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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재홍 “제가 비범하다고요?”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안재홍(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안재홍(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하고많은 왕 중에 ‘족구왕’이라니.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스펙에 도움이 안 되는 족구에 열정을 쏟으며 행복해 하는 복학생. 그런 복학생 만섭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해 낸 안재홍은, 평범한 듯 비범한 듯 그렇게 묘한 매력을 흩뿌렸다. 이후엔 잘 알려진 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통해 모두에게 모두의 사랑받는 정봉이로 거듭났고 이후 크고 작은 작품들에 출연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런 안재홍에게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큰 자본으로 만들어진 첫 상업영화 주연작이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부담이 있었다. 넓게 짜여진 판 안에서 그 역시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었던 것. 영화에서 안재홍이 맡은 신입사관 이서는 겉은 어리숙해 보이나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은 천재적 기억력의 소유자다. 서글서글한 모습 안에 신중함과 냉철함을 숨긴 안재홍과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Q. 살이 많이 빠졌네요?
안재홍:
아니에요. 메이크업 쉐딩을 해서 그런가….(긁적긁적)

Q. 다이어트 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안재홍:
운동을 하고 있기는 해요. 촬영 중인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 홈쇼핑 대리로 나오거든요. 직업상 캐릭터가 너무 부해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조금 신경을 쓰고 있죠. 따로 PT를 받는 건 아니고요, 그냥 TV 보면서 움직이는 정도에요.

Q. (‘족구왕’ 떠올리며)족구를 하시는 건….(웃음)
안재홍:
앗…족구는 안 한지 오래… 흐흐흐흐흐.

Q. 실없는 소리였습니다.(웃음) ‘임금님의 사건수첩’으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어요.
안재홍:
2년 전에 찍은 ‘조작된 도시’가 올해 개봉하면서 자주 인사를 드리게 됐어요.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이번엔 특히 긴장이 되더라고요. 큰 자본으로 찍은 첫 상업영화 주연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컸죠. 관객 반응이 너무 궁금해서 일반 시사회에 몰래 잠입해서 보기도 했어요.

▲안재홍(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안재홍(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작품에 들어가기까지 고민이 컸다고 들었어요.
안재홍:
너무 이른 게 아닌가라는 고민이 있었거든요. 다행히 ‘1999, 면회’(2012) ‘족구왕’(2013) 등 독립영화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독립영화에서 큰 역할들을 맡으면서 ‘쌓여가는 것들에 대한 믿음’이 생겼거든요.

Q. 쌓여가는 것들이요?
안재홍: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영화를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와 캐릭터에 대한 정보가 쌓이잖아요? 그럼 어느 순간 배우가 무표정을 하고 있어도 관객은 굉장히 슬프게 받아들여 주세요. 반대로 그 표정에서 웃음을 발견해 주시기도 하고요. 그런 경험들이 이번 작품에 들어가는데 큰 용기를 줬던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를 이서(안재홍)의 성장기라고 봤어요. 이서의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하루들이 담긴 영화로요. 배우로서 많은 성장의 계기가 돼 준 영화에요.

Q. 고민 끝에 들어간 현장은 어땠어요?
안재홍:
처음에는 많이 헤맸어요. 처음으로 경험하는 상업영화 현장이다 보니 시야가 굉장히 좁았거든요. 그때 선균이 형이 많이 잡아줬어요. ‘이건 이렇게 해’라고 해답만 던져 줄 수도 있잖아요? 그러지 않으셨어요. 대화로 이끌어 주셨죠. 현장에 자연스럽게 젖어들 수 있도록 말이죠. 3회 차를 찍고 1박 2일 합숙을 했는데, 저에겐 정말 귀한 시간이었어요. 캐릭터와 조금 더 밀착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달까. 선균이 형과도 ‘쿵’ 하면 ‘짝’ 소리가 날 정도로 친밀해졌죠.

Q. 이선균 씨와는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었죠?
안재홍:
홍상수 감독님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을 찍을 때 만났어요. 제가 그때 홍상수 감독님 제자여서 현장에 제작지원을 나갔어요. 소규모로 촬영되는 현장이다 보니까 대화할 기회가 많았죠. “영화과 학생들이야” “그렇습니다” “몇 기야?” “2기입니다” “아 신생학과구나~” 선균 선배님이 한예종 1기세요. 선배 없이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며 느낀 막막한 시절이 떠오르셨나 봐요. “야, 너희를 보니까 과거의 내가 생각 난다”면서 저희를 되게 귀여워 해 주셨어요. 소고기도 사 주시고, 소곱창도 사 주시고!(일동웃음) 저희들끼리는 소곱창 먹으러 못가거든요. 비싸니까.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죠.(다시폭소) 그런 선배와 이렇게 함께 하게 되니, 저에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죠.

Q. 서로를 향한 애정이 영화는 물론, 홍보 과정에서도 보여요. ‘임금님의 사건수첩’ 현장 분위기가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안재홍:
맞아요. 선배님 뿐 아니라, 제작사인 ‘영화사람’ 최아람 대표님과도 잘 어울렸어요. 지금도 친하게 지내요. 저희가 지방 촬영이 많았어요. 보통 3-4일 휴일이 생기면,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은 서울로 올라가요. 밀린 빨래도 하고, 친구들도 만날 겸 말이죠.(웃음) 그런데 저희는 그러지 않았어요. 현장에 남아서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대화도 많이 나눴죠. 그런 게 이번 영화에 녹아든 것 같아요.

Q. 일반 시사회에 몰래 잠입해서 영화를 봤다고 했죠? 어때요? 예상과 다른 반응들이 꽤 있었을 것 같은데. 가령 웃을 줄 알았던 장면에서 잠잠하고, 반대로 예기치 않은 장면에서 폭소가 터지는 경우요.
안재홍:
이번 영화는 특히 그래요. 사실 이 영화의 시작은 코미디가 아니에요. 재미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기는 하지만, 감독님도 그렇고 선균이 형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코믹 사극으로 접근하지는 않았어요. 코믹에 중점을 두고 연기 하지는 않은 셈이죠. 그래서인지, 의도되지 않은 호흡에서 관객들이 반응해 주실 때 더 좋게 느껴지더라고요. 연기를 한 입장에서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Q. 개인적으로 안재홍이라는 배우 특유의 특징이 있다고 생각해요. 웃음과 연관해서 더욱 그래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극 안에서 안재홍은 웃지 않아요. 일부러 웃기려 하지 않죠. 그럼에도 그 특유의 리듬이 또 관객을 웃게 만들어요. 이건 안재홍만의 어떤 인장이란 생각을 했어요.
안재홍: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도 다양한 결이 있다고 생각해요. 밝고 유쾌한 코미디가 있는가 하면 따뜻한 코미디도 있어요. 수위가 센 코미디도 있고요. 그 안에서도 변주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많은 분들이 저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는 걸 알아요. 그런 친숙함에서 시작해서, 친숙함이 조금 더 확장된 모습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작품에 임했어요. ‘코믹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게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모르겠어요. 조급하지 않으려고 해요. 개인적으로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이 더 많다는 저에 대한 믿음이 있거든요. 답습의 개념이 아니라, 원하시는 걸 충족시켜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동어반복이 아니라, 조금 더 넓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성장해 가면서 다양하게 저를 변주해 보고 싶어요.

Q. ‘코믹한 이미지로 소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껴요? 그런 반응이 서운하기도 해요?
안재홍:
서운하다기보다, 저 자신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모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의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아직까지는 많이 소모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는 건, 경계를 끊임없이 하는 것이 신선함을 잃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Q. 반면 이런 것도 있죠. 최근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도 출연했잖아요? 영화에서 안재홍이 나올 때마다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더라고요. 뭐랄까. 안재홍에 대해 관객들이 웃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건 배우에게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라는 생각을 했죠.
안재홍:
그래서 항상 예민해 지는 것 같아요. 짧은 순간에도 여러 마음이 오가요. 편하고자 하는 마음과 예민해야겠다는 마음이 교차하죠. 그러다보면 스스로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는 결론에 닿아요.

▲안재홍(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안재홍(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이미지와 연관해서 묻는 질문인데요, ‘응답하라 1988’이 끝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봉블리’로 불리고 있어요.
안재홍:
아직도 마트에 가면 많이들 정봉이라고 하세요.(웃음) 어르신들은 특히 더 많이 정봉이로 저를 기억하시죠. 그건 것 같아요. ‘응답하라 1988’은 저에게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에요.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너무 감사하죠. 영광이고요. 그런 작품 속 캐릭터로 불리는데 “더 이상 정봉이로 부르지 마세요”라고 할 수는 없는 거죠. 그건 시간을 조금 더 쌓이면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면 자연스럽게 풀릴 거라고 믿고요. 지금은 이런 상황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걸어가는 게 답인 것 같아요. 선배들 중에도 저와 같은 과정을 겪으신 분들이 많아요. 이런 과정을 극복한 선배들의 좋은 예들이 있기에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고 싶어요.

Q. 안재홍 하면 제작사 ‘광화문시네마’(영화 ‘1999,면회’ ‘족구왕’ ‘범죄의 여왕’ 등으로 독립영화계의 독특한 브랜드를 세운 영화창작집)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요. ‘광화문시네마’의 전 작품에 출연했는데요, 안재홍에게 ‘광화문시네마’ 어떤 의미인가요?
안재홍:
너무 좋아하는 형, 누나들이 있는 곳이죠. 제 첫 장편 주연작이 광화문시네마의 첫 작품인 ‘1999, 면회’에요. 좋은 분들을 만나서 정말 뜨겁게 찍었어요. 철원에서 11일간 합숙하면서 촬영을 했는데, 첫 장편영화라서 오히려 부담이 없었어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 몰두하며 찍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작품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았어요. 사실 제 소원 중 하나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GV(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거였거든요. 고향이 부산이라 매년 영화제를 찾았었는데 그때마다 ‘언제고 저 큰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경험을 첫 장편영화로 한 셈이죠. 첫 GV때 어찌나 심장이 뛰던지. 흥분이 돼서 온 몸이 빨개졌죠.

Q. 그 작품으로 그 해 영화제에서 배우상도 받았잖아요?
안재홍:
그러니까요. 저에겐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죠. 그리고 제 두 번째 소원이 해외영화제를 가는 거였는데, 그 작품으로 또 로테르담영화제에 갔어요. 생각하지도 않은 벅찬 결과들을 얻었고, 그 시간 속에서 광화문시네마 형 누나들에게 많은 걸 배웠어요. 정말 창의적이고, 기발하고,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광화문시네마의 ‘소공녀’라는 작품도 촬영을 끝냈어요. 편집 중인데 기대되요.

Q. 혹시 ‘광화문시네마’에 지분이 있으신 건…
안재홍:
상장되어 있지 않은 집단이라…(일동웃음)

Q. 작품들에서 늘 평범한 듯 비범한 모습을 보여 왔어요. 원래 캐릭터 자체가 그런 것인지, 안재홍이 연기를 해서 독특함을 입은 것인지 궁금하더라고요.
안재홍:
시나리오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이야기에요. 제가 돋보이려고 하지는 않아요. 아직까지는 이야기와 대본에만 충실하려고 하는 편인데, 연기한 캐릭터들이 저와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을 더 많이 주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Q. 실제의 안재홍은 어때요? 만나보니, 비범한 느낌이 있는데 말이죠.(웃음)
안재홍:
그래요? 비범한 부분이라. 제가 딱히 잘 하는 게…아, 그런 건 있어요. 얼마 전에 느낀 건데, 제가 어느 순간 상대가 어떤 말을 할지 알아맞추고 있더라고요. 한마디로 눈치가 빠른 거죠.(웃음) 그걸 재능이라고 하긴 그렇지만요.

Q. SNS에서 ‘라라랜드’ OST를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을 봤어요. 피아노 치는 남자인 줄 몰랐어요.
안재홍:
아, 못 쳐요. 자세를 자세히 보시면 굉장히 엉성하잖아요? 악보도 볼 줄 모르는 걸요.

Q. 그런데 그렇게 연주했다고요?
안재홍:
그건 제가 ‘라라랜드’를 너무 좋아해서 나온 행동이에요. 그 영화를 세 번 봤어요. 샤워할 때마다 ‘라라랜드’ OST를 듣는데, 그래서 악보 없이 음을 연상하며 쳐 본 거예요.

Q. 그런 걸 비범하다고 하는 거예요.(웃음)
안재홍:
아, 그런가요? 하하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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