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비즈엔터

[인터뷰] 끊임없는 담금질로 빚어낸, ‘사바하’ 박정민

[비즈엔터 이주희 기자]

(사진=CJ엔터테인먼트)
(사진=CJ엔터테인먼트)

누가 보기에도 참 열심히 하는 배우 박정민. 그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어보면 그는 “동물적인 본능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그에게 동물적인 본능이 없다는 게 고맙다. 박정민의 최대 장점, 성실함과 끝없는 노력이 빛을 발해 여기까지 왔다.

2011년, 영화 ‘파수꾼’을 통해 말 그대로 충무로에 혜성 같이 등장했던 박정민은 ‘동주’(2015)로 그해 거의 모든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고, 이후 상업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변산’(2017) 등에 도전하며 주연으로 영화를 책임지는 배우로 성장했다.

이렇게 한때 ‘충무로의 유망주’로 불렸던 이 배우는 이제 ‘믿고 보는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누구나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자신의 부족함을 가장 먼저 느끼며 스스로에게 채찍질 한다.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는 배우, 그래서 더욱 다음이 기대되는 배우, 박정민의 또 다른 도전은 한국 영화팬들에게 큰 선물이 된다.

이번에 박정민이 출연한 영화 ‘사바하’는 오컬트 장르로 남다른 색채를 그리는 장재현 감독의 신작. 박정민이 맡은 ‘나한’은 미스터리함으로 존재하는 인물이다. 극중 다른 캐릭터들도 꽤 등장하지만, 모두 한데 모이기지 않고 각자 하나의 공간 안에서 그림처럼 놓여 있다. 영화 자체가 설명적이지 않기 때문에 박정민은 상징적인 대사나 표정만으로 외로움과 괴로움을 드러내고, 관객은 그의 분위기만으로 압도되고 만다.

<이하 박정민과 일문일답이다.>

Q. 이번 영화 촬영은 어땠나?

A. 좋았다. 처음 해보는 장르 영화이기도 하고, 나라는 배우 혹은 사람을 조금 치유해줬다. 이런 영화로 치유 받았다니까 조금 이상하긴 한데(웃음) 내가 과거에 열광했던 것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함께한 선배님들도 좋아하게 됐고 감독님도 이제 좋은 형이 되었다. 여러모로 이 영화의 팬이 된 거다. 그래서 이 영화가 (다른 사람에게도) 재밌었으면 좋겠다. ‘영화야, 힘내라!’ 말하고 싶다.

Q. 그동안 리얼리티가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왔다면, 이번엔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는 캐릭터를 맡았다. 나한이 주는 다크한 아우라가 있는데,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다.

A. 뭔가 다 안 하려고 했다. 배우라면 연기할 때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신을 어떻게 해야 재밌을까?’ ‘시나리오엔 없지만 어떻게 더 풍부하게 만들까?’ 대부분 배우들이 생각할 텐데, 나도 초반 몇 번 시도해봤는데 지저분해지더라. 감독님 말 듣고 정확하게 대본에 있는 걸 해내는 게 맞겠구나 싶었다. 시나리오에서부터 어느 하나 도드라지게 튀는 역할이 없었다. 모든 캐릭터들이 밸런스가 있어야 했다. 순간적으로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영화의 긴장감에 도움이 되더라. 이 영화 통해서 나도 많이 배웠다. 연기란 나 혼자 개인기로 하는 게 아니라 동료 배우들과 카메라, 미술, 세트팀과 같이 연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아래 글에는 영화 ‘사바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사진=CJ엔터테인먼트)

Q. 에너지 쏟을 신들이 많더라. 탱화 그려진 방에서 괴로워하는 신부터 ‘그것’과 대화하는 신, 유지태와 만나 감정을 터트리는 신 등. 가장 신경 쓰인 신은 어떤 것인가?

A. ‘그것’을 만났을 때가 가장 부담이 많이 됐다. 이 세상에서 못 봤던 현상이지 않나. 난 평소에 귀신도 안 본다.(웃음) 실제로는 뱀이 없는데 뱀이 있는 척 해야 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감정 연기까지 해야 하니까 ‘큰일 났네’ 싶었다. 다행히 가장 마지막 촬영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Q. ‘나한’이란 이름이 최고 깨달음 얻은 성자로서 대중을 구제하는 임무를 가진 사람을 뜻한다. 이름이 캐릭터의 역할을 설명해준다.

A.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혀 있는 한 존재를 결국 무너뜨리는 게 나한이다. 그리고 ‘그것’과 ‘악’을 이어주는 매개고, 문제를 해결해내기 때문에 나한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Q. ‘불교에선 악이 없다’고 하는데, 영화 속 인물들 또한 선악을 구별할 수 없다. 나한 역시 초반엔 악인 같지만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다. 이런 측면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어떻게 보았나?

A. 나도 나한이 불쌍했다. 엉엉 울 정도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슬픈 인물은 아니지만, 짠했다. 얘는 자기 뜻대로 뭘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누군가에게 속박당하고 시키는 대로 다 하다가 나중에서야 자기가 하려고 한 것을 하려고 하지만 이미 늦어서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다. 너무 슬픈 인물이다.

Q. 극중 김제석은 왜 나한을 선택했을까? 김제석이 선택한 4명의 소년원 아이들 중에서도 나한은 가장 어리고,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것’ 또한 나한에게만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없어지는데, 왜 하필 나한이었을까?

A. 나한은 김제석에게 철저히 이용당한다. 어쩌면 가장 연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김제석을 믿고 의지하고 갈 아이가 필요했고, 그래서 ‘그것’ 역시 그 사실을 알고 나한을 사용한 거다. 가장 나약하고 혼란스러운 아이인데, 그래서 믿음은 굳건하다. 나약할수록 믿음의 강도는 세지니까.

Q. 극중 나한이 ‘추워한다’는 것도 중요하게 쓰인다. 나한이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박목사에게 그 말을 하고 떠나는데, 나한이 아닌 박목사의 입으로 발화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나한이 진짜로 뭐라고 했을지 물어본다.(웃음) 감독님도 그냥 춥다고만 말했고, 나도 처음엔 그렇게 믿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까 그냥 춥다고만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관객분들 각자 해석에 따라 달리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박목사도 시큰둥하게 얘기하지 않나. 마치 중요한 걸 말해주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 면들이 나한을 좀 더 쓸쓸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사진=CJ엔터테인먼트)

Q. ‘사바하’의 장르에 대해 오컬트보다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사람도 있고, 종교적 색채 있지만 범죄영화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박정민은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가?

A. 추리물 같다. 목사(이정재 분)의 신분으로 분한 탐정이 누군가를 쫓는 거다. 형사가 아닌 공적인 권한이 없는 탐정이다. 탐문 수사를 통해 하나씩 얻어내다가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맞닥뜨렸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탐정이 있고 관찰하는 탐정이 있다면 박목사는 그걸 관찰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 역시 시나리오 볼 때부터 추리물처럼 봤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건데?’ 라면서 이야기를 따라갔다. ‘다빈치코드’ 같은 느낌이다.

Q. ‘사바하’가 기존 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는 하고 있지만, 장재현 감독이 만든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박정민은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따로 관련된 공부를 많이 하기로 유명하지 않나. 이번엔 어떻게 공부를 했나?

A. 영화가 어렵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하다. 종교를 소재로 다룬 영화가 많이 없기도 해서 더 낯선 것도 있는데, 감독님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니까 감독님에게만 물어보면 됐다. 물어보면 답이 술술 나왔다.

Q. 대사 톤이 독특하다. 대사 또한 평범하지 않다.

A. 사극톤 같기도 해서 어려웠다. 사실 영화니까 용인이 되는 거지 실제 30대 초중반 두 남자가 그런 말투를 사용하면 너무 이상하지 않겠나.(웃음) ‘저 사람들 뭐지?’ 싶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인데 어릴 적부터 그런 말투를 쓰진 않았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말투 쓴다. 누군가가 보면 되게 이상하거나 우습게 보이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진언까지 외워야 해서 너무 어려웠다. 산스크리트어인데, 답이 없었다. 어릴 적 구구단 외우듯이 외웠다.

Q. ‘변산’에서 랩을 연습한 것이 도움되지 않았나?(웃음)

A. 랩은 맥락이라도 있지 이건(진언) 맥락이 없어서 전혀 도움이 안됐다.(웃음) 글자 글자를 외워야 했고 호흡이 부족할 때 끊으면서 갔는데, 그래서 진언을 외는 부분은 테이크마다 다르다.

Q. 이번 작품은 힘들어서 안 하려고 했는데 하게 됐다고 하더라.

A. 당시 과부하게 걸려 있는 상태였던 것 같다. ‘변산’ 때 할 게 너무 많았다. 현장은 너무 재밌었지만 숙소에 가서도 계속 글을 써야 하고 연습해야 했다. 숙소도 현장이었다. 전 회차에 다 참여해야 했고 계속 지방에 있어야 해서 힘들었다. 그래서 무조건 쉬어야 겠다 했는데, ‘사바하’ 대본 보는데 너무 재밌으니까 하게 되었다. ‘사바하’ 촬영 때 너무 춥고 고되어서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시는데, 오히려 나는 힐링이 되어서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Q. 작품을 할 때, 그냥 배우로서 연기만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너무 완벽하게 모든 걸 준비하고 공부하다 보니까 힘든 게 아닌가.

A. 내가 동물적인 감각이 없고 재능이 없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몸에 캐릭터를 붙여놔야지 감정 연기를 할 수 있다. 우는 신이 있을 때 예전에 있었던 슬픈 일을 생각할 수는 없다. 우는 것도 다 다른 감정이 있기 때문에 내 몸에 캐릭터를 쌓아놔야 한다.

Q.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런 작품을 배우가 스스로 골라서 하는 거지 않나. 어떤 마음으로 선택을 하는 건가?

A. 선택을 하고 (힘들 걸) 아는 거다. 감독님이 ‘피아노 칠 수 있겠어?’ ‘랩 할 수 있겠어?’라고 물으시면 ‘해야죠’ 하는 거다. 팔자 같다.(웃음)

Q. 늘 캐릭터를 완벽하게 만들어오기 때문에 감독부터 기자들, 관객들의 기대치가 높다. 개인적으론 부담감이 있을 법하다.

A. 부담감이라기보다는 쑥스러움은 있다. 내가 남들보다 유독 열심히 하는 게 아닐 거다. 내 또래 많은 배우들을 포함해 선배들 등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다 열심히 하신다는 것을 안다. 그분들에 비해 내 노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유독 내가 맡은 캐릭터들이 그 노력이 잘 보는 역할들이었을 뿐이다. 피아노를 친다든가 랩을 한다든가 송몽규처럼 시대적 인물라든가. 그래서 내가 포장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다들 내게 ‘사바하’에선 뭘 열심히 하셨냐고 하는데 그냥 연기를 열심히 하는 거다.(웃음) 하지만 앞으로 그러지 않을 영화들이 많지 않겠나. 오래 연기를 한다면 새롭지 않을 역할이 더 많을 텐데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싶다. 지금은 연속으로 몇 작품들이 그렇게 되어서 나 자신을 포장하는 게 있었는데,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영화가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Q. 노력이 드러나는 역할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한국 상업영화에서 비슷한 캐릭터들이 많은 상황에서 굉장히 특별한 캐릭터를 맡아온 거다.

A. 맞다. 나는 역할에 감사하다. 걔네가 날 먹여 살렸다.(웃음) 그런 특별한 역할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내가 했다는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도전을 또 해봐야 할 것이다. 굳이 뭘 배우지 않아도 도전할 건 많으니까. 기대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보여드리겠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사진=CJ엔터테인먼트)

Q. 이정재도 박정민의 전작을 다 봤다고 하더라.

A. 그런 말을 해주시면 너무 너무 쑥스럽다.(웃음) 내 버릇이 선배님들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는 거다. 내 나이 때는 뭘 하셨는지 찾아본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훼손하지 않고 잘 따라가고 싶은 바람이 있다. 나도 이정재 선배에게 진짜 감동 받은 순간이 있다. 기억은 안 나신다고 말씀하셨지만.(웃음) 포스터 촬영 때인데 내게 연출이나 시나리오 쓰고 싶은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시더라. 개인적으로 친구들끼리 남에게 안 보여주는 영화는 찍어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선배님이 영화 제작도 하시니까 ‘배우만 하려고 하지 마라. 후배들이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고, 그 길을 미리 닦는 게 선배들 역할’이라고 했다. 순간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감동적이었다. 내가 배우하기에도 모자라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말이 용기가 됐다. ‘해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뭐 어때?’ 싶었다.

Q. 그래서 그 말을 듣고 뭔가를 하고 있나?

A.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그 말이 원동력이 되어서 박차를 가하고 있는 건 있다. 내가 지금 영화 찍고 있어서 외적으로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생기면 할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 예전엔 지금 하고 있는 작품 말고 다른 걸 하면 죄짓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영화 찍을 땐 책도 안 봤다. 다른 책이 너무 보고 싶어도 오로지 대본만 봤다. 그런 걸 깰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셨다. 어쩌면 다른 책 보는 것이 작품을 하는 데 더 도움이 될 수가 있는 거였다.

Q. '타짜3: 원 아이드 잭’(감독 권오광) 촬영이 최근 끝났다는데 어땠나? 살도 많이 빠졌다.

A. 너무 너무 재밌었다. ‘사바하’와 다른 류의 영화다. 캐릭터들이 전부 살아있다. 살은 ‘변산’ 때 많이 먹다 보니까 덩치가 생겼더라. 지금은 살이 빠졌는데 얼마 전에 몸무게를 재보니 20킬로그램 정도 빠졌더라.

Q. 이제 쉴 수 있나? 다음 차기작은 언제 들어가나?

A. 6월부터나 쉴 수 있을 것 같다. 3월 첫째 주쯤에 영화 ‘시동’(감독 최정열)을 들어간다. 캐스팅 된지는 ‘사바하’ 찍을 때였으니 엄청 오래됐다. 촬영까지 일주일 정도 남아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시동’도 재밌는 게 있을 거다.

이주희 기자 jhymay@etoday.co.kr
저작권자 © 비즈엔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press@bizenter.co.kr

실시간 관심기사

댓글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