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김예슬 기자]
솔직한 말투, 시원시원한 마스크, 소탈한 언변. 오윤아와의 인터뷰는 그의 털털한 성격이 십분 반영된 유쾌한 시간이었다. 작품에 대해,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 대해 칭찬과 찬사를 아끼지 않던 오윤아는 때로는 옆집 언니처럼, 때로는 데뷔 18년차 배우다운 모습으로 연기에 대한 생각을 신중하되 주저함 없이 풀어냈다. 그가 활약한 SBS 토요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와 이를 풀어나간 연기지론에 대해, 오윤아와 진솔한 대담을 나눴다.
Q. 길었던 주말드라마의 촬영이 이제 모두 끝났어요.
오윤아: 돌이켜보면 즐거운 촬영이었어요. 다른 작품보다 더 애착 가는 작품이었죠. 마지막에는 살짝 눈물도 났어요. 작품을 보낸다는 게 아쉽고 시원섭섭한 마음이 커요.
Q. 감정 소모가 많은 역할이었어요. 화도 내고, 소리도 지르고, 눈물도 많이 흘렸죠.
오윤아: 계속 눈물연기를 하다 보니 힘들긴 했어요. 목도 많이 쉬고 눈도 붓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억지로 감정을 쥐어짜내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자연스럽게 대본에 묻어나는 대로 연기를 했죠. 체력이 바닥날지는 몰라도 성취감이나 희열이 있었어요. 이 장면은 내가 좀 괜찮게 한 것 같다는 만족감을 느꼈던 때도 있었거든요.
Q. 극 중 김은향 캐릭터가 부각된 몇몇 순간들이 떠오르는데요. 배우 본인이 가장 만족했던 장면은 어떤 것이었나요?
오윤아: 만족보다는 표현이 잘 됐다고 느낀 신이 있었어요. 극 초반에 김은향의 딸 아름이가 죽는 장면이 있었는데, 워낙 초반인 만큼 제가 이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어요. 첫 날 첫 장면이 바로 아름이의 죽음이었거든요. 불난 집 앞에서 아름이를 데리고 나와서 오열한 뒤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을 보며 우는 장면이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엄마다 보니 몰입이 빨리 됐던 것 같아요.
Q. 김은향 캐릭터는 드라마 안에서 여러 인물들과 다각도로 얽혔어요. 초반엔 민들레(장서희 분), 이후엔 구세경(손여은 분)과 조환승(송종호 분)과의 장면이 많았죠.
오윤아: 맞아요. 저는 초반에 장서희 선배님께 크게 의지했어요. 완전한 파트너였고 워낙 친언니처럼 잘해줘서 극 중 은향이처럼 실제로도 많이 의지했죠. 연기가 아닐 때에도 눈물이 나기도 했거든요.
손여은 씨와는 극 중 정말 미운 사람인데 죽는다는 걸 알고 함께 살게 되잖아요. 그런 부분이 뭔가 사실적인 감정으로 그려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제 감정선을 갖고 가면서 구세경 캐릭터를 대할 수 있게 대본을 써주신 덕에 은향이의 마음으로 세경이를 바라볼 수 있었어요. 그 덕에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Q. 특히나 구세경 캐릭터와의 케미스트리가 정말 뜨거운 반응을 얻었어요. 베스트 커플상 언급까지 나올 정도로(웃음).
오윤아: 저희는 정말 의도한 게 없었거든요. 설정한 것도 없었고 대본에 나오는 대로만 했어요. 그런데 분위기는 거의 여자 둘이 사귀는 느낌이었어요(웃음). 베스트 커플상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고 정말 놀랐죠. 제가 베스트 커플상을 타본 적도 없지만 왜 여자랑 올랐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웃음).
Q. 남편인 추태수(박광현 분)과의 코믹한 모습도 눈에 띄었어요. 특히 박광현의 애드리브가 웃음을 짓게 하기도 했는데.
오윤아: 하하. 웃음 참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웃긴 장면도 많았지만 본인이 그걸 더 살려버리니까 정말 웃기더라고요. 초반에는 감정 잡기도 힘들었어요. 하지만 김은향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날이 잘 서있어서 몰입할 수 있는 장치가 많았죠. 그리고 너무 웃긴 모습은 일부러 안 보려고 노력했어요(웃음).
Q. 김순옥 작가의 작품은 복수라는 콘셉트가 확실히 잡혀있어요. 이번 ‘언니는 살아있다’에서도 김은향 캐릭터의 복수가 성공적으로 이뤄졌죠. 하지만 극 중 큰 비중을 차지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던 만큼 부담도 됐을 것 같아요.
오윤아: 중간에 제가 이끌어 가는 상황이 있다 보니 부담감이 없진 않았어요. 하지만 주변 캐릭터들이나 선배님들이 많이 도와주셨고 스토리가 섬세해서 몰입도 잘 됐어요. 상황이나 설정이 디테일하게 표현된 부분도 많았는데, 그런 부분이 일부 편집돼 아쉽기도 했죠.
Q. 함께 호흡을 맞춘 장서희에게 복수 연기에 대해 배운 게 있다면.
오윤아: 장서희 언니는 기본적으로 감정 연기나 감정 전달력을 타고난 것 같아요. 저랑 떠들다가도 촬영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캐릭터 감정에 집중하더라고요. 놀라울 정도였어요.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많이 배우게 되더라고요. 본능적으로 연기를 잘 하고 진심이 연기에 담기는 것 같았어요. 그런 점이 정말 부러웠고 닮고 싶다 느꼈어요.
Q. 강한 역할을 하면 연기를 잘 한다는 반응이 많이 나오는데, 이번엔 오윤아라는 배우가 그 대상이 된 것 같아요. 다양한 감정을 잘 표현해냈죠.
오윤아: 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작품을 마치고 나니 그런 말씀들을 해주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어요. 시청자와 공감하며 연기할 수 있는 역할을 맡은 게 오랜만이어서 더 힘이 났고 좀 더 몰입하려 했어요. 팬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더 기분이 좋았죠. 악역을 안 해야겠다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는 호감 가는 캐릭터도 섞어서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Q. 기억에 남았던 댓글은 어떤 건가요.
오윤아: ‘오윤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은향이었다’는 댓글이요. 보는데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봐주시고 생각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연기를 계속 하게되는 것 같아요.
Q. ‘오마이금비’에서는 날라리 엄마였던 반면 이번엔 딸 사랑이 지극한 극성 엄마 캐릭터였어요. 연기에 있어 신경 썼던 부분이나 차이를 두려 한 부분이 있었나요?
오윤아: 캐릭터를 들어갈 때에는 그 사람의 인생과 성향을 보려는 편이에요. ‘오마이금비’는 청소년 시기의 질풍노도시기를 넘지 못하고 항상 사춘기에 머물러있는 느낌을 연상했죠.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여자요.
반면 ‘언니는 살아있다’의 김은향 캐릭터는 모든 인생을 아이에 맡기고 아이를 위해 살아가는 여자를 생각했어요. 아이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고 이런 부분에 공감을 해줬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런 상태에서 아이의 죽음을 겪고 약간은 미친 듯한 모습도 담고 싶었어요.
Q. 실제로도 엄마잖아요. 굳이 구분지어본다면, 두 캐릭터 중 실제 엄마로서 오윤아는 어느 쪽에 더 가깝나요(웃음).
오윤아: 둘 다 평범하지는 않죠(웃음). 저는 딱 중간인 것 같아요. 항상 잘 키우고 싶지만 일 때문에 아이에 올인할 수 없고, 혼자 키우다보니 아빠의 역할까지 하려고 더 강해지려고 노력하거든요. 외적으로는 그들의 중간 정도 되겠지만 마음만큼은 은향이에 가까워요.
Q.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녀가 작품 선택의 기준으로도 작용하는지 궁금해요. 아이가 이제 엄마가 TV에 나오고 있다는 걸 인식하는 나이가 됐으니까요.
오윤아: 이제는 TV에 나오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그런 점이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영향을 미치지는 않죠. 사실 저희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거든요. (Q. 어떤 점에서?) 발육이 어렸을 때부터 느렸고 발달장애가 조금 있어서, 엄마를 정말 사랑하는 아기 같아요. 엄마의 일이 뭔지를 알아보거나 하진 않지만 TV에 엄마가 나오면 정말 좋아하고요.
Q. 이번 작품을 통해 오윤아라는 배우의 본격적인 멜로에 대해 기대하는 팬들도 늘어났어요. 배우로서 멜로에 대한 욕심은 어느 정도 있는 편일까요.
오윤아: 사실, 모든 배우들이 나이를 먹어도 멜로를 하고 싶어 하잖아요. 나이를 먹어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연기를 하는 게 배우만의 꽃인 것 같고요. 저도 기회가 생기면 정통 멜로를 해보고 싶어요. 이번에도 송종호 씨와 그런 연기를 할 때 정말 재밌게 촬영했거든요. 멜로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감정이 깊어질 수밖에 없어요. 가짜여도 그 순간만큼은 몰입할 수 있는 연륜이 필요하니까요. 저도 그래서인지 한 살씩 먹어갈수록 점점 연기가 재밌어지더라고요.
Q. 좋은 평가를 받아서 더욱 연기에 대한 재미를 느꼈을 것 같아요.
오윤아: 저는 작품 하나 끝냈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얼떨떨해요. 사실 시청자나 네티즌의 댓글을 찾아보는 편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이번엔 주변에서 반응이 좋다고 전해주더라고요. 대세 프로그램이라는 이야기도 들어서 뿌듯하고 좋았어요. 아이들도 알아보더라고요(웃음). 좋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반말을 할 때면 당황스럽기도 하죠. 새로운 기분이에요. 이번엔 정말 젊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걸 느껴서 뿌듯했어요.
Q. 폭 넓은 연기를 한 덕에 성장했다는 느낌도 받았을 것 같아요. 이번 역할은 감정 연기가 정말 많기도 했어서.
오윤아: 사실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느껴요. 알면 알수록 더 많은 장면과 더 많은, 다른 느낌을 보여줘야 하니 다음 작품에선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죠. 예전에는 파이팅이 넘쳐서 잘 해야 한다는 의욕에 불탔다면 지금은 섬세하게 연기를 해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쉽지 않다고도 느끼고요.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성장해나가는 것 같아요. 저희는 그동안의 기록들이 다 남잖아요. 예전 모습을 보면 너무 연기를 못 해서 쥐구멍에 숨고 싶을 때도 있지만, 성장하는 모습이 보여서 행복해요. 연기를 한다는 건, 그런 점에서 행복한 것 같아요.
Q. 이번 작품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어요. 수상에 대한 욕심도 생겼을 법 한데.
오윤아: 제가 상 욕심은 버린지가 좀 오래 돼서요(웃음). 뭐든 상은 기대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기대하면 실망도 크니까 마음을 비우게 됐어요. 상 욕심이 없진 않지만 미끄러지니까 기대를 안 하는 거죠. 그래야 속이 편하잖아요. 저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지 않거든요.
Q. 60대쯤 됐을 때 사람들이 오윤아라는 배우를 어떻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느끼나요.
오윤아: 제가 고두심 선생님을 존경해서, 나중에는 고두심 선생님처럼 연기하고 싶어요. 고두심 선배님은 아무 것도 안 하셔도 그냥 진심이 전달되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연기를 하면 눈물도 그냥 나고요. 대사를 툭툭 던져도 진심처럼 들리는 걸 보면서 이런 게 진정한 배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지금도 오윤아라는 배우에게 연기력에 대한 꼬리표는 따라 붙지 않잖아요. 사실, 다른 직업에서 전직을 한 건데도 그 흔한 연기력 논란이 없어요. 비결이 있다면 뭘까요.
오윤아: 생각해보면 저는 정말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함께 연기한 언니들에게 묻혀서 부실한 연기력이 들통 나지 않았던 케이스 같아요. 연기를 잘 하진 못 했지만 좋은 선배들과 작품들을 하면서 선배들의 연기를 보고 자연스럽게 배운 것 같아요. 연습량이 많은 편이기도 해서, 노력해도 안 되는 장면과 마주하면 대본을 미친 듯이 보며 그 안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어요.
Q. ‘백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겉모습은 고고한 여배우지만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에선 열심히 발버둥을 치고 있는.
오윤아: 사실, 그렇게 고고하지도 않아요(웃음).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마스크다 보니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외모가 이렇다보니 더 소탈해지는 것 같아요. 처음 만나는 분들께도 편히 대하려 하고요.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는데, 선배들이 그게 제 재산이라고 하더라고요. 인복도 많은 편 같아요. 그 덕에 언니들에게도 연기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웠고요. 결국 그 모든 게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저는 자신이 만족하는 연기를 하고 좋다고 느끼는 것보다, 상대방을 울리고 상대방과 함께 호흡하면서 상대에 따라 연기 톤이 달라지고, 집중시키고, 몰입하게 만드는 게 진짜 배우 같다고 느껴요. 그렇게 되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달려가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