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가수 현아(사진=큐브엔터테인먼트)

이룬 것이 많아진다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잃을 것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지난 2007년 걸그룹 원더걸스 멤버로 데뷔해 포미닛, 그리고 다시 솔로 가수로 활동하는 동안 현아는 많은 것을 이뤘다. 이룬 게 많은 만큼 잃을 것도 많아졌지만 현아는 조바심 내지 않았다. 정신없이 달음박질 하던 그는 속도를 늦추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찬찬히 기회를 살피고 제 사람을 챙기면서.

Q. 트러블메이커 이후 4년 만에 결성한 혼성그룹입니다. 트러블메이커의 이미지가 강렬했기 때문에 트리플H에 대한 기대 또한 컸어요. 음반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의 기대나 예상을 얼마나 의식했나요.
현아: 이제 갓 음악을 시작한 후배 가수들과 무대를 만든다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뒀어요. 저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가수’라는 하나의 꿈만 꿨고 그걸 이뤘죠. 이제 (욕심을) 내려놓고 하고 싶은 걸 찾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게 처음인 후이, 이던과 함께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겐 감사하고 신선한 일이에요. 죽어있던 감정이 살아나는 시간이었어요.

Q. 트리플H 음반을 준비하면서 ‘소울트레인’을 즐겨 봤다고 들었어요. 좋아하는 팝 가수는 누구에요?
현아: 제가 하는 음악과 상반되는 스타일에 매력을 많이 느끼는 편이에요. 한 사람을 꼽긴 어려운데… 연습생 때는 푸시캣돌즈의 ‘리콜(Recall)’ 무대를 자주 봤고 브루노마스의 음악도 많이 들어요. 국내 가수 중에서는 선배들 보다는 동료들의 음악이나 무대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에요. 신인 걸그룹들도 나올 때마다 찾아서 보고요.

Q. 동료 가수의 무대를 보는 것은 트렌드가 무엇인지 학습하기 위함인가요?
현아: 학습이나 공부, ‘나는 다른 음악을 해야지’와 같은 분석이 목표는 아니에요. 같은 노래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어떻게 편곡하느냐에 따라서 다르잖아요. ‘이런 색깔도 가능하구나’ 하면서 봐요. 그리고 동료 가수라는 생각이 들면 그냥 정이 가요. 여자친구나 프리스틴, 트와이스처럼 저와는 상대적인 분위기를 가진 팀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가수 현아(사진=큐브엔터테인먼트)

Q. 지난 번 인터뷰 때 인디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했죠. 대중이 현아에게 기대하는 음악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어요. 당신이 하고 싶은 색깔과 당신에게 요구되는 색깔 중 어느 쪽을 따르는 편인가요.
현아: 어려운 문제에요.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을 때가 있고,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때도 있더라고요. 상황에 따라 다른 대처를 해요. 가령 지난해 솔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에는 제가 무척 좋아하던 선우정아 언니에게 곡을 받았거든요. 언니에게 노래를 받게 될 줄 몰랐고 제가 그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못했는데, 언니가 디렉팅을 정말 잘 봐주셨어요.

Q. 반대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는데 당신의 의지로 흘려보낸 경우도 있었나요.
현아: 연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현아는 앞서 영화 ‘곡성’에서 귀신 역으로 캐스팅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한 바 있다.) 잡을 수 있었는데 제가 놓았다기보다는, 스스로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기회를 따라갈 수 없었어요. 자신 없고 겁이 나는 일 보다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더 보완하려는 편이에요. 무대 위에서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고 보완하고 싶은 부분도 많거든요. 그래서 (무대에 집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연기를 피하게 되는 면이 없잖아 있는 것 같아요.

Q. 트리플H 음반에서 현아의 색깔이 많이 묻어납니다. 앞서 당신이 프로듀싱에 참여했던 CLC의 음반도 비슷한 의견이 있었고요. 다만 포미닛이나 현아의 솔로곡에 비교했을 때 두 팀의 음원 성적은 다소 아쉬워요.
현아: 이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해요. 제가 그 정도는 아닌데…. CLC의 음반은 제가 프로듀싱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요. 좋아하고 예뻐하는 동생들이라서 제가 잘할 수 있는 일로 도와준 것이거든요. 저한테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제겐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어요. 성적에 대해 아쉬움이 없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오히려 ‘현아가 하는 일은 다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해주시는 게 감사해요. 회사 직원 분들도 많이 걱정하셨는데 걱정할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트리플H는 이제 처음 나온 팀이잖아요. 더 많은 분들이 펜타곤을 알게 되고 트리플H를 알게 된다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가수 현아(사진=큐브엔터테인먼트)

Q. ‘현아가 하는 건 다 잘 될 거야’라는 기대가 감사하게 느껴질 수 있어도, 회사 관계자나 팬들은 다를 거예요. ‘현아는 잘 될 거야’가 아니라 ‘현아는 잘 돼야 해’ 쪽일 가능성이 높죠.
현아: 글쎄요.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저기 부사장님과 사장님이 앉아계시긴 한데(웃음), 음원 성적이라는 게 잘 나오면 좋은 것이지만, 저는 이 친구들과 무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감사함이 더 커요. 함께 음악을 해주는 두 멤버들에게도 고맙고요.

Q. 아픈 얘기 하나만 더 할게요. 타이틀곡 ‘365프레쉬’ 뮤직비디오에 선정적인 장면이 담겼다는 지적이 있었어요. 거꾸로, 몸을 꽁꽁 가린 상태에서 섹시함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현아: 해봤어요. 왜 저렇게 더워 보이게 입었는지 모르겠다던데요? (일동 웃음) ‘볼륨업’으로 활동할 때였는데, 여전사 느낌을 보여주자면서 긴팔 상의에, 바지에, 심지어 치마까지 덧입었어요. 그랬더니 더워 보인다는 반응이 나오는 거예요. 그 때 생각했어요. 모든 분들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고. 그래서 (사람들의 반응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넓어지기를 스스로 바라게 됐어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서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게 만들어야겠다’ 내지는 ‘나는 가려도 섹시하다는 걸 보여줘야겠다’는 건 대중과 싸우자는 의미인 것 같았거든요.

Q.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큰 장점은 뭐예요? 섹시함? 아니면 끼?
현아: 무대 위에 올라간 순간부터는 다른 생각이 안 들어요, 아무것도. 제가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무대에 있는 3분이에요. 연습실에서나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하고 무대를 해야 할지 많이 생각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편이거든요. 무대에 올라간 뒤에는, 심지어 발목이 다쳐서 피가 나는데도 모를 정도로 집중하는 편이에요. 그게 제 장점 아닐까요.

Q. 사람들이 현아에 대해 뭐라고 얘기해주길 바라요?
현아: 그냥 저를 봐주는 게 좋아요. 저를 찾아봐주는 게. 어렸을 때 이제 막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세보이고 싶다’ ‘섹시하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한참동안 달리다 보니까 그 동안 못 봤던 것들이 보이게 되는 것 같아요.

▲가수 현아(사진=큐브엔터테인먼트)

Q. 아까 꿈을 이미 이뤘다고 했죠. 지금은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어요?
현아: 지금은 천천히 옆을 보며 걷고 있어요. 또 다른 꿈이라… 이젠 꿈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그것을 찾는 게 아니라, 꾸준히 연습하고 도전하면서 제게 올 수 있는 기회를 지나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해요.

Q. 유명한 가수, 혹은 잘나가는 가수에 대한 욕심을 어느 정도 내려놓은 것처럼 보여요.
현아: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줄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저를 믿어주는 제 사람, 제 울타리들이 생겼어요. 저를 믿고 지켜보고 따라와 주는 스태프들과 식구들이 생겼고, 저를 믿고 활동을 같이 하겠다고 마음을 정한 두 멤버들(후이, 이던)도 있죠. 이 모든 것들이 제게 왔을 때 ‘현아에게 괜히 시킨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열심히 하는 것, 믿을만한 사람이 되고 듬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져요. 허투루 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실 아직도 어떻게 해야 열심히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긴 하지만요. 지금 배워가고 있어요.

Q. 어떻게 해야 열심히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게 신기하네요. ‘열심히’는 굉장히 단순한 말처럼 들리는데.
현아: 회사에서 연습하고, 쉬고, 밥 먹고, 노는 게 제 일과에요. 모든 게 제게는 자연스러운 일과라서 이게 열심히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마감을 정해놓고 음반을 준비했는데 이젠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졌거든요. 투자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니 더 많이 찾아서 배우고 싶어요.

Q. 데뷔 10주년을 맞았죠. 10년 전에 상상했던 가수 현아의 모습과 지금 현아의 모습은 얼마나 비슷한가요.
현아: 저는 꿈이 크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지금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늘 감사하고 주시는 사랑에 부응하고 싶어요. 제가 연예인을 시작한 게 아빠 때문인데, 아빠가 처음에 그러셨거든요. “너 때문에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 덕에 네가 있는 거다. 일하면서 이 말을 꼭 기억해라”고. 내가 바라던 것은 다 이룬 것 같아요. 오히려 그 이상의 사랑을 가진 것 같고요. 그리고 저는 홍승성 회장님을 보면서 ‘인복이 있는 사람은 성공한 인생이다. 나를 믿어주는 식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그런 사람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