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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서 만난 사람] 천우희, 미스터리한 여자

[비즈엔터 칸(프랑스)=정시우 기자]

▲칸국제영화제에서의 천우희
▲칸국제영화제에서의 천우희

산 자인지/죽은 자인지, 악인인지/선인인지, 거짓을 말하는 것인지/진실을 내뱉는 것인지, 혹은 그 무엇도 아닌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스크린에 팽팽한 긴장과 서늘함을 선사한다. ‘곡성’ 천우희 이야기다. 영화에서 사건의 미스터리한 목격자 무명 역을 연기한 천우희의 출연시간은 10분 남짓. 하지만 망가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이 배우는 ‘중요한 것은 분량이 아니라 존재감’이라는, 가장 기본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사실을 증명한다. 2014년 ‘한공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곡성’으로 올해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기까지. 신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천우희를 프랑스 칸에서 만났다.

Q. 단발이 근사하게 어울린다.
천우희:(수줍은 미소) 다행이다. 차기작인 이윤기 감독님의 ‘마이엔젤’(가제) 때문에 머리 스타일을 바꿨다.

Q. 칸 레드카펫을 밟은 기분, 어땠나.
천우희: 칸에 오는 내내 궁금했다. 어떤 기분일까. 현실로 닥치니까 꿈같기도 하고, 의외로 덤덤하기도 했다.

Q. 즐기는 기분이 들었다. 어깨춤도 추고.(웃음)
천우희: 재미있었다. 평소에도 영화제 같은 곳에 가면 춤추고 그런다. 스태프들은 “너는 배우야. 자제해야지” 하는데, 글쎄. 내적 흥을 굳이 숨길 필요가 있을까 싶다. 배우니까 오히려 감정을 더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무명(천우희)은 여러 의미에서 미스터리한 캐릭터다. 어떤 인물로 보여 져야 한다고 생각했나.
천우희: 영화를 분석하는데 있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직관이다. 영화를 분석하면서 캐릭터를 하나하나 만들어가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이미지가 딱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왜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을까’하고. 그런데 무명은 잡히는 게 없었다. 에너지만 있고, 형체는 없는 인물 같았다. 어떤 정서를 보여줘야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게다가 무명은 관객들에게 혼란을 줘야 하는 인물이지 않나. 최대한 원초적으로 연기하려고 했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서브 텍스트를 품고 카메라 앞에 서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Q. 이미지 이야기를 했는데, ‘한공주’ 때는 어떤 그림을 떠올렸나.
천우희: ‘한공주’에서는 사슴 이미지를 떠올렸다. ‘써니’는 이리를 떠올렸고. 이번 영화에서는 뱀의 형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뱀이 나라마다 이미지가 다르지 않나. 불경스럽기도 하고, 반대로 존귀하기도 한 신비로운 존재다.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연기했는데, 스태프들과 감독님이 좋아해줘서 다행이었다.

Q. 감독님과 캐릭터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천우희: 의논을 많이 했다. 감독님이 “어떻게 봤니?” 하길래 “멘붕인데요”했다.(웃음) 감독님도 본인 머릿속에 있는 인물들을 한 단어로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워 하셨다.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현장에서 만들어 나간 부분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감독님이 “여자는 우주 만물의 근원인 것 같다”고 하더라. 그 말씀에서 힌트를 얻었다. 어떤 캐릭터로 그려야 하는지 감이 왔다.

Q. 쉽지 않은 캐릭터다. 하지만 확신을 가지고 연기한 느낌이 든다.
천우희: 관객들에게 혼란을 주는 캐릭터지만,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나는 혼란스러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확신을 가지고 연기할수록 관객들이 혼란스러워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다.

Q.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무명의 정체가 뭐라고 생각하나.
천우희: 일단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존재라고 믿었다.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나 역시 궁금해 하며 연기를 했다.

Q. (다음 질문과 답변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극 초반 무명은 박춘배의 자켓을 입고 등장한다. 무슨 의미인가.
천우희: 나 역시 그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 봤다. 일단 페이크처럼 보이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로 하여금 ‘범인은 무명인가?’라는 미끼일 수 있다.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외지인(쿠니무라 준)에게 사진이 지니는 의미와 같다는 쪽이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의 물품을 하나씩 지닌 게 아닐까 생각한다. 종구(곽도원)의 딸 효진의 머리핀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지 않았을까 싶다.

Q. 무명과 외지인의 결투 씬이 편집된 것으로 안다. 많이들 편집된 그 장면을 궁금해 하는 분위기다.
천우희: 나도 그 부분의 편집본을 보지 못했다. 그 장면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보다 명확하게 보여졌을 거다. 무명을 통해 외지인 역시 더 자세히 드러났을 테고. 나중에 감독판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Q. 선과 악이 모호하다. 진짜 무서운 존재는 무엇일까.
천우희: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불신, 나약함이 아닐까 싶다. 종교의 기원이 뭘까. 인간의 두려움 때문에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한다.

Q. 종교가 있나.
천우희: 무교다. 하지만 신은 있다고 생각한다.

Q. 지금 이 순간, 미래의 천우희를 떠올린다면.
천우희: 사람에겐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의 경우 작품일 거다. 내 장점이라면 작품이 당장 없다고 해서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거다. 항상 ‘언젠가는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임했던 것 같다. ‘한공주’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건 내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주변 사람들의 기대감은 미비했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 적어도 내 모든 걸 쏟아 부은 영화였고, 갈증 없이 다 풀어낸 작품이었기에 확신이 있었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조급해 하지 않고 한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배우의 모습이 돼 있지 않을까 싶다.

칸(프랑스)=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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