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윤준필 기자]
"추석엔 천박사, 추천!"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의 배급사 CJ ENM은 지난 8월 초부터, '천박사'의 '추천' 마케팅을 진행했다. 자신감의 표현이었는지, 혹은 흥행의 바람을 담은 일종의 세뇌 작전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난 19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마침내 베일을 벗은 '천박사'를 보니 아무래도 전자였던 것 같다. 강동원의 '시간 순삭' 주문은 시간을 순식간에 지나가게 했고, 관객들의 집중력을 방해하는 '노잼 악귀' 따위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영화 '천박사'는 귀신을 믿지 않지만, 귀신 같은 통찰력을 지닌 가짜 퇴마사 천박사(강동원)가 귀신을 보는 의뢰인 유경(이솜)의 의뢰를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천박사'는 2014년 네이버에서 연재됐던 미스터리 장르의 웹툰 '빙의'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어두운 톤에 장르적 색채가 강했던 원작 웹툰은 이러한 장르를 좋아하는 웹툰 팬들을 매료시켰고, 인기에 힘입어 후속작 '마야고'와 '데모니악'으로 세계관이 이어졌다.
'천박사'는 원작 웹툰보다 모험과 액션에 더욱 방점을 찍었다. 귀신과 퇴마라는 소재 때문에 지레 겁을 먹은 관객들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특히 주인공 천박사를 연기한 배우 강동원의 매력이 영화 곳곳에 녹아들면서 '천박사'는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액션 활극이 됐다.
'천박사'는 강동원의 전작 속 이미지들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극 중 천박사는 퇴마 기술직을 자처하는 동료 인배(이동휘), 오랜 인연인 황 사장(김종수),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진 유경과 함께 할아버지를 죽인 원수이자, 유경의 눈을 탐내는 악귀 범천(허준호)을 쫓는다. 이러한 모험은 강동원이 도사였던 '전우치'(2009)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의 몸을 옮겨 다니면서 영력을 사냥하는 범천과 귀신을 관통하는 무기 칠성검을 활용해 적을 무찌르는 장면들은 '검은 사제들'(2015)을 생각나게 한다. 영화 초반부, 탁월한 말발로 가짜 퇴마 의식을 진행하는 모습은 '검사외전'(2016)에서 보여줬던 능청스러운 연기가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천박사'의 강동원은 이전에 보여줬던 연기를 답습하진 않았다. 오히려 미지의 영역을 개척했다. '천박사'는 퇴마를 소재로 하지만 지금껏 관객들이 봤던 영화들의 주인공과는 결이 다르다. 천박사는 보면 볼수록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다. 강동원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통찰력이 있고, 위기에서도 여유와 자신감이 넘치는 천박사를 마치 본인인 것처럼 연기했다.
천박사의 모험이 흥미진진한 건, 범접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악당 범천이 있기 때문이다. 허준호는 외적인 변신과 함께 강렬한 눈빛을 장착, 욕망에 사로잡힌 '반 귀신' 범천을 표현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는 관객들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특히 천박사와의 최후의 전투에서 허준호는 위압감이 느껴지는 아우라를 발산한다.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 악귀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천박사'는 특별한 영화다. 천박사 귀신을 믿지 않지만 퇴마 능력이 있는 천박사부터 연약하지만 귀신을 볼 수 있는 유경, 퇴마에 재능은 없지만 장비에 능숙한 인배, 영적인 능력은 부족해도 누구보다 든든한 천박사의 지원군 황사장까지 각각의 캐릭터들이 조화를 이뤄 몰입도 높은 팀플레이를 완성했다.
98분을 순삭시키는 김성식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도 돋보인다. '기생충'의 이정은과 박명훈을 영화 초반, 배우 박정민과 블랙핑크 지수를 중후반에 카메오로 배치하며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했다. 영화의 주요 웃음 포인트이자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드는 데 있어 없어서 안 될 부분이다. 또 모험이라는 큰 뼈대에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와 액션을 덧붙여 빙의와 퇴마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다.
27일 개봉, 12세 관람가, 쿠키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