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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썰] 황지영PD “‘나혼자 산다’, ‘사건’ 보다 ‘사람’에 초점”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스타가 밥을 잘 먹기 위해서는 정갈하게 차린 밥상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밥상을 차렸던 사람들이 있기에 빛나는 작품, 빛나는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다.

비즈엔터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주 화요일 ‘현장人사이드’에서 전한다. ‘현장人사이드’에는 3개의 서브 테마가 있다. 음악은 ‘音:사이드’, 방송은 ‘프로듀:썰’, 영화는 ‘Film:人’으로 각각 소개한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에게 듣는 엔터 · 문화 이야기.

▲황지영(사진=고아라 기자 iknow@)
▲황지영(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감히 말하건대 ‘불금’의 완성은 ‘집’이다. ‘혼술’이다. 그리고 ‘TV’다. 방송사들이 이것을 모를 리 없다.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과 종편 채널까지 합세해 ‘불금’ 시청률 격전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금요 심야 예능 시청률 1위는 상징적인 기록이다. 그 어려운 걸 MBC ‘나혼자 산다’가 해냈다. 7월 초 시청률 10%대를 돌파한 뒤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비즈엔터와 만난 황지영 PD는 “시청률이 두 자릿수에 접어드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말하며 웃었다. 지난해 10월부터 프로그램 연출을 맡은 그는 무지개 회원(출연자)들의 토크 코너를 신설해 그들의 ‘케미’를 빛나게 만들고 허를 찌르는 게스트 섭외로 화제성을 높이는 등 신선하면서도 편안한 연출로 프로그램의 인기를 높이 끌어 올렸다.

“사람이, 자주 봐야 친해질 수 있잖아요. ‘나혼자 산다’는 프로그램 특성상 혼자 촬영을 하기 때문에 출연자들이 서로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아요. 그래서 스튜디오에서 토크를 하는 장치를 만든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서로를 만나게 되거든요. 출연자들 간의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케미’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제작진은 출연자에게 억지로 캐릭터를 부여하는 대신 스스로 시너지를 발휘할 때까지 기다렸다. 황지영PD는 “마음을 급하지 않게 먹으려고 했다”고 말한다. ‘달심’(모델 한혜진), ‘세얼간이(헨리 기안84 이시언)’ 같은 캐릭터도 출연자들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등산 에피소드에서 나온 한혜진 씨와 전 회장님(전현무)의 ‘썸’도 작정하고 만든 것은 아니었어요. 전 회장님이 회원들과 한 명 씩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해서 등산을 갔다가 그런 ‘케미’가 나온 거죠. 시간을 갖고 관찰하면서 발견한 것들을 방송화하다 보니까 시청자 분들도 편하게 봐주시고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최근 방영된 ‘여름 나래 학교’ 특집은 출연자들의 ‘케미’와 제작진의 애정 어린 연출이 빛을 발한 에피소드다. 인터뷰 현장에 함께 자리한 이경하 작가는 “기차 타고 친구 할머니 집에 놀러간다는 아이템은 누구나 한 번 쯤 해봤을 법한 경험이다. 그게 ‘나혼자 산다’스러운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일상과 너무 동떨어진 아이템은 지향하려는 편이에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일상을 위주로, 시청자 분들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으려고 합니다. 이벤트라고 할 만한 게 회원들의 정모 정도? 나래의 동생이 결혼을 한다거나 이사를 가는 에피소드도 결국 일상의 연장선이거든요.”

▲배우 윤현민은 '나혼자 산다'에서 자신의 영어 이름을 '브래드(Brad)'로 지으려다 스펠링을 몰라 '브레드(Bread)'가 됐다(사진=MBC '나혼자 산다')
▲배우 윤현민은 '나혼자 산다'에서 자신의 영어 이름을 '브래드(Brad)'로 지으려다 스펠링을 몰라 '브레드(Bread)'가 됐다(사진=MBC '나혼자 산다')

‘관찰 예능’의 시초 격으로 꼽히는 만큼, 출연자들을 바라보는 제작진의 섬세한 안목이 돋보인다. 녹화 분은 5-6회 씩 돌려 보고, 가편집본을 만들어 회의를 하고, 피드백을 받아 다시 수정하는 과정을 2-3회 이상 거쳐야 105분 분량의 방송이 완성된다. 출연자들에 대한 제작진의 애정은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화면 안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애정이야 뭐, 말할 수 없이 크죠. 제작진은 출연자들만 바라보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본래 모습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개인의 삶에 악영향을 끼친다거나 사실이 아닌 걸 보여주는 일은 없어요. 더 섬세하게 생각하고 더 많이 배려하려고 하죠. 보시는 분들은 단순히 ‘쟤 재밌네~’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재밌는 장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없는 고민과 회의를 거쳐요.”

제작진은 출연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왜곡 없이 보여주기 위해 고심한다. 인간적이고 소탈한 모습에서부터 직업인으로서의 프로 정신까지 두루 담아낸다. 예능 프로그램인 만큼 웃음거리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황지영PD는 “제작진에게 관찰력은 필수 능력”이라면서 “또한 사람의 표정을 보고 감정 변화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저희는 ‘사건’ 보다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요. 가령 ‘여름 나래 학교’에서는 퀴즈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답인 줄 알았는데 정답이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의 심리가 더 재밌었거든요. 그걸 극대화하는 방법이 CG였고요. 한혜진 씨는 웃는 얼굴을 보여줄 기회가 거의 없는 직업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달심’ 캐릭터가 더욱 매력적이죠. 윤현민 씨는 작품을 통해 젠틀맨 같은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나혼자 산다’에서는 영어 철자를 몰라 ‘브레드(Bread)’가 되기도 하고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모습이지만 직업 때문에 보여줄 수 없었던 면모를 ‘나혼자 산다’에서 조명하려고 합니다.”

▲배우 김사랑은 데뷔 18년 만의 첫 예능 프로그램으로 '나혼자 산다'를 선택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MBC '나혼자 산다')
▲배우 김사랑은 데뷔 18년 만의 첫 예능 프로그램으로 '나혼자 산다'를 선택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MBC '나혼자 산다')

화려한 게스트 라인업 또한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다. 한동안 미국을 주 무대로 활동하던 배우 다니엘 헤니는 ‘나혼자 산다’ 출연을 계기로 한국에서 각종 CF를 섭렵하게 됐다. 김사랑은 데뷔 18년 만의 첫 예능 프로그램으로 ‘나혼자 산다’를 선택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게스트 분들은 우리 회원들이 갖고 있지 않은 면모를 지닌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추진해요. 최근 출연을 결정한 태양 씨는 최고의 아이돌 빅뱅의 멤버로서 10년을 산 사람이잖아요. 그의 일상이 어떨지 당연히 알고 싶었어요. 다니엘 헤니 씨는 ‘내 이름은 김삼순’ 때의 로망이 있었어요. 매니저를 통해 들은 그의 얘기(미국에서 혼자 오디션을 보며 고군분투한다는 이야기)도 매력적이었고요. 김사랑 씨는 여자들도 궁금해 하는 사람 아닌가요?(웃음) 지금도 제작진은 수많은 사람들을 궁금해 하고 있어요.”

편집 과정을 거친다고는 하지만,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은 여간한 결심이 아니고서야 내리기 힘든 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셀럽들이 ‘나혼자 산다’를 찾는 데에는 제작진에 대한 신뢰가 강력하게 작용한 결과이리라. 정작 제작진은 “설득과 기다림이 비결”이라면서 “자세한 내용은 영업비밀이다”고 말하며 쑥스럽게 웃었지만 말이다.

“셀럽들도 늘 팬들과 소통할 창구를 찾으며 고민해요. 그 때 제작진이 우리 프로그램의 장점에 대해 열심히 어필하는 거죠.”

▲황지영(사진=고아라 기자 iknow@)
▲황지영(사진=고아라 기자 iknow@)

황지영PD는 지난 2006년 MBC에 입사해 ‘무한도전’(2012-2013), ‘라디오스타’(2013-2014), ‘세바퀴’(2015) 등 당대 가장 트렌디한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해 왔다. 리얼 버라이어티와 토크쇼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배운 것들을 ‘나혼자 산다’를 통해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현장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순발력이 중요하죠. ‘나혼자 산다’는 버라이어티와 토크쇼를 결합한 형태라고도 볼 수 있는데, 출연자들끼리의 ‘케미’와 시너지를 발견하고 극대화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토크쇼는 연출자에 따라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른데요, 혹자는 독한 토크만 계속 보여주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고 혹자는 잔잔한 얘기와 독한 얘기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해요. 정답이랄 건 없지만, 연출자 스스로가 마지노선을 정해야죠. 프로그램 하나 혹은 에피소드 하나로 당사자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토크의 수위를 조절합니다.”

10년 이상 업계에 종사하며 잔뼈가 굵었고 시청률 격전지에서 1위 자리를 따낼 만큼 성과를 냈지만 연출은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니다. 황지영 PD는 “시청자 분들도 즐겁고, 제작진도 즐겁고, 출연자들도 즐거웠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면서 “‘금요일 밤에 ‘나혼자 산다’를 보며 치맥을 하면 일주일의 피로가 싹 풀린다’는 댓글을 보면 힘든 것이 사라진다”고 했다.

“연출자라면 누구나 전 국민이 내 프로그램을 봐주길 원할 거예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시청자들의 취향이 다양해졌기 때문에 방송사들도 타깃을 설정해서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생산하고 있고요. 사실 지상파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하고, 그러다 보니 취향을 한 쪽에 맞출 수 없어 올드할 거라는 생각을 많이들 해요. 그런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젊고 트렌디하고 신선한데, 모든 사람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황지영(사진=고아라 기자 iknow@)
▲황지영(사진=고아라 기자 iknow@)

끝으로 프로듀서 지망생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황지영PD는 “아카데미에서 할 법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지만 이내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한 번 쯤 도전해봤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면 도전하세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노동 강도가 센 직업이에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버틸 수 있어요. 출연자를 좋아해야 그 사람이 어떤 행보를 걸어왔고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고 그것이 어떤 감정을 나타내는지 알 수 있거든요. 요즘에는 채널이 많아지고 프로그램도 많아져서, 하고 싶다는 열정만 있으면 경험은 해볼 수 있을 거예요. 해보세요. 서류 한 장을 잘 쓰거나 못 써서 죽도록 질타를 받거나 칭찬을 받지는 않잖아요. (황지영PD는 이 대목에서 자신의 말이 다른 직업에 대한 비하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연출자는 그렇거든요. 시청자들의 피드백이나 관심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좋아요. 재밌어요.”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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