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윤준필 기자]
※ '지금 우리 학교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해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성공 신화의 정점을 찍었다. 목숨을 담보로 한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장르적 재미를 잡았고, '돈'으로부터 촉발 되는 계층 간, 계층 내의 갈등을 이야기에 잘 녹여냈다. 한국의 놀이들을 소재로 전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이네임', '지옥', '고요의 바다' 등 '오징어 게임' 이후 공개된 K-넷플릭스 드라마들은 '오징어 게임'의 낙수 효과를 입으며 전 세계 이용자들의 관심을 받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아성을 넘어서진 못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의 초반 기세는 '오징어 게임' 못지 않다. 공개 후 단 3일 만에 1억 2,479만 시청 시간을 돌파했다. 3일(한국 시간)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 집계에 따르면, '지우학'은 '넷플릭스 오늘 전세계 톱10 TV 프로그램(쇼)' 부문에서 5일 연속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지우학'은 재미있다. 학교라는 장소적 설정과 그 배경을 영리하게 활용을 하고, 좀비의 발현에 대해 꽤 그럴 듯한 개연성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우학'이 '오징어 게임' 만큼 대단한 드라마인가 묻는다면 답은 '글쎄'다.
'지우학'은 좀비 드라마에 다양한 요소들을 첨가했다. 그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면 비빔밥 같은 맛있는 작품이 나왔겠지만, '지우학'은 철학 없이 일단 좋다는 재료를 한솥에 넣고 단순하게 끓여 놓은 섞어 찌개를 먹는 느낌이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 폭력이다. 원작 웹툰에선 심해에 떨어진 우주 운석 속 바이러스가 좀비 바이러스의 시작이라고 설정했다. 반면 드라마에서는 사회적으로 실패한 천재 과학 교사가 학교 폭력의 피해자이자 사회적 시스템마저 보호해주지 않았던 아들을 구하기 위해 생존 본능이 담긴 바이러스를 개발하는데, 이 바이러스가 좀비 사태의 원인이 된다.
원작보다 훨씬 구체적인 설정이며, 시의적으로도 적절한 사회 문제를 가져왔다. 여기에 학교폭력의 피해자이자 성범죄 피해자인 '민은지'라는 캐릭터에서 '지우학'이 어떻게든 학교폭력을 화두에 올리고 싶어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학교 폭력을 화두로만 던지고, 그에 대한 메시지가 전혀 없다. 학교 폭력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민은지'는 학교폭력 가해자들에게, 심지어 학교 선생에게 "왕따를 당하는 애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라고 상처를 입은 캐릭터로 나온다. 그런데 갑자기 '민은지'를 빌런으로 만들고 심지어 주인공 그룹의 생존을 방해하는 민폐 캐릭터로 만든다.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았던 약자가 극한 상황에 몰리면 모두를 물 수 있는 위험 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또 '지우학'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모두가 유의미하지 않다. 유튜버 '귤 까는 소리', 극 초반 아이를 출산한 여고생은 굳이 등장하지 않아도 될 만한 캐릭터였다. 긴장을 풀어주는 개그 캐릭터도 포기하고 싶지 않고, 혼란 속에서도 빛나는 위대한 모성애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 포스터 속 캐치 프레이즈였던 '죽기 싫다. 죽이고 싶지 않다'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인물이다. 이들은 이야기의 분량만 늘릴 뿐이었다.
청산이 엄마, 온조 아빠는 10대 주인공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단편적으로 사용됐다. 특히 가족애를 상징하는 서브 플롯의 주인공처럼 보였던 온조 아빠는 그간의 노력에 비해 너무 허무한 최후를 맞이한다. 보는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희생이어야 거룩한 법인데, 특수부대 출신으로 냉정한 판단만 거듭하던 온조 아빠가 보여준 마지막 선택은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가차없이 깬다.
'지우학'의 전세계 흥행은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 이후 수많은 드라마들이 '제 2의 오징어게임'을 기대하며 OTT 드림을 꿈꾸고 있는 지금, '지금 우리 학교는'의 선전이 하이틴 좀비물이라는 신선함 때문인지, 작품의 완성도 때문인지는 고민할 필요는 있다. 지금으로선 '지우학'의 흥행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