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방송된 KBS2'다큐멘터리 3일'에서는 동해안 최대 규모의 수산시장이 있는 주문진항을 찾아가 72시간을 함께 했다.
동해안 최대 규모의 주문진항은 매년 여름, 신선한 해산물을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180만여 명의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곳이지만, 올해는 달랐다. 이곳에도 다사다난했던 ‘2020년 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텅 빈 시장을 지키고 앉아있는 상인들과 간간이 퍼덕이는 고요한 활어들. 길어진 장마 기간과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 맞물리며 빚어낸 낯선 풍경이다. 연이어 내린 풍랑주의보에 조업조차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푸르른 주문진 바다의 홍일점, 홍게. 7월 말 금어기가 해제되어 여름 조업이 시작되었다. 수심 1,500m나 되는 깊은 바다에 사는 홍게를 잡기 위해서는 배로 5시간 운전해 먼 바다로 나가야 한다. 매일 새벽 3시, 주문진항의 어민들이 깜깜히 잠든 바다를 깨우러 분연히 출항하는 이유다.

미리 투망해두었던 그물을 끌어당겨 홍게를 잡고, 또다시 투망하여 내일의 수확을 기대하는 일. 어민들에겐 평범한 일상이었던 투망(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물속에 치는 일)과 양망(그물을 걷어 올림)을 할 수 없게 된 것은, 연이어 발표된 풍랑주의보 때문이었다. 주문진항의 어민들은 오로지 기상예보에만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먹구름이 걷히자, 주문진항의 풍경도 전에 없이 생기를 띠었다. 이틀간 연이어 조업을 멈췄던 어선들은 다시 선착장을 드나들었고, 관광객을 맞이하는 상인들의 목소리도 울려 퍼졌다.

부푼 기대를 안고 간만의 조업에 나선 어민들. 35년 경력의 베테랑 선장도, 이제 막 2년 차에 접어든 초보 선장도, 드넓은 동해바다 앞에서 가슴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만선’과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선착장의 배들은 수평선 너머로 멀어진다.

한 해 동안 공들인 농사에 실패하면 그 해는 좋은 수확물을 거두기 어렵지만, 이와 달리 바다에서의 실패는 반나절이면 족하다. 한 지점에서 수확이 좋지 않으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새로운 그물을 당겨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주문진항의 사람들은 실패에 관대하고, 그날 하루의 성패에 일희일비하는 법이 없다.

바다의 일이라는 것은 사람의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주어진 하루하루의 몫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변화무쌍한 날씨,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 장마 기간에도 묵묵히 견뎌내며 ‘이 또한 지나간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