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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칼) 007기 피격사건, '역사저널 그날' 뉴욕발-서울행 KAL 007기 격추의 비극

▲'역사저널 그날' KAL 007기 격추사건(사진제공=KBS1)
▲'역사저널 그날' KAL 007기 격추사건(사진제공=KBS1)
비극의 KAL(칼) 007기 격추사건 이야기가 2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 416회에 다뤄진다.

1983년 9월 1일,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민간 항공기 KAL 007기 격추사건. 승무원을 포함한 탑승객 269명 전원은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고, 소련 측의 거부로 비행기가 추락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은 아예 수색조차 할 수 없었다.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비극, 소련의 민항기 공격과 이후 소련의 납득할 수 없는 행태에 온 국민이 분노했다.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합동위령제 당일에는 10만여 명이 운집하여 소련 규탄 대회를 열기도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러 의문과 의혹만이 난무한 채 남은 사람들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역사저널 그날' KAL 007기 격추사건(사진제공=KBS1)
▲'역사저널 그날' KAL 007기 격추사건(사진제공=KBS1)
1983년 8월 31일, 뉴욕 JFK 공항을 출발한 KAL 007기는 경유지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공항에 도착한다. 예정대로라면 베링해와 쿠릴열도 아래를 지나, 최종 종착지인 김포국제공항으로 향해야 했던 KAL 007기.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KAL 007기는 원래의 항로를 이탈한 상태로 캄차카반도 북동쪽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건 발생 10년 뒤,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에서 발간한 보고서 속에 적힌 항로 이탈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항공운항학과 정윤식 교수와 함께 그날의 진실에 대해 살펴본다.

여러 우연과 불운이 겹쳐 미국의 정찰기로 오인당한 KAL 007기. 사실 미국은 소련이 KAL 007기를 정찰기로 오인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국은 소련 체제를 비난하는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해당 격추사건을 이용해 전 세계 반공 분위기를 형성하려 했던 것. 이러한 미국 측의 반응에 소련은 격추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사건의 책임은 미국으로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역사저널 그날' KAL 007기 격추사건(사진제공=KBS1)
▲'역사저널 그날' KAL 007기 격추사건(사진제공=KBS1)
미-소 갈등의 정점기였던 1983년, KAL 007기 격추사건을 둘러싼 당시의 시대적·국제적인 배경을 자세히 알아본다.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수습조차 미흡했던 KAL 007기 격추사건. 우리는 사건의 피해자였지만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사건 발생 40년이 지난 지금, KAL 007기가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

김세훈 기자 shkim@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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