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현지시간)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에 위치한 ‘픽처하우스 센트럴(Picturehouse Central)’ 극장에서는 2016년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에 초청된 ‘아가씨’의 공식 상영과 박찬욱 감독의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일찍이 매진을 기록한 자리답게 현장은 관객들로 붐볐다. 런던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찾은 덕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박찬욱 감독의 세계적인 명성을 확인시키듯, 외국인 관객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관객들은 ‘백작’을 맡은 하정우가 등장하는 씬마다 웃음을 터뜨렸고, ‘아가씨’ 김태리와 ‘하녀’ 김태리의 호흡에 숨을 죽였다. 이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진행된 박찬욱 감독과의 토크를 지켜보며 축제를 함께 했다.
런던에서 프로듀싱을 공부 중이라는 학생은 미래의 프로듀서답게 “제작 팀과 프로듀싱 팀의 갈등은 없었냐”고 물었다. 이에 박찬욱 감독은 “내가 감독이자 제작자라서, 그런 갈등은 없었다”고 한 후 “그러나, 내 안에서의 투쟁이 늘 있었다”고 부연 설명했다.
박 감독은 “내 안에 ‘프로듀서 에고’와 ‘감독 에고’가 있다. 창조적인 측면과 예산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두고 나 스스로와 늘 투쟁했다. 할리우드 경험이 나에게 안긴 가장 큰 변화는 촬영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인데, 이 또한 도움이 됐다. 미국의 경우 스튜디오 압박이 강한데, 한국에서는 없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며 “‘스튜디오 에고’를 내 안에 만들어서 끊임없이 논쟁했다”고 밝혔다.
복수3부작인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를 비롯,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늘 수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대한 질문 역시 빠지지 않았는데, 이에 박 감독은 “영화에 필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굉장한 분노가 가득한 영화를 다룸에 있어,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깊게 고민한다. 그랬을 때, 그 분노가 관객에게 실감나게 다가가기 위하여, 어느 정도 강도 높은 폭력의 표현이 수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타협 혹은 여러 이유로 주저하는 바람에, 영화가 요구하는 적정높이까지 가지 못하는 영화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박 감독은 “그런 영화를 볼 때면 사실 좀 답답하다”며 “애초에 폭력적인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폭력물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거기에 합당한 수준의 표현을 피해가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아가씨’는 앞서 칸국제영화제 공개 당시, 문어와 신체절단이 화제를 모은바 있다. 당시 외신은 ‘아가씨’의 문어를 ‘올드보이’ 낙지와 비교/대조하며 박찬욱의 인장이라고 코멘트하기도 했는데, 비슷한 질문이 이 자리에서도 나왔다.
이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웃어 보이며 “한국에서는 나오지 않을 질문이다. 한국인들에게 낙지와 문어는 다른 생물이다. 이름도 닮지 않았기에 영화를 만들 때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가씨’ 이후 연체동물에 뭔가 동화돼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놀랐다”고 웃어보였다.
이어 “두 영화에서의 낙지와 문어의 용도는 명확하다.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최민식)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15년 살다가 나온 인물이다. 생명과의 접촉이 그리운데다가 분노가 결합돼 있기에, 뭔가 살아있는 걸 잘글잘근 씹는 쾌감을 누리게 하고 싶어서 낙지를 넣었다. ‘아가씨’에서는 일본 ‘춘화’를 통해 문어가 등장한다. 문어가 여자의 알몸을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인데,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자체로도 놀랍기에, 굳이 여배우의 신체를 문어로 학대하지 않고도, 상상력만으로도 충분히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줄 수 있겠다 싶어서 차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리를 하자면, 한국 사람들에게는 문어와 낙지는 완전히 다르다. 마치 송강호와 최민식이 다른 것처럼! 그리고 필요하다면 내 다음 영화에 오징어와 꼴뚜기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한편 박찬욱 감독은 ‘런던아시아영화제’ 첫 번째 ‘회고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복수 3부작이 회고전을 통해 영국 관객을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