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범죄 피해자들이 스스로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모습을 담은 MBC 드라마 ‘파수꾼’을 본다. 수, 목요일에는 군주론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MBC ‘군주-가면의 주인’이 방송되고, 주말에는 독립운동가 후손과 친일파 후손의 대립을 그린 MBC ‘도둑놈 도둑님’이 전파를 탄다.
MBC가 최근 선보인 다수의 드라마에서 ‘정의’는 중요한 주제다. 권력자의 자질은 무엇이며 정의로운 사회는 어떤 모습이여야 하는지, MBC는 매일 다른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 ‘파수꾼’을 연출한 손형석 PD는 이에 대해 “국가기관이 개개인 국민의 생명이나 재산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욕구와 상상이 생겨나고, 그것이 드라마와 영화의 형태로 기획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MBC의 행보는 작품이 역설하는 바와 거리가 멀다. 지난해 최순실 일가의 국정 농단 사태 이후 공영 방송 보도에 불만족하는 시민의 수가 크게 늘었고 MBC는 특히 타격이 더욱 심했다.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4%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한 때 ‘마봉춘’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MBC와 소속 기자들은 지난해 촛불 집회 현장에서 ‘엠병X’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들어야 했다.
김재철 전 MBC 사장의 부임과 이에 반발한 언론노조의 파업과 이탈, 해직은 신뢰도 하락의 도화선이 됐다.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는 부실한 보도와 해당 사안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방영 불방 의혹이 문제가 됐다. ‘6월 항쟁 다큐’를 준비하던 김만진 PD는 사측의 제작 중단 지시를 이행하지 않아 인사위에 소집되기도 했다. 전국PD협회는 성명을 내고 “김만진 PD에 대한 징계는 무효이며, 6월 항쟁 다큐멘터리는 정상적으로 제작, 방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청자들도 등을 돌렸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해 11월 공공미디어연구소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공영방송 보도 관련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뉴스를 MBC를 통해 시청한다는 비율은 전체 응답자 가운데 5.8%에 그쳤다. JTBC와 KBS는 물론, TV조선, MBN보다도 낮은 수치다. 2009년과 2010년 시사IN이 실시한 언론신뢰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도는 처참할 정도로 떨어져 있다.
지난달 16일 막을 내린 MBC 월화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은 폭정에 맞선 민초의 투쟁을 그렸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촛불 혁명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한국PD연합회는 작품을 방영한 MBC 경영진을 “시급히 청산해야 할 적폐세력”으로 지목했다. 이 아이러니는 어디에서 발생하며 어떻게 해소되는가. 정의를 가리키는 손과 정의를 말하는 입은 지금 얼마나 정의로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