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서현진 기자]
결국 그는 쓰레기와 사랑꾼의 면모를 다 갖춘 덕에 ‘쓰랑꾼’이라는 전례 없던 수식어를 얻었다. 그렇게 정의할 수 없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키며 유지태는 배우로서 매력을 쏟아냈다.
이태준 캐릭터가 꾸준히 시청자들의 관심 속에서 호응을 얻은 것은 유지태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옳고 그름을 고민하게 만드는 그의 연기는 캐릭터에 개연성을 만들어냈다. 죄수복을 입고 있어도 설렘을 줬고, 화면을 장악하는 긴장감을 주도하기도 했다. 유지태의 매력으로 꽉 찼던 ‘굿와이프’의 종영이 유독 아쉬운 이유다.
Q: 종영하고, 휴식도 취하지 않은 채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하 ‘부코페’)에 참석했는데
유지태: 하루인데요 뭘(웃음). 제가 주변사람을 챙기는 편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김준호 형이 열정을 다하고 있는 만큼 ‘부코페’를 응원하는 마음이에요. 부산영화제에서 배우들이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다고 하더라고요. 코미디언 동료들에게 행복감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1회 때 그런 모습을 봐서 그런지 앞으로도 응원하고 싶어요.
Q: 그날 개막식 끝까지 자리해 개그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지태: 저도 개그를 좋아해요. 다만 예전에는 배우로서 진지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무용수하다 모델을 하게 됐고, 배우 활동을 하면서는 그런 딱지를 떼고 싶어서 노력을 했어요. 지금은 모델 출신들에 대한 편견이 없지만 당시에는 연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배우로서 진지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생명력이 길어진다고 생각했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어요.
Q: 그런 생각이 지금도 변함이 없는 건가.
유지태: 변화는 있어요. 이제 좀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요. 진지한 것 보다는 편안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코미디 영화에 도전할 마음이 있어요.
Q: 이번 드라마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태준의 쓰랑꾼(쓰레기+사랑꾼) 이미지에 작품 선택을 망설였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굿와이프’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유지태: 이태준은 욕망에 충실하잖아요. 매력적인 부분은 제가 만든 것 같네요(일동웃음). 사실 성스캔들 같은 노출 내용도 있어서 걱정을 했어요. 예전에도 노출을 한 적은 있지만 지금은 아내와 아들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염려가 되더라고요. 주변 반응에 상처받을까 걱정이 됐거든요. 그런데 효진이가 ‘멋지게 악역으로 표현하면 다들 작품으로 바라본다’면서 걱정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힘을 얻었죠.
Q: 명배우들과의 호흡을 자랑하며 성공적으로 드라마를 끝냈다.
유지태: 너무 좋았죠. 전도연 선배는 모든 배우들이 함께하고 싶어 하는 배우잖아요. 처음에 걸었던 기대와 끝났을 때가 똑같았어요. 진짜를 갈구하는 배우라는 게 인상 깊었어요. 연기로 정평이 난 칸의 여인이 아직도 연기에 고민하더라고요. 상대 배우도 같이 빛나게 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무리 바쁜 현장이라도 기대가 됐어요. 전도연이란 배우 덕분에 유연하게 잘 흘러간 것 같아요.
Q: 야망의 아이콘 이태준을 얼마나 공감했나.
유지태: 저도 일을 완성도 있게 하고 싶거나, 경쟁심을 잘 이용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그런데 이태준처럼 야망에 불태우는 것은 피하고 싶어요. 전 일단 가정이 더 소중해요. 아, 사랑꾼까지는 아니에요(웃음).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사는 건 아니지 않냐’라고요. 그 만큼 저희는 그냥 솔직하고 거짓 없는 편이에요.
Q: 당신은 아들에게 어떤 아빠인가.
유지태: 전 바쁜 아빠예요.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고 추억을 나누고 싶은데, 아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있네요. 그런데 아빠가 되니까 연기할 때에 분명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아이들 하고 찍는 신은 감정이 남달라요. 그래서 악역이 하기 싫은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Q: 차기작 ‘스플릿’에서 또 검사 역이다.
유지태: ‘굿와이프’ 이태준과 차별성을 두려고 연구 중이에요. ‘스플릿’은 휴먼드라마라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Q: 여러 작품을 출연했는데, 기억에 남아있는 역할이 있나.
유지태: 영화 ‘봄날은 간다’랑 ‘올드보이’요. 대중이 많이 좋아했고, 저 역시 찍을 때 즐거웠던 촬영이었어요. 두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어떤 기준도 만들었죠. ‘봄날은 간다’를 찍으면서는 “영화에 올인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올드보이’ 때는 영화를 보는 기준을 정립하는 시간이 됐고요.
Q: 데뷔 19년차, ‘굿와이프’ 연기에 자체 점수를 매긴다면?
유지태: 전 연기할 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지금은 차기작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한 시점이에요. ‘굿와이프’ 반응이 좋아서 감사드리고, 다음 작품을 잘해야겠다는 부담이 커지긴 했어요. 가평으로 MT를 다녀와서 제대로 영화 ‘꾼’에 몰입해서 좋은 연기를 보여드릴 각오예요. 점수를 매기는 건 어렵네요(웃음).
Q: 배우로서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게 있다면.
유지태: 30년차가 될 쯤엔 배우 겸 감독이 되고 싶고, 제가 출연한 영화의 감독이 됐으면 좋겠어요. 감독 욕심이라기보다 현장에 대한 욕심이 있죠. 신인 때부터 다른 남자배우들처럼 공식화된 길을 걷지 않았어요. 스펙트럼이 넓고 싶었거든요. 지금 제가 그 지점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호흡하며 잘하고 싶어요. 지치지 않고 연기할래요.
Q: 감독 유지태로 그동안 호흡한 배우들 중에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가 있나
유지태: 전도연 선배죠. 정말 분위기가 좋은 배우예요. 드라마를 찍고 나서 단합하기 쉽지 않은데 모두 단합을 해서 행복했어요.
Q: 당신이 표현하고 싶었던 입체적인 이태준을 대중에게 납득시켰다. 호응까지 일었는데.
유지태: 대중의 호응을 실감했어요. 그래서 이태준을 연기하면서 덜 외로웠어요. 이런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직접 말한 것도 아닌데, 이태준을 위해 덩치를 키운 것까지 알아봐주시더라고요(웃음). 작품을 본 대중이 알아봐주고 칭찬을 해주니까 정말 즐거웠어요. 그리고 또 깨달았죠. 아, 역시 최선을 다하면 통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