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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주혁 “‘아르곤’, 판타지 없는 현실이라 더 좋았죠”

[비즈엔터 김예슬 기자]

▲김주혁(사진=나무엑터스)
▲김주혁(사진=나무엑터스)

훌륭한 리더란 뭘까. 명쾌하고도 어려운 이 질문에 가장 답에 가까운 표본을 김주혁은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을 통해 보여줬다. 그가 연기한 김백진 캐릭터는 냉철한 듯 ‘팩트’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부하 직원들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조직원을 향한 애정 어린 모습과 언론인으로서 가진 소신이 담겼다.

김주혁은 자칫 뻔할 수 있는 캐릭터를 특유의 완급 조절을 통해 완성해냈다. “허점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던 그의 말에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묻어났다. 여전히 ‘아르곤’과 이별에 섭섭함을 느낀다던 김주혁과 만나 ‘아르곤’과 그의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시작은 역시나 종영소감입니다(웃음). 다소 짤막한 8부작을 마쳤어요.
김주혁:
역시나 시원섭섭하죠. 하지만 이 작품은 애정이 많이 생겨서 섭섭하기도 해요. 팀원들에게 정이 많이 생겼거든요. 작품도 좋았지만 사람들도 누구 하나 모나지 않고 서로 잘하자는 의욕이 넘쳤어요.

Q. 드라마가 다루던 메시지가 현재 언론이 처한 상황과도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텐데요.
김주혁:
현실 때문 보다는, 대본에서 오는 책임감이 있었어요. 좋은 대사가 정말 많았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8회의 마지막 대사예요. ‘기자는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영웅의 말을 믿고 싶어 하니까요. 뉴스를 믿는 게 아니라 판단해 달라’는 내용이었는데, 보자마자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어요. 영웅 같은 느낌을 주는 캐릭터였는데, 그렇지 않은 느낌을 주지 않으려 더 노력하기도 했어요. 완벽하게 진행되는 느낌보다는 제 허점과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김주혁(사진=나무엑터스)
▲김주혁(사진=나무엑터스)

Q. 그래서 더 영웅처럼 느껴졌어요.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완전무결하기 보다는 치부를 공개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더 영웅 같았죠. 그런 모습이 비현실적이고 판타지 같았고요.
김주혁:
그래서 이 작품을 선택한 거예요. 과하지 않았으니까요. 판타지적인 성향이 있었다면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고 작품 선택 이유에 ‘아르곤’이 주는 메시지가 있던 건 아니에요. 메시지는 촬영을 하면서 알았거든요. 처음에는 큰 메시지를 준다는 생각보다는 편안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감독님의 연출 방향도 그렇고,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도 그런 성향들이 모여서 다른 드라마보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본도 끝까지 마음에 들었어요.

Q. 김백진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참고한 인물이 있다면…
김주혁:
그런 건 없었어요. 그냥 주어진 대로 한 거예요. 이 드라마는 뉴스를 하는 순간이 중요한 작품은 아니에요. 물론 앵커 연습은 했죠. 앵커들이 어떻게 뉴스를 진행하는 지도 많이 봤고요. 하지만 결론은 역시 ‘내 마음대로 하자’ 였어요. 제가 느껴지는 대로 하는 게 곧 제 스타일일 테니까. 팀원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애정이 없으면 결국 화만 내는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Q. 김주혁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려 했어도 역할을 표현함에 있어 고민은 있었을 것 같아요. 뉴스 진행지만 결국 큰 틀은 드라마에 속해있으니까요.
김주혁:
감정을 넣느냐 안 넣느냐도 중요한 문제였죠. 뉴스는 감정을 배제하지만 저는 드라마를 찍고 있으니, 완전히 감정을 배제하는 게 맞을지 약간은 양념을 치는 게 맞을지에 대한 고민을 꽤 했어요. 결국은 제가 배우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약간 양념이 쳐진 것 같은데, 그게 드라마적으론 맞다고 생각해요. 뉴스하는 앵커들과 똑같이 했으면 보는 맛이 조금은 떨어지지 않았을까요?(웃음)

▲김주혁(사진=tvN)
▲김주혁(사진=tvN)

Q. 김백진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부분은 없었나요.
김주혁:
편집된 부분이긴 한데, 마지막에 시상식 장면이 있어요. 현장에서 힘들게 일했던 선배님들과 동료들 이라고 하는데 순간 울컥해서 감정이 확 올라왔어요. 단순히 드라마를 같이 찍은 동료 그 이상의 느낌이었어요. 기자들의 삶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삶이 치열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죽어라 일한 보답이 시상식 한켠에 앉아있는 모습이라는 게 짠해보였죠.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Q. 언급한대로, 기자들의 삶을 많이 보여주는 드라마였어요. 표현에 대한 건 만족스럽나요?
김주혁:
부족하죠. 그들의 삶을 뼛속까지 알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미안한 부분도 있어요. 누군가를 대변하려고 연기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더 잘 알고 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요. 제가 너무 미화를 시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죠. 물론 그 부분은 연기자로서의 한계겠지만요. 그래도 과하게 가지 않으려 했어요.

Q. 그러면 연기자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어요. 연기나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평소 가진 생각은 어떤가요.
김주혁:
연기에 대해 좋은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있어요. 하지만 배우니까 어디 가서 가식을 떨고 싶은 생각은 없죠. 그런 부분은 관심이 없고, 관객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더 잘할지 항상 고민하죠.

Q. 만약 김백진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용기 있게 본인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을까요?
김주혁:
당해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안 될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반대쪽에 빌붙진 않을 거예요. 그런 성격은 못되거든요. 민폐 끼치는 것도 싫어하는 편이고요. 일단 남에게 피해는 안 주려고 할 것 같아요.

Q.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게, 정말 솔직한 성격인 것 같아요. 보통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어떤 이미지로 꾸며서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수 있잖아요.
김주혁:
저는 저를 포장하는 걸 잘 못해요. 허풍 떠는 사람을 싫어하기도 하죠. 배우로서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하기 보다는, 시간이 지나며 제 이미지가 쌓이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해요. 사람들이 오해를 하게 된다고 해도 그런 걸 다 신경 쓸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지금 가는 길을 계속 가다보면 저와 발걸음을 같이 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겠죠(웃음).

Q. 그런 면에서는 ‘1박2일’의 출연이 뭔가 이해가 가요. 날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 기질적으로 맞는 부분도 있을 것 같고.
김주혁:
‘1박2일’에는 애착이 커요.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이라기보다는 같이 했던 출연자들과 스태프들에 대한 애정이죠. 정말 좋았거든요. 사람들이 참 좋았어요.

▲김주혁(사진=나무엑터스)
▲김주혁(사진=나무엑터스)

Q.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라고 들었어요. 어딜 가도 분위기 메이커인 편인가요.
김주혁: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의무라 생각하고요. 주인공이 인상을 쓰고 있으면 현장 분위기가 다운되기 마련이에요. 제가 모범을 보여야죠. 제가 열심히 하면 후배들은 따라올 수밖에 없어요. 선배들도 좋아하시고요. 선배들에게는 너무 예의를 갖추기보다는 어리광도 부려요. 이렇게 제가 중간다리를 하면 아무래도 서로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제가 해야 하기도 하고요.

Q. 그런 걸 깨달은 계기가 있었나요?
김주혁:
처음부터 그랬어요. 몸이 배다보니 힘들게 느껴지진 않아요. 막내일 땐 제가 말을 잘 드는 막내였거든요. 눈치를 많이 보고 낯도 많이 가렸어요. 물론 현장에서는 절대로 낯을 안 가렸지만요.

Q. 이번 ‘아르곤’은 다른 드라마에 비해 8부작이어서 현장이 조금은 나았다고 들었어요. 일반적으로 드라마 현장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요.
김주혁:
시간이죠. 할 건 많은데 시간은 없으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커요. 배우 입장에선 육체적으로 힘들기보다는, 시간이 있으면 더 잘할 수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제살 깎이는 부분이 싫어요. 더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인데도 대사를 외워서 치는 데에 급급한 순간이 오면, 정말 기분이 좋지 않죠.

Q. 쪽대본이 나오는 상황이 되면 감정을 단시간에 몰입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생기죠.
김주혁:
맞아요. 하지만 신인과 선배,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힘을 빼는’ 거예요. 힘을 빼면 남의 소리가 들리고 남의 감정이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대사 숙지가 돼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어떤 감정을 주고 있는지를 보고 그 감정을 받아서 하면 되는 거예요.

▲김주혁(사진=나무엑터스)
▲김주혁(사진=나무엑터스)

Q. ‘아르곤’에서 김백진을 연기하며 가장 재미있던 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김주혁:
애정을 주는 캐릭터라는 거였어요. 다른 캐릭터에 애정을 주면서 하게 되니 리액션을 어떻게 할지와 같은 다른 영역이 생각나게 됐죠. 이 장면 위에 풍부하게 채워나갈 수 있는 부분이 보이니까요. 그래서 애드리브도 많이 쳤어요. 조금씩 상황에 따라, 대사 애드리브 외에도 행동에 대한 애드리브와 대본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어요.

Q. 예를 들자면.
김주혁:
8회에서 극 중 신철과 술을 마시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을 대사처럼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본대로 안 하고 즉흥연기처럼 하겠다고 PD님께 말씀드렸죠. 맥락만 전달하되, 마음에서 느껴지는 대로요. 이경영 선배와 한 야구장 장면에도 애드리브가 있었어요. 무심결에 애드리브를 쳤는데 이경영 선배가 확 받아줬죠.

Q. 평소에 애드리브를 많이 치는 편인가요?
김주혁:
원래는 그렇지 않은데 요 근래에는 좀 하는 것 같아요. 애드리브는 큰 톱니바퀴에 작은 톱니를 넣어 잘 굴러가게 하라고 넣는 거잖아요. 사실 대본 자체에는 구멍이 많아요. 그 구멍을 배우가 메워가는 식인 거예요. 작가도 완벽한 건 아니잖아요. 어렸을 땐 대본대로 하고 벗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작가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극에 어느 정도 양념은 칠 수 있다는 거죠.

Q.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아르곤’은 김주혁이라는 배우의 양념이 어느 정도는 가미된 건데, 주위 사람들의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었나요.
김주혁:
‘좋은 드라마’라는 말이 정말 좋았어요. 뿌듯했고요. 재밌는 드라마를 봐서 좋았다는 게 아니라 ‘좋은 드라마를 봐서 좋았다’는 말이 정말 좋았거든요. 의미있고 남는 게 있었다는 말이잖아요. 좋은 글들이 있는 작품을 앞으로도 하고 싶어요. ‘아르곤’은,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운이 좋은 거라는 생각을 했고요.

Q. 좋은 선후배들이 뭉친 작품이었는데, 배우들과 꾸준히 연락을 나누는 편인지 궁금해요.
김주혁:
아뇨. 제가 인간관계에 부지런하지가 않아서요(웃음). 연기를 하지 않을 땐 집에만 있어요. 단체 채팅방을 애들이 만들긴 했는데, 제가 참여를 안 하죠. 약속도 제가 먼저 잡기보다는 부르면 나가는 스타일이에요.

Q. 힘들 때나 누군가에 기대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땐 어떻게 하나요.
김주혁:
저희 소속사 사장 형에게 기대죠(웃음). 하지만 전 굳이 엄살을 부리진 않아요. 혼자 삭히는 편이거든요. 자존심 때문인지 성격이 그런 건지, 그런 걸 잘 이야기하진 못 하겠어요.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해봤는데 시도 자체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김주혁(사진=나무엑터스)
▲김주혁(사진=나무엑터스)

Q. 최근에 김주혁이라는 배우 자체가 부각되는 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김주혁:
작품이 잘 돼서 부각되는 거죠, 뭐. 부각되는 거나 다른 걸 다 떠나서, 연기가 정말 재밌어요. 몇 년 전부터 그냥 재밌더라고요.

Q. 구체적인 계기가 있다면…
김주혁:
‘1박2일’을 하고나서부터예요. 여러모로 연기에 큰 전환점이 됐죠. 예능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제 모습을 제가 TV로 확인해보니 제가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제 감정이 화면에서 보인다는 확신을 느꼈고요, 얼굴이 어떻게 되건 간에 내려놓게 되는 부분도 절 편안하게 해줬죠. ‘구탱이형’ 별명도 완전 좋아해요. 구수하잖아요(웃음). 정감 있어서 좋더라고요. 제게 그런 게 없었다고 생각하거든요.

Q. 허점을 보이기 싫어하는 스타일 같은데, ‘1박2일’에서 정제되지 않은 이미지를 보여줬던 것에 만족하는 게 의외인 것 같아요.
김주혁:
그래도 좋더라고요. 제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걸 보여준 거니까요.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돼서요.

Q. 그렇다면, 김주혁에게 배우 김주혁은 어떤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나요.
김주혁:
‘거짓’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연기함에 있어서 좀 더 솔직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고민은 항상 하고 있어서 더 이상 고민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죠. “너를 그만 의심하고 널 믿고 그냥 해봐라. 의심하다 그 의심이 네 발목을 잡는 것 같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던져봐라.” 하지만 이러려면 먼저 솔직해져야 돼요. 설사 그게 틀린 감정이라고 할지라도요. 아, 이 세상에 틀린 감정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옳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받아주는 사람이 그 틀린 감정을 잘 받아준다면요.

김예슬 기자 yey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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