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4월, 예능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프로그램이 있다. 설 파일럿을 거쳐 정규 편성 열차에 탑승한 MBC ‘복면가왕’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그동안 ‘외국인 예능’, ‘육아 예능’ 등으로 점철된 예능계엔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이 중에서도 특히 ‘복면가왕’은 얼굴을 가리고 편견 없이, 오직 목소리로만 대결하는 포맷으로 안방극장에 급속도로 인기를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침체되던 ‘일밤’을 살린 구세주가 된 ‘복면가왕’은 신선함을 기저에 깔고 ‘클레오파트라’ 김연우, ‘땡벌’ 육성재, ‘오골계’ 산들 등 눈에 띄는 스타들을 배출하며 ‘나는 가수다’ 이후 끊겼던 음악예능의 전성기를 다시 열었다. 최근에는 국카스텐 하현우가 ‘우리동네 음악대장’으로 9연승 신화를 쓰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복면가왕’ 성공에 방송사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과거 JTBC ‘비정상회담’을 필두로 외국인 예능이 인기를 끌자 각 방송사에서 프로그램마다 외국인을 배치했던 것처럼, 또 비교적 최근 ‘쿡방’이 대세 반열에 오르자 요리 방송이 도처에 퍼졌듯, 이번엔 음악예능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 SBS는 ‘보컬 전쟁-신의 목소리’(이하 신의 목소리), ‘판타스틱 듀오’ 등 일반인을 배치시킨 음악 경연 예능을 론칭했고 MBC도 일반인과 가수의 콜라보레이션을 표방하는 ‘듀엣가요제’를, tvN과 JTBC는 각각 ‘노래의 탄생’과 ‘슈가맨’·‘히든싱어’·‘걸스피릿’ 등을 새로이 편성했다.
다수의 음악예능은 저마다의 콘셉트를 내세우며 각자도생을 꿈꿨지만, 이는 결국 ‘WIN-WIN'이 아닌 시청자 피로도를 높인 결과를 낳았다. 방송사마다 황금시간대에 음악예능을 배치하다보니 시청자에게 어떤 프로그램이 어떤 내용이며 어느 채널에서 방송하는지를 각인시키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큰 차별성이 없는 만큼, 결국 ‘음악예능’으로의 편중은 예능계 자체에 위기론을 불러왔다.

사실 이런 경향은 예능계에서 꽤 비일비재한 일이다. 앞서 외국인 예능과 쿡방이 인기를 얻자 ‘대세 예능’에 편승한, ‘아류 느낌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는 걸 봐왔지 않은가. 이에 대해 한 방송 관계자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아무 것도 없는 맨 바닥부터 시작하려면 그만큼의 리스크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성공 가능성을 점칠 수 없는 만큼 제작비를 투자받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걸 선호하는 시청 경향도 비슷한 예능이 생기는 것의 이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방송가에서는 예능 개혁 바람도 심심찮게 불어오고 있다. SBS의 경우 ‘스타킹’, ‘신의 목소리’, ‘동상이몽’ 등을 폐지하고 신규 파일럿 예능들을 대거 편성했다. ‘인생게임-상속자’, ‘셀프디스코믹클럽 디스코’, ‘꽃놀이패’, ‘다시 쓰는 육아일기-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운우리새끼) 등 새 파일럿 예능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사로잡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미운우리새끼’의 경우, 수요일 심야 예능 최강자인 MBC ‘라디오 스타’를 꺾고 단숨에 1위를 거머쥐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인생게임-상속자’도 시청률 상승세를 기록하는 등 새로운 포맷에 대해 시청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SBS는 파일럿 프로그램의 성공에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는 상태다. SBS 예능국의 한 관계자는 “반응이 좋다고 해서 정규 편성을 바로 결정지을 수는 없다. 아직 방송되지 못한 다른 파일럿 프로그램들도 있는 만큼, 현재는 파일럿 프로그램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화제성과 인기가 충족되면 대개 정규편성이 되는 파일럿 프로그램의 특성 상, 일각에서는 SBS의 신규 파일럿 다수가 정규편성의 기회를 잡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비슷비슷한 예능의 시대가 저물고 신선함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한 차례 개편 칼바람이 지나간 SBS는 새로움을 찾고자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MBC의 경우 시청률과 화제성을 이유로 교양 다큐인 ‘고향이 좋다’와 장수 예능 ‘해피 타임’, ‘찾아라 맛있는 TV’ 등을 폐지했다. KBS는 논란으로 인해 ‘나를 돌아봐’, ‘어느날 갑자기 - 외.개.인’ 등을 폐지했다. 지금이야말로 작년의 ‘복면가왕’과 ‘마리텔’같은, 유행을 선도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이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