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방송되는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충남 당진에서 변함없는 수평선을 닮아 인생의 파도가 잠잠해질 때까지 오랜 세월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 온 사람들을 만난다.

2017년 개장한 삼선산 수목원은 이름처럼 산에 개장한 수목원이다. 일출 명소, 함상공원, 성지 등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당진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명소다. 높은 산이 없는 당진의 지리적 특성 상 삼선산 또한 충분히 걸을 만한 높이. 가는 길목마다 색색의 꽃들이 넘실댄다. 정상에는 당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모내기가 한창인 논과 산 너머 서해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작년 여름, 한 차례 당진을 방문했던 김영철은 삼선산 수목원에서 또 한 번의 새 여정을 시작한다.

김영철이 작년에 이어 다시 면천읍성을 찾았다. 면천 성터 아래, 콩국수 골목을 발견한다. 쌀만큼 콩이 유명했다는 이 동네는 반백 년 넘게 콩국수로 그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란다. 한 식당에 들어서자 콩을 걸러내는 고부를 만난다. 운이 좋았다는 말에 무슨 말이고 하니 하루 딱 3시간. 그것도 일일 판매량인 150 그릇을 다 팔면 정오 무렵에도 문을 닫는다. 배짱 장사의 이유는 바로 꼬박 2시간, 손수 콩 껍질을 걸러내는 작업 때문이었다. 백태와 청태를 섞어 갈아 만든 콩물은 노력만큼 과연 깊고 깔끔하다. 고부의 화끈한 입심만큼 시원하고 구수한 콩국수를 맛본다.

전통시장 부근 작은 골목에서 쇳소리가 들린다. 철제 농기구를 주렁주렁 매단 대장간이 보인다. 그곳을 홀로 지키는 손창식 씨는 충남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 당진에서 4대째 가업을 이어온 대장장이다. 대장간은 농기구뿐만 아니라 바다와 갯벌이 많은 지역 특성 상 다양한 어로기구도 만들어 왔다. 덕분에 지금도 간간이 단골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모두 숙명 같은 일이다. 13세부터 대장일을 시작한 것도, 살면서 단 한 번도 다른 일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그래서 일흔이 훌쩍 넘은 그에게 대장일은 삶 그 자체인 것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큰아버지, 형... 아직도 그는 복작거리던 대장간의 추억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올린다. 그 기억을 연료 삼아 오늘도 그는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어 무쇠와 맞선다.

당진 신평면 고택 마당에서 고두밥을 펼쳐 놓은 부자를 만난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지역명사가 된 김용세 명인과 명인의 아들, 3대 김동교 씨다. 이곳은 1933년 명인의 아버지, 김순식 옹에서부터 이어져 온 양조장. 지금은 동네를 대표하는 문화관광명소가 됐다. 넓은 간척평야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당진 쌀에 덖은 연잎을 넣어 상큼하고 깔끔한 맛을 내는 이집 막걸리는 살아있는 마을의 역사다. 상조일미(常調一味). 백년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도 같은 맛을 지키기 위해 부자는 매일 인생을 돌아보고 마음을 닦는다.

당진에서 가장 큰 섬, 난지도로 향한다. 10대 명품 섬으로 꼽힐 만큼 풍광이 아름다운 난지도는 도비도선착장에서 배로 7분. 김영철은 선착장 앞 출발 예정인 낚시 배를 탄다. 그곳에서 소난지도에 정착한 지 6년차라는 선장 하상익 씨를 만난다.
당진 내륙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30년, 하상익 씨와 아내는 바닷가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섬에 온 건 낭만적인 로망 때문이 아니었다. 오랜 회사생활 끝에 차렸던 사업이 망했고 부부에겐 세상과 거리 둘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처음 해본 낯선 섬 살이는 모든 게 시행착오. 게다가 생계를 꾸릴만한 일도 구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섬을 떠날 수 없었던 건 행복. 그간의 일상에선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 때문이었다. 부부는 넓은 벌 한 가운데에서 노래를 부르고 배를 타고 나가 둘만의 추억을 쌓으며 신혼처럼 산다.

면천 저수지 옆, 오래된 어죽 식당으로 간다. 81세 어머니가 56년 간 이어온 식당. 7녀 1남, 8명의 자식들을 홀로 건사할 수 있던 생업의 현장이다. 어머니는 스물 넷, 시집 와 시어머니 밑에서 배웠던 매운탕보다 맵고 짜던 시집살이를 떠올린다. 그 시집살이가 익숙해질 만 하니 남편이 쓰러졌고 떠나기 전까지 20년, 간병하랴 장사하랴 밤낮없이 살았다. 편히 등 누일 새가 없던 세월이었다. 그 사이 큰딸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줬다. 어머니 마음을 어머니보다 더 잘 알아주는 집안의 대들보. 그래서 어머니는 미안하다. 입고 갈 옷이 없어 학교 한번 가보지 못해도 저절로 잘 자라준 딸이. 혼자 남은 어머니를 돕겠다며 곁을 지키고 가게를 돌봐주는 딸이. 어머니는 고맙고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담아 어죽을 끓인다. 굴곡진 인생보다 깊은 사랑이 맛을 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