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한국인의밥상'에서는 부산 밀면, 서울 올림픽 선수천 식당의 냉면·불고기 맛에 반한다. '한국인의밥상'이 우리 마음속 오래된 향기와 온기를 다시 꺼내 본다.
◆부산,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다 - 부산광역시 남구 우암동
부산항 동쪽, 동항이 내려다보이는 우암동 소막마을. 일제강점기 일본의 소 검역소가 있던 자리에, 해방 후 귀환 동포가 들어와 살고 전쟁 이후 피란민과 산업화 시대 공장 노동자들까지 모여들며 우리 근현대사가 켜켜이 쌓인 마을이 되었다.

흥남 철수 때 부모와 함께 피란 내려와 지금은 3대째 국수를 잇는 밀면집 사장 유상모(78) 씨와 4대 사장으로 가업을 이어가는 아들 유재우(50) 씨의 밥상에는 실향민의 그리움과 꿋꿋한 세월이 쌓여 있다. 실향의 역사와 함께 자라 온 부산 사람들의 소울푸드를 통해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담긴 그리움의 정서를 맛으로도 전한다.

누군가에겐 타향, 누군가에겐 마지막 희망이었던 이방인의 도시, 서울.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서울의 풍경과 삶, 그리고 음식문화까지 바꾸어 놓은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서울의 골목을 끝없이 배회하며 자랐다는 정윤수(57) 교수에게 서울은 언제나 ‘길이 스승이었던 도시’이자, 청년 시절의 고단함과 설렘이 겹쳐 있는 공간이다. 서울 올림픽 당시, 군 복무 중 올림픽 개막식 매스게임 참여했던 그는 연습 때 수없이 들었던 노래 ‘서울 서울 서울’을 떠올리며 그 시대 청년들의 꿈과 불안을 함께 이야기한다. 한편, 올림픽은 주방에서도 조용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개·폐막식에서 선수단 피켓을 들었던 유용신(55) 씨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덕선’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연습 때 맡았던 국가인 ‘마다가스카르’ 피켓이 갑작스런 올림픽 불참으로 없어져 눈물짓던 일, 결국 ‘우간다’ 피켓을 들고 입장한 순간, 운동장을 걸으며 먹었던 샌드위치의 맛까지. 세계인의 축제 한가운데 서 있던 10대 소녀의 특별한 올림픽을 들려준다. 선수촌 급식, 경기장 도시락, 호텔 만찬과 올림픽 선수천 주변 식당의 냉면·불고기까지. 서울 편은 그날의 노래와 음식, 그리고 그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의 기억을 따라간다.
■ 눈물의 종점, 목포는 항구다 – 전라남도 목포시 금동
호남행 열차의 종착역, 전남 목포. 누군가는 이곳을 떠나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찾아 돌아온다. 유달산 아랫마을 금동에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특별한 동네 밥집이 있다. 이곳은 안수경(65) 씨가 운영하는 밥집이자 동네 사랑방이다. 이 밥집의 손님층은 각양각색이다. 학교 선생님, 세탁소 사장님, 청년 사업가, 게스트 하우스 운영자, 직장인, 작가, 성악가와 트로트 가수까지. 다양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안수경 씨의 밥집에서 한자리에 모인다. 직업도, 나이도, 사연도 다른 사람들이지만 이곳에서는 음식과 노래가 서로를 이어주는 공통의 언어가 된다. 한때 항구와 역을 중심으로 가장 번성했던 동네지만 지금은 사람도 줄고 개발도 비껴간 골목에서, 이들은 협동조합 ‘낭만’을 만들어 지역 공동체를 지키며 맛도, 인생도 ‘개미지게’ 살아가고 있다. 수경 씨를 중심으로 노래 잘하고 손맛 좋은 이웃들이 하나둘 모여 민어 녹두죽, 톳 비빔밥, 톳 고구마 무침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운다. 가슴 저리던 옛일도, 오징어초무침, 막걸리 한 잔에 어느새 추억으로 품게 되는 사람들. 어제의 상처를 안고도 오늘의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삶을 통해, 노래와 음식이 어떻게 다시 살아갈 힘을 건네는지 담아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