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오정해와 이시원이 여순사건에 대해 '역사저널 그날'에서 이야기한다.
21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1948년 10월 19일, 여순사건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장범준의 '여수밤바다'로 유명한 전라남도 여수는 아름다움과 낭만이 가득할 것 같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가슴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다. 8 · 15광복 직후 좌우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수많은 민간인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대구에서, 제주에서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됐고. 여수와 순천 지역에서도 비극이 이어졌다.
'여순 사건'은 1948년 여수의 14연대가 제주 4·3 진압 파병을 거부한 채 반란을 일으키며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해병대 창설, 국가보안법 제정 등 대한민국 곳곳에 많은 영향을 미친 사건이지만 사람들은 '여순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누군가는 ‘여순반란’이라 기억하고, 누군가는 ‘여순 민중 항쟁’으로 부르는 이 사건을 '역사저널 그날'에서 자세하게 살펴본다.

◆ 군(軍)반란으로 시작된 여순사건
1948년 10월 19일.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받고 출병을 준비하던 여수 14연대 소속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그들은 ‘동족(同族) 가슴에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파병을 거부했다. 동시에 ‘경찰 타도, 남북통일’을 요구하며 순식간에 여수와 순천을 점령, 전남 동부 6개 군을 장악해버린다.
정부 수립 두 달 만에 일어난 반란이었다. 그것도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인들이 정부를 향해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이들은 왜 ‘반란’이라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반란 배경과 전개 과정을 살펴본다.
◆ 정부의 빠른 진압, 그리고 후폭풍
반란 소식을 접한 정부는 빠르게 진압 작전에 돌입했다. 반란 주동자들을 잡아들였고, 여수 지역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에 따라 진압군에겐 별도의 법적 절차 없이 ‘좌익’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색출해 즉결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진압군은 마을 사람들을 학교에 모아두고 대대적인 ‘반란 협조자’ 색출에 나섰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빨갱이’로 지목해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 그 아픔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국군 내의 공산주의자 숙청 작업도 빠지지 않았다. 한국전쟁까지 지속된 ‘숙군(肅軍)’ 작업을 통해 수많은 군인들이 처형됐다. 이번 방송에서는 미 군사고문단에 의해 남아있던 충격적인 숙군 처형 장면이 공개된다.

◆ 여순사건은 어떻게 기억해 나가야 할까
‘군사반란’과 이에 대한 정부의 정당한 진압, 하지만 과잉 진압에 따른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도 컸다. 민간인 희생자 가족들은 오랫동안 가족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해왔지만 그 길은 너무 느리고 험난했다.
‘반란’과 ‘학살’이라는 두 가지 불행한 사실이 얽혀있는 이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가야 할까. 여순사건의 비극을 다룬 영화 ‘태백산맥’에서 ‘소화’로 출연한 배우 오정해가 출연해 여순 사건을 기리는 거의 절절한 ‘소리’와 ‘씻김굿’으로 역사저널 패널들의 가슴을 적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