼 차가 있다. 저도 마찬가지고.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거 같다.
Q:학교 생활 외에 부분을 열심히 한 것 같다.
양경수: 요즘엔 '열심히'라는 단어가 맹목적이고 어른들만 하는 말처럼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인생을 살면서 '열심히'는 당연한 거다. 열심히의 반대가 '대충'이지 않나. 세상 사람 중에 스스로 '대충'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나. 기왕 태어난 거 스스로에겐 집중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전 자기 전에도 그림을 그렸다. 대학 가기 전에 노느라 못했던 걸 만회하기 위해 더 열심히 했다. 그리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돈까지 벌 수 있는 지금 행복하다.
Q:우리가 아는 '그림왕양치기'로는 어떻게 데뷔하게 된 건가.
양경수:2013년 스토리 콘티 작가로 일을 시작했다. 머니투데이에 연재한 '비니미'라는 웹툰이었다. 그 다음 해인 2014년 다음 스토리볼에 그림을 그렸고, 2016년 6월 '아, 보람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 수당이나 주세요' 삽화가로 참여하면서 더 찾는 분들이 많아졌다.
Q:그림은 유명해졌지만 그만큼 불펌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난 거 같다. 페이스북 경고 메시지도 봤다.
양경수:
저작권에 대해 개념 없는 분들이 많다. 정말 놀랐던 게, 불법 도박사이트에서도 제 그림을 홍보용으로 가져다 쓰더라. 한 대기업에서도 사내 판촉을 하면서 제 그림을 무단으로 쓰고. 인터넷 그림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거 같았다. 이런 부분에 대해선 소송을 진행 중이다.
Q:악플은 없나.
양경수:다행히 저에 대해선 아직 많지는 않다. 그런데 전 직업적인 걸 많이 그리다보니, 특정 직업군을 비하하거나 논란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나쁜 사람이 어딨겠어요"라고 말하는데, 악플은 그냥 나쁜 거다. 자기 의견을 내는 것과 악플은 전혀 다른 문제 같다. 그냥 제 그림을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아, 이런 애환도 있구나 정도로.
Q:웹툰, 미술가, 화가 다양한 직함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어떤 직업인으로 불리길 바라나.
양경수: 그냥 그림그리는 사람이다. 직업을 콘셉트로 작품을 그리면서 그 직업군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 하고, 직업 자체를 놓고 고민하게 됐다. 직업의 사전적인 의미는 생계를 유지하고, 능력과 적성에 맞게 일정기간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은 그 세가지를 모두 갖췄다. 그래서 전 정말 좋다. 이 일을 대충 하고 싶지 않다.
Q:직업의 의미로 본다면, 일을 해도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다.
양경수: 일을 할 때 개인은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사업 역군을 만들기 위한 쇠놰인 거 같다. 이제 사람들은 똑똑해졌다. 내가 행복해야 하고, 내가 세상의 시작이다. 생계를 유지하고 일정기간 동안 할 수 있는 안정성은 직업의 조건 중 하나인데, 그것만 보고 일을 택하니 직장은 구했는데 직업이 없는 거다. 그러니 일은 대충하고, 이게 우리 사회를 전체적인 패닉 상태로 이끄는 거 같다.
Q:요즘은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 후배들과 또 다른 일을 기획 중인 거 같더라.
양경수:양치기해적단이라고 SNS를 기반으로 작품을 연재하고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특히 작가에게 이거 만큼 자신의 작품을 널리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이 없는 거 같다. 재능도 있고, 좋은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의 작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함께하게 됐다. 그리고 이 일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제가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다. 윤종신, 유희열과 같은 자신의 색깔이 뚜렷한 뮤지션이 회사를 설립하고 후배를 양성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저는 웹툰가도 아니고, 일러스트레이터도 아닌 그저 그림그리는 사람이다. 저 같은 사람이 새로운 수익 구조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