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클릭비 활동 시절, 하현곤은 모두가 인정하는 아이돌이었다. 무대 위 하현곤은 언제나 반짝였고 그의 뒤엔 수많은 소녀팬들이 뒤따랐다. 스무 살, 클릭비 탈퇴와 동시에 하현곤은 우상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미용 학원에 다니다 3개월 만에 때려 치고 기타를 뚱땅거렸다. 스물네 살, 등 떼밀려 간 군대에서 하현곤은 드럼 스틱을 다시 손에 쥐었다. 작곡도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인 노래들은 ‘하팩 캘린더’의 기반이 됐다.
서른네 살. 하현곤은 여전히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른다. 더 이상 화려하지도 빛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신념은 확고하다. 자신의 길이 정도(正道)라는 믿음 또한 굳건하다. 그래서 하현곤은 여전히 동경의 대상이다. 그래서 하현곤은, 여전히 아이돌이다.
Q.클릭비 활동 이후 꽤 오랜만에 얼굴을 본다. 어떻게 지냈나.
하현곤: 매일 똑같은 일상이다. 일어나 밥 먹고 기타치고, 쉬었다가 기타치고, 자기 전에 기타 친다. 그렇지 않아도 근황을 많이 물어봐서 재밌는 대답을 해주고 싶은데 늘 똑같다.
Q.하현곤팩토리란 이름으로 ‘하팩 캘린터’를 진행 중이다. 어떤 프로젝트인지 소개를 부탁한다.
하현곤: 스마트 폰이 보급된 뒤부터 음악 시장 흐름이 빨라졌다. 정규 혹은 미니 음반을 내는 게 무색할 정도다. 흐름에 맞게 매달 싱글 음반을 내는 프로젝트를 지난 2012년부터 진행 중인데, 그게 ‘하팩 캘린더’다. 미리 만들어놓은 곡을 발표하기도 하고, 그 때 그 때 꽂혀 있는 주제에 대해 곡을 만들기도 한다.
Q. 혼자의 힘으로 꾸리는 프로젝트라고 들었다. 장단이 있을 텐데.
하현곤: 누구도 간섭하지 않으니 내가 원하는 주제,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곡을 쓸 수 있다. 반대로 혼자이기 때문에 운영이 녹록치 않은 부분 또한 있다.
Q. 경제적인 문제가 클 것 같다. 그런데 윤종신은 월간 윤종신의 수익성이 ‘아카이빙(Archiving)’에서 비롯된다고 하더라. 과거의 곡이 현재의 나에게 수익을 가져다주면서 자생 가능한 프로젝트가 됐다는 설명이다.
하현곤: 너무나 공감한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곡으로 프로젝트를 접한 사람이 과거에 발표했던 곡을 다시 듣는다더라.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100곡 가량을 발표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노래가 많지만, 훗날 어떤 계기로든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길 거고 그러면 초반에 냈던 노래들도 궁금해 하지 않을까.
Q.개인적인 기록장치 역할도 하겠다. 당시의 감정이 곡에 고스란히 반영될 테니까.
하현곤: 맞다. 외로울 때나 힘들 때, 화가 났을 때, 답답할 때 곡이 많이 나온다. 듣는 분들도 ‘하현곤이 이 곡을 작업할 땐 굉장히 화가 나 있었구나’라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Q.무엇이 당신을 화나게 만드나.
하현곤: 사회적인 문제? 으허허허. 평소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다. 한국사 강의를 하는 설민석 선생님의 굉장한 팬이다. 유튜브를 통해 강의 영상을 자주 보는데, 애국심이 생기면서도 한편으로는 화가 난다.
Q. 곡 작업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하현곤: 예전엔 무조건 멜로디였다. 요즘에는 가사, 특히 전체적인 주제 선정에 공을 들인다. 만날 사랑 얘기만 쓸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지인들과 얘기하면서 소재도 많이 얻고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가사도 쓰고 싶다.
Q.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하현곤: 가능하다면 사랑 노래는 되도록 쓰고 싶지 않다. 세상에 대해, 자유와 공정성에 대해 노래하고 싶다. 과거 ‘내 시급보다 비싼 캬라멜 마끼야또’(2013)라는 노래를 통해 최저 시급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위트 있게 표현하고 싶다.
Q. 자유와 공정성이라. 자유를 억압받은 경험이 있나.
하현곤: 나의 자유보다는 사람들의 자유에 대해 노래하고 싶다. 요즘 사회면 기사들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사람들이 자유를 만끽하지 못한 채 기계처럼 살아가는 게 안타깝다.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한 걸까? 사실 나는 고집이 센 편이라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왔다. 특히 서른 살 전까진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웃음) 결과가 늘 좋진 않았지만 모두 피와 살이 되는 경험이었다.
Q.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삶, 권하고 싶나.
하현곤: 나는 이 삶이 좋지만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도 다르고 나아가는 방향도 다르니까. 다만 자유를 잊지 말고 가끔은 쉬어 가는 것도 중요하단 얘기를 하고 싶다.
Q. 타협하기 가장 힘든 영역은 역시 ‘음악’인가.
하현곤: 맞다. 다행히 ‘하팩 캘린더’는 혼자 힘으로 이끌어가는 프로젝트라 사람들의 간섭은 덜하다. 다만 함께 작업하는 뮤지션들끼리의 배려는 필요하다. 지난해 발표한 12곡의 노래에는 모두 피처링 가수를 썼다. 그런데 내가 의도한 느낌을 가수가 구현하지 못할 때 힘들더라.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원하는 느낌을 끌어오려고 애를 많이 썼다.
Q. 피처링으로 참여한 가수 중에 클릭비 멤버 강후, 우연석 등도 있었다.
하현곤: 멤버들과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지난해 재결합 전에도 멤버들끼리는 데뷔일(8월 7일)마다 모임을 갖곤 했다.
Q. 클릭비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현곤: 고향 친구들 같다. 그 땐 소속사에서 시키는 음악, 시키는 활동을 했지만 그 안에서 즐거움도 있었고. 우리끼린 굉장히 재미나게 놀았다.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Q. 처음으로 완전체 클릭비가 뭉쳤던 건 올해 2월 방송된 SBS ‘심폐소생송’을 통해서였다. 방송을 보니 눈물을 흘리는 팬들도 있던데.
하현곤: 13년만의 재결성이었다. 강산도 변할 시간이다. 더구나 요즘 멋진 가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이 많은 오빠들을 기다려주고 좋아해주고 정말 고맙다. 클릭비라는 팀은 우리 일곱 명만의 것이 아니다. ‘팬들을 위해서 우리가 활동을 좀 더 하자. 그게 기다려준 팬들을 위한 보답이다’라는 얘기를 멤버들끼리도 많이 했다.
Q. 팀에 대한 애착이 많아 보인다. 탈퇴 후 마음고생이 상당했겠다.
하현곤: 군대에서 갓 전역한 사람과 비슷한 심정이다. 이제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못 내리겠더라. 1년 정도를 마냥 놀았다. 그러다 작곡을 해보자는 생각에 기타도 배우고 시퀀서도 배웠다. 군 입대 전 솔로 음반을 내려고했는데 일이 어그러졌고, 스물네 살에 입대했다.
Q. 팀 탈퇴 당시 당신은 고작 스무 살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이른 나이에 한 셈이다.
하현우: 그 땐 고민을 털어놓을 대상도 없었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봐야 대학교 친구들인데 나와는 다른 경험을 가진 친구들이니까 공감대 형성이 안 됐다. 혼자 속병을 앓았다. 답답했고 멍한 시간도 많았다.
Q. 군 생활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건가.
하현곤: 맞다. 군 생활 도중 군악대로 차출돼서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었다. 그게 큰 도움이 됐다. 개인 연습을 할 시간도 주어졌고 곡도 꽤 많이 썼다. 작곡가 출신이나 악기 전공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음악적으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하팩 캘린더’의 기반이 군 생활 때 다져진 셈이다.
Q. 군 입대 전의 하현곤과 이후의 하현곤은 어떻게 다른가.
하현곤: 가장이 된 것 같다. 이젠 내 노래가 내 새끼처럼 느껴진다. 책임감부터가 다르다. 내 새끼들을 더 예쁘게 꾸며서 세상에 내보내고 싶다. 그러려면 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Q. 책임감은 뮤지션으로서의 책임감을 말하는 건가.
하현곤: 인생에 대한 책임감도 커진다. 예전엔 누군가 커트라인을 정해줬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 스스로 인생 플랜을 짜고 계획대로 나아가야 한다. 인생의 주체가 내가 되면서 방향도 스스로 정하게 됐다.
Q. 그래서 무슨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나.
하현곤: 프로듀서 겸 싱어송라이터다. 그리고 인간으로서는 책임감과 배려를 갖추려고 한다. 입 밖으로 내뱉은 모든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 겨우 한 발 뗀 듯한 느낌이다. 더 노력해야 한다.
Q. 그래도 확실한 방향성을 갖췄으니 안정감은 더욱 들겠다.
하현곤: 주위에서는 걱정을 많이 한다. 주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걱정이다. 물론 힘들긴 하다. 주변에서는 다른 길을 알아보라는 얘기도 하는데, 나는 이 길로 나아가면 언젠가는 잘 될 거란 믿음이 있다. 물론 ‘다른 길’이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선택이 정도(正道)라고 믿는다.
Q. 팬들에겐 지금 당신의 모습이 무척 자랑스러울 것 같다.
하현곤: 클릭비 시절 팬이었던 친구들과는 아직도 친하게 지낸다. 이젠 가수와 팬이 아닌 오빠 동생 같은 사이다. 음반을 내면 쓴 소리도 거침없이 해준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는 매달 팬들과 모임도 가졌는데, 지금은 준비과정을 거쳐서 더욱 재밌는 시간을 보내려고 계획 중이다. 너무나 고마운 친구들이다.
Q. 소신을 가진 우상의 존재만큼, 팬들에게 고마운 것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