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서현진 기자]
억지스럽게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않아 더 매력적이다. 싫은 티는 대놓고 하면서 좋으면 살포시 보조개 미소로 속내를 대신한다. 전례 없던 시크함으로 '국민 츤데레'(겉으로 퉁명스럽지만 속은 따뜻하다는 뜻의 신조어)의 표본이 됐다. 이서진 이야기다.
스스로는 아닌 척 하지만, 이서진은 어느새 대세 예능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나영석 PD와 손잡고 tvN '꽃보다할배' '삼시세끼'의 정체성 확립과 시즌제 성공에 공헌했다면, 이제는 서수민 PD와 KBS 예능프로그램 '어서옵쇼(Show)'로 만나 또 한 번 예능인의 입지를 다질 예정이다.
이서진은 이런 활발한 외도(?)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서 자존심을 지켰다. 최근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결혼계약'에서 그간 예능에서 보여준 웃음기를 쏙 빼고 열연했다. 국민츤데레, 국민투덜이에 이어 절절한 연기로 '멜로킹'이란 수식어를 추가한 '배우' 이서진의 귀환이 반갑다.
Q. '결혼계약' 인기 예상 했나
이서진: 1, 2부 나가고 관계자들이 '잘 봤다' '잘 될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줬다. 이런 평은 처음이(었)다. 피디도 자신있어하고, 대본도 좋아서 나 역시 재미있게 찍었다.
Q. '결혼계약' 한지훈 캐릭터를 통해 예능 이미지를 단숨에 잊게 했다. 이런 반전을 주고 싶었나.
이서진: 내가 원래 뭔가에 부담을 느끼는 성격이 아니다. 좋은 작품이 나오면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을 뿐, 예능 이미지를 벗으려고 작정한 적은 없다. 사실 처음엔 '결혼계약'을 안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작가님과 만나서 수정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 말했더니, 3일 만에 대본을 수정해서 보내주셨다. 그 점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출연을 결심하고 '앞으로는 (대본에 대해) 절대 아무 말씀 안 드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Q. 수정을 원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이서진: 처음에는 한지훈 캐릭터가 착했다. 이렇게 착한 사람이 헌신적인 사랑을 하는 건 뭐랄까. 좀 빤한 설정 같아 보였다. 뭔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시청자들이 16회까지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반에 한지훈을 조금 '한량'스럽게 그려냈으면 했다.
Q. 17살 연하 유이와 나이 차이가 무색한 호흡을 자랑했다. 초반 우려와 달리 자연스러운 로맨스로 연기 호평을 받았다.
이서진: 사실 유이가 상대역이라고 했을 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이 차이도 나는 잘 모르겠던데.(웃음) 오히려 유이가 나이 많은 선배와 하니까 불편했을 거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진짜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묻더라. 나는 어떤 작품을 하면 한동안 그 사람이 된다. 나이가 들어서 멜로를 하니까 상대방에 대한 이해, 사랑에 대한 깊이가 생긴 것 같다. 아마 많은 선배 연기자들이 멜로 연기를 하면 잘 할 거다. 다만, 기회가 잘 안 주어질 뿐.
Q. 자연스러운 스킨십이 열애의혹을 부추겼다.
이서진: 열정적인 사랑을 했을 때의 나를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빠지면 내가 이랬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물론 디테일은 유이와 함께 만들었다. 진짜 사귀는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않을까란 가정을 하니까 더 그런 평이 있었던 것 같다.
Q. '죽기 전에 이런 사랑을 해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했는데. 그 의미는?
이서진: 알콩달콩 하는 건 겉으로 보여 지는 거다. 깊은 감정을 가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렵다. 나이가 들면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자기 먼저 생각하게 되니까. 드라마 캐릭터는 언제나 나보다 훌륭하다.
Q. 드라마 결말은 마음에 드나.
이서진: 처음부터 무조건 결말은 슬프게 끝나길 희망했다. '결혼계약'은 현실적인 스토리를 담은 드라마다. 그래서 (유이가 완쾌되는) '기적'은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시청자들의 바람에 좌지우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쌓아온 슬픈 감정들이 우스워질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훌륭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Q. 공교롭게 오늘(3일), 유이가 배우 이상윤과 열애를 인정했다. 유이 열애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는지?
이서진: 전혀 몰랐다. 나 역시 아침에 기사로 접하고 '아 인터뷰에서 내 질문의 반이 줄겠다'란 생각을 했다(일동웃음). 촬영하면서 유이가 만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고는 느꼈다. (유이 열애를) 몰라서 더 연기하기 편했던 것 같다. 유이를 이해한다. 뭣 하러 나에게 열애 사실을 털어놓겠나. 숨겨서 서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Q. 다른 배우는 알고 있었다고 하던데
이서진: 정말? 그 사람이 누군지 알려 달라. 그럴 리가 없는데...아무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단 김광규 형은 100% 몰랐을 거다(일동웃음).
Q. 당신도 현재 연애 중인 건…(웃음)
이서진: 최근 3년이 내 인생에서 제일 바쁘다. 그래서 시간이 나도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많다. 지금은 연애가 귀찮다. 숨겨야하는 것도 싫다. 연애에 대한 갈망은 왔다 갔다 한다. 일하고 들어오면 혼자 있고 싶다가도, 쉴 때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 요즘은 너무 바쁘다보니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더 줄어든 것 같다.
Q. 현재 이서진이 꿈꾸는 사랑은?
이서진: 조용히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고 싶다. 나는 오글거리는 이벤트를 못한다. 연인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하지 않는다. '결혼계약' 한지훈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서 참 좋았다.
Q. 이렇게 진한 멜로를 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공허하고 여운이 남을 것 같은데.
이서진: 예전엔 정말 작품 끝나면 2달 넘게 후유증이 가고 그랬다. 그런데 '결혼계약'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바로 예능 '어서옵쇼' 촬영을 하니까 공허함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바로 현실로 돌아왔다.(웃음)
Q. 유이가 '섹션tv'에서 마지막 촬영 날 이서진이 뒤에서 울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서진: 절대 아니다.(일동웃음). 유이가 뭔가를 오해한 것 같다. 우는 신이라 우는 거였다. 드라마가 끝나서 운 건 아니었다. 솔직히 그때는 너무 피곤해서 빨리 끝내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Q. 극중 유이와의 러브신 말고 아빠로서 감정을 쌓아가는 감정도 중요했다.
이서진: '결혼계약' 콘셉트 자체가 딸과 가까워지는 거였다. 유이보다 먼저 아이에게 빠져드는 것. 그런 면이 잘 살아서 다행이다. '결혼계약' 린아는 참 해맑다. 나는 조용하고 얌전한 여자 아이들이 참 예쁘다.
Q. 딸바보 면모도 보이던데
이서진: 여자 조카가 있다. 벌써 중학교 1학년이 됐는데, 내가 너무 예뻐한다.
Q. 조카는 이번 작품에 대해 뭐하고 하던가.
이서진: 너무 웃었다고 하더라. 웃긴 드라마가 아닌데 웃었다고 하길래 의아했는데, 내 원래 모습을 아니까 깔깔 웃었다고 하더라.
Q. 이제 다시 예능인이다. '어서옵쇼' 출연에 대해 많이들 의아해 하는 분위기다.
이서진: KBS에서 작년부터 스튜디오 예능프로그램을 하자고 했다. 몇 번 거절을 했는데 끈질기더라. 내가 “스튜디오 예능은 아는 게 없다”고 했는데 서수민 CP가 “아무 걱정 말라”고 하더라. 나는 예능을 포함해 뭔가를 막 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대신 하게 되면 열심히 잘한다.(웃음) 서CP가 이렇게 까지 구애를 하니, 믿고 가기로 했다.
Q. 이서진-김종국-노홍철, 의외의 조합이다.(웃음)
이서진: (노)홍철이와 나는 상극이다. 노홍철은 미친 듯이 하는 스타일이고 나는 아무 것도 안하는 스타일이다. 다행히 그것을 조율해주는 (김)종국이가 있다. 그래서 셋이 있으면 재미있다. 게스트로 출연한 안정환 씨도 잘하더라. 내가 아무 것도 안할 것 같으니까 솔선수범한 것 같다(웃음).
Q. 그러고 보면 유이부터 최지우, 김광규 등 은근 여러 사람들과 호흡이 좋아 '케미 요정'이라 불린다.
이서진: 나는 내 프로그램 게스트로 와주신 분들이 고맙다. 그래서 잘해주고 싶고,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게스트를 돋보이게도 하고 싶고.
Q. 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게스트는 누구인가.
이서진: 다 좋았다. '삼시세끼'에 두 번씩 온 분들이 특히 고맙다. 윤여정 최화정 선배님은 첫 게스트라 좋았고. 최지우는 직접 김장해준 김치 덕분에 오래 먹을 수 있었고 좋았다.
Q. 투덜이 예능 캐릭터는 실제 이서진과 많이 비슷한가.
이서진: 예능 모습이 제 실제 모습이다. 평소와는 달라서 작품에서 연기하는 게 좋다. 실제로는 그런 걸 못하니까.
Q. 예능을 통해 ‘츤데레’ 캐릭터로 자리 잡고, 인기를 끌게 된 것도 있는 것 같다.
이서진: 난 최대한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투덜대면서 할 건 다한다. 나영석 작가와 이우정 작가가 원하는 콘셉트에 내가 잘 부합됐기에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신 것 같다. 내가 10년 전에 그렇게 했으면, 또 달랐을 수 있다. 시대의 흐름상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시기 등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운이 좋았다.
Q. 팬 층이 다양해졌다.
이서진: 프로그램이 잘 되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니까 감사하다.
Q. 혹시 차승원 씨가 나온 '삼시세끼'도 봤나?
이서진: 띄엄띄엄 봤다. '요리, 진짜 잘하더라. 차승원 씨는 하루 이틀 요리한 사람이 아니다. 평생 살림 해 온 사람의 스킬이다. 따라갈 수가 없다. 나 역시 '삼시세끼' 이후, 요리에 대한 관심이 생기긴 했다. 그런데 잘 해먹지는 않는다. 바쁘다 보니, 또 혼자 해서 먹기도 싫고.
Q. 나영석 피디는 '결혼계약' 방송 중 따로 모니터 해줬나.
이서진: 예능 피디인데 뭐 연기에 대해 크게 이야기 할 게 있겠나. 영석이와 자주 만나지만 일 이야기는 잘 안한다.
Q.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다면.
이서진: 성직자인데 살인자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선과 악을 넘나드는 역할이 매력적인 것 같다. '베트맨'이 선인지 악이지 애매한 것처럼 단지 착한 사람, 이유 없이 나쁜 사람이 아니면 좋겠다. 5년 전부터 국내에도 장르물이 나오더라. 앞으로는 더 많이 나올 것 같다. 장르물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