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김예슬 기자]
박광현이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아직도 소년 같은 느낌이 어린 이미지와 자상한 본부장님 캐릭터로 안방을 사로잡던 그가 SBS 토요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를 통해 지질하면서도 코믹한 악역 추태수로 변신한 것. 때로는 화를 불러오지만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활약하는 그의 모습에 어느새 시청자들은 스며들었다. “얼마든지 더 나쁜 역할도 해볼 용의가 있다”며 악역의 매력에 푹 빠진 박광현을 만나 ‘언니는 살아있다’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Q. 요즘 욕을 많이 먹고 있어요(웃음).
박광현: 하하, 그렇죠. 배불리 먹고 있습니다. 감초처럼 나왔다가 들어갔다 하는데, 분량이 얼마 없어도 임팩트가 있나 봐요.
Q. 그동안은 신사 같은 캐릭터를 많이 맡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많이 달라요. 안 좋은 이미지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박광현: 그에 대한 부담은 전혀요. 배우로서 어떤 이미지를 잘 살려 그 이미지대로 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7년 가까이를 본부장 이미지로 있어서 이젠 여러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저는 이제 데뷔한지 20년이나 된 중견 연기자예요. 저라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갖춰졌으니 드라마 안에서의 캐릭터로 승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요. 제 기본 이미지는 밝고 명랑하게 쾌활하잖아요(웃음). 얼마든지 더 나쁜 역할도 해볼 만한 용의가 있죠.
Q.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지질한 불륜남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아내의 반응이 궁금해요.
박광현: 와이프는 드라마 초반에는 육아 때문에 모니터를 많이 못 했어요. 후반부에 잘 봐주고 있는데, 더 지질하게 망가지라는 조언들을 많이 하더라고요(웃음).
Q. 지질한 역을 그동안 맡아보지 않았던 만큼 처음 시작할 때 남다른 포부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본부장 캐릭터에서 나름의 다른 변신이니까.
박광현: 사실, 처음엔 이런 지질한 악역이 아니었어요. 그야말로 ‘오리지널 악역’이었거든요. 양달희 캐릭터마냥 정말 못된 인물이었는데 제가 중간에 순화를 했어요. 제 색을 넣어야겠다 싶었죠. 나쁜 역할을 안 해봤기도 했지만, 악랄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본 경험도 별로 없어서 힘들더라고요. 연기가 경험에서 우러나오기도 하니까요. 제 능력 부족인지 힘에 부쳐서 깐족대고 지질한 느낌으로 가자고 했어요(웃음). 마침 추태수가 망하기도 해서 더 지질하게 가봤는데 감독님이나 시청자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만족스러워요. 시청자 분들이 깐족거리는 악역에 반응해주신다면 저는 더 그렇게 해야죠.
Q. 망가짐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는 편인가 봐요.
박광현: 더 망가지면 좋겠어요. 하면서도 재밌거든요(웃음). 전 정말 즐기고 있어요. 지난번 생수통 배달원 분장 때는 조끼만 의상팀에서 준비해주고 팔토시 같은 디테일은 제가 다 준비했어요. 거지 분장도, 제가 신인 시절에 ‘왕초’를 했어서 전혀 두려움이 없었어요.
Q. 개그 욕심이 있는 편 같은데요(웃음).
박광현: 있어요(웃음). 개그보다는, 드라마 내에서 과하지 않게 잘 녹여서 웃기고 있죠. 애드리브도 최근부터 치고 있는데, “꺼지고 또 꺼져”를 제 유행어처럼 밀고 있어요. 캐릭터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하는 대사기도 하지만, 계속 밀어보려고요(웃음). 그리고 극 중 김은향에게 했던 “멍멍! 꿀꿀!”도 애드리브예요. 원래는 ‘너의 개돼지가 될게’였는데, 거기에 제가 멍멍 꿀꿀을 넣어봤어요. 상대 배우들도 웃음을 많이 참더라고요. 나름 진지하게, 추태수가 이렇게 모든 걸 다 내려놨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애드리브였어요. 그래서 기억에도 남고 또 만족스러워요.
Q. 추태수 역할이 욕을 먹으면서 그런 댓글도 나왔어요. 극 중 구세경에 의해 암매장 당하자 ‘좋은 거름이 되어라’라던데(웃음). 재밌는 댓글이 참 많던데 자주 보는 편인가요?
박광현: 초반엔 댓글을 봤지만 나중엔 안 봤어요. 제가 라미네이트로도 욕을 많이 먹었잖아요. (일동 웃음) 초반엔 정말 그말 뿐이었어요. 출연료 받으면 미백을 하라는 글도 많았죠. 제가 드라마 찍으면서 미백을 3번이나 했어요. 연기를 했는데 치아 얘기만 하고 있으니까(웃음). 이런 댓글도 봤어요. ‘언니는 살아있다’의 최고 오점은 박광현의 이라고. 이러니 연기하면서도 신경이 꽤 쓰이더라고요.
Q. 극 초반에 딸을 잃고 오열하는 장면이 의도치 않게 웃기다는 평을 받기도 했죠.
박광현: 어찌됐건 화젯거리가 됐으니 그거에 만족해요. 사실 외모에 대한 욕심도 버렸어요. 역할도 그렇고, 제 나이가 얼굴로 승부를 볼 때는 지났으니까요. 캐릭터에 잘 녹아드는 느낌이면 그걸로 좋아요.
Q. 배우 20년차인데, 이번 드라마는 아무래도 캐릭터가 남다른 만큼 반응이 정말 제각각이었던 것 같아요.
박광현: 제가 데뷔했던 20년 전만 해도 인터넷이 없었으니 시청자와의 소통은 없었어요. 그때는 주변 반응에만 의지했는데 이제는 댓글과 시청자 반응을 보며 연기 톤이나 캐릭터 연구에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소통한다는 마인드가 된 거예요. 그래서 초반에는 더 힘들었어요. 이만 보인다는 반응이 너무 많으니까요(웃음). 진심을 담아 연기하려 했는데, 제게서 처음 나오는 모습이다 보니 표정을 많이 써야했어요. 극단적인 표정을 쓰다 보니 연기를 못 한다는 평도 받게 됐죠. 주변에서도 표정이 과하다, 치아가 도드라져 보여서 연기하는 게 안 보인다는 반응도 받았어요. 이제는 아예 깐족대고 지질해지니 좀 나아진 것 같고요. 다음 작품에선 어떻게 해야겠다고 참고할 부분도 생겼죠.
Q, 치아에 대한 반응도 반응이지만, 시청률이 높은 만큼 어느 정도 상쇄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웃음).
박광현: 높아질수록 욕심이 생기는 부분이 있어요. 특히, 제가 이번 드라마의 감초잖아요(웃음). 현장에서도 제가 잠깐 나오고 들어가는데도 임팩트가 있어서 좋다는 말을 듣곤 해요. 제가 한 회에서 많아봤자 3~4신 정도만 나오는데, 그 부분이 거의 다 영상클립으로 돌아다니더라고요. 본방송 모니터를 못 하면 클립을 봐도 될 정도예요. 정말 흐뭇해요(웃음).
Q. 극 중 가장 접점이 많은 게 손여은, 오윤아 두 여배우예요. 각각 어떤 파트너인지 소개해주세요.
박광현: 오윤아 씨와는 대화가 잘 통해요. 촬영 끝나고도 이것저것 다양한 대화를 나누죠. 반면에 손여은 씨는 성격이 조용조용해요. 그래서 드라마 안에서 키스신만 많이 찍고 사적인 대화도 많이 못 나눠봤죠(웃음). 심지어 첫 키스장면은 통성명도 안 했을 때 찍었어요. 어색하지만 어색하다고 안 할 수도 없으니까 그냥 열심히 찍었던 기억이 나요.
Q. 극 중에서 송종호 씨와도 종종 얽히고 있죠. 특히 맞는 쪽으로요(웃음).
박광현: 일단 송종호 씨의 키가 워낙 크다보니까 형에게 맞는 느낌이 나요. 제가 맞는 역할이다 보니 따로 합은 안 맞추죠. 하지만 그런 장면에서는 맞는 사람의 연기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저는 리액션을 과하게 하는 편이에요. 실제로 맞는 것보다 더 크게 나뒹굴고 하면 때리는 사람도 더 신이 나니까요.
Q. 드라마에서는 나쁜 가장이었지만, 실제로는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로 소문이 자자해요. 실제 박광현이라는 사람은 가정에서 어떤 가장인가요?
박광현: 가정에 있는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려 해요.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긴 힘드니, 가정에서는 더 열심히 제 할일을 하려 하죠. 요즘은 드라마 촬영 때문에 바빠서 육아에 참여를 잘 못하지만, 배우로서 바쁜 게 좋은 거니 와이프는 열심히 하라고 응원을 해줘요. 다행히 이젠 아이가 좀 커서, 신나게 잘 놀아주면 되거든요. 촬영이 끝나면 아이가 잠들기 전에 최대한 빨리 들어와서 30분이라도 신나게 놀아주려 해요.
Q. 육아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촬영이 끝난 뒤 아이와 놀아주는 게 힘들 법도 한데.
박광현: 슬슬 힘들어지고 있죠(웃음). 아이가 걷기 전에는 바운서에 눕혀놓거나 돌보는 게 편한데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 놀아줘야 해서 육아 체력이 필요해요. 놀아주는 것도 꽤 힘들거든요. 하지만 아이에게 한 번 거절하면, 예를 들어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했는데 힘든 기색을 보이면 그게 곧 아이와 멀어지는 지름길이에요. 똑같은 걸 계속 읽어달라고 해도 계속 함께 해줘야 해요. 같은 책을 봐도 그때마다 아이가 느끼는 건 다르거든요.
Q. 육아 전문가의 향기가 나는데요(웃음).
박광현: 저는 교육을 받은 게 없어요. 하지만 와이프가 육아서적을 많이 보고 알려주죠. 아이가 뭘 가져오면 거절은 하지 말고 일단 놀아주되, 바쁜 경우엔 같이 못 노는 이유를 알려주고 다음에 놀자고 충분히 설명해주라는 등의 이야기를 해줘요. 저희 와이프는 정말 자애로운 사람이에요.
Q. 좋은 아빠인데 드라마에서 나쁜 캐릭터로 활약해 사랑 받는 게 아이러니한 느낌이에요. 그렇다면, 박광현 본인이 봤을 때 아무리 연기여도 추태수의 이 행동만은 정말 나쁘다 싶었던 게 있나요?
박광현: 불 지르는 거예요. 일부러 사람을 죽이려고 한 거잖아요. 추태수의 딸은 의도와 상관없이 실수로 죽게 된 거지만, 일부러 사람을 죽이려 한 행동은 정말 아니지 않나 싶었어요.
Q. 20년 만에 처음으로 나쁜 역할을 해봤으니 다음 작품의 캐릭터는 어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박광현: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드라마 안에서 튈 수 있는 캐릭터도 좋겠다 싶은 생각은 들어요. 메인스토리를 잡아가는 주인공도 나쁘지 않지만 일단은 여기저기서 많이 보여지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거든요.
Q. ‘언니는 살아있다’ 초반부에 계획했던 강렬한 악역의 욕심은 없어진 걸까요.
박광현: 욕심은 없어요. 저를 필요로 하시는 분이 이런 역할을 해달라고 하면 저는 거기에 맞춰 최대한 연기를 해야죠. 악랄하고 말수도 없는 그런 악역을 해보고는 싶지만,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 같은 역할은 하기 싫어요.
Q. 의외네요. 많은 배우들은 그런 강렬한 캐릭터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곤 하는데.
박광현: 저는 제 인생이 망가질 것 같아요. (Q. 너무 몰입해서?) 네. 예전에 개봉이 안 된 영화를 찍은 적이 있는데,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 역할 섭외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그래서 감독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도저히 못하겠다 싶었죠. 연기자는 저마다 자기 전문 영역이 있잖아요. 자기가 잘할 수 있고 자기에게 맞는 역할들이요. 제게는 ‘깐족 악역’이 최적화된 것 같아요. 원래 성격도 밝고, 장난치면서 깐족대는 걸 좋아하거든요(웃음).
Q. 이번 ‘언니는 살아있다’의 추태수 역할은 그런 면에서 정말 최적이네요(웃음).
박광현: 그쵸. 그리고 조금만 나와도 각인이 되니 가성비도 좋고요(웃음). ‘꺼지고 또 꺼져’라는 대사도 계속 밀어볼 거예요. 물론 꺼지고 또 꺼져야 할 대상은 추태수지만요. 하하. 하지만 집에 있는 아기가 밥도 많이 먹고 까까도 사오라는데 제가 ‘꺼지고 또 꺼지게’ 되면 무슨 돈으로 까까를 사주겠어요. 한 장면이라도 열심히, 꾸역꾸역 나와 볼 생각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