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상적으로 공연이 없는 월요일 저녁,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회사원,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진 중년의 여성, 희끗희끗한 머리로 나이를 가늠케 한 노인까지,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장 앞에는 오페라 ‘리타’ 공연의 포스터가 붙어있지만, 왠지 오늘은 번지수가 틀린 기분이다. 로비 한 켠에 마련된 하얀색 드레스와 액세서리가 색다른 무대가 예고돼 있음을 짐작케 했다.
10월 31일 오후 8시, 작은 원형 소극장에는 250여 명의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공연 15분 전부터 입장한 관객들은 시종일관 들뜬 모습이었다. 이날 뮤지컬 배우 김소현의 데뷔 15주년을 기념하는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팬들도 다수 참여했지만 문화, 공연에 관심이 많은 중구 주민들도 함께 했다. 비록 잠시 다른 공연장의 무대를 빌렸고, 그에게 할애된 장비는 조명뿐이었지만 부족하거나 모자라지 않았다. 10m 앞에 관객들과 마주하고 그가 쏟아낸 말은 추억과 희망이었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표현을 그는 ‘운명’이라고 칭했다.
김소현이 등장하자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그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주제곡인 ‘Think of me’(씽크 오브 미)를 열창했다. 최근 출간한 책의 제목도 ‘Think of me’다. 뮤지컬 ‘팬텀’ 공연을 앞두고 연일 이어진 연습 때문에 컨디션 난조를 보였지만, 그는 진심을 담아서 열정적으로 노래했다. 토크콘서트는 김소현과 작품을 통해 친분을 맺은 MC 김태희가 사회를, 다수의 뮤지컬 공연에서 예술감독을 역임한 박재연이 피아노를 맡았다.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로 첫 마디를 내뱉은 김소현은 팬 중에 90%가 여성인데, 이 무대는 남성도 많이 보인다며 반색했다. 그는 오페라 가수의 꿈을 접고 뮤지컬 배우로 나섰다는 이야기와 남편 손준호와의 만남도 ‘쿨’하게 밝혔다. 또한, 배우로서 15년 동안 ‘롱런’해서 기쁘지만, 후배들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않을까봐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데뷔 10년차 때, 슬럼프에 직면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김소현은 “‘미스 사이공’ 오디션에서 최종까지 올랐지만, 3명 중 한명이 떨어졌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며 “당시에는 상당히 슬펐고, 좌절했지만 나중에 ‘미스 사이공’을 보면서 왜 내가 떨어졌는지 알게 됐다. 붙을 사람들이 당연히 붙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 때,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후 작품 선택에서는 캐릭터를 꼼꼼히 살펴보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됐다”고 덧붙였다. 배우 초년시절, 무섭지 않았지만, 지금은 무대가 무섭다며 엄살도 떨었다.
그에게 주어진 1시간은 무척 짧게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오랫동안 길게, 때로는 숙고하고 내뱉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뮤지컬 배우로 발탁됐고, 처음 출연한 작품이 ‘오페라의 유령’이었으며, 남편과도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됐다며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조심스럽게 발언했다. 그 운명에 순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도 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차근차근 자신의 숨은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는 김소현. 책 출간과 함께 작가 대열에 합류한 김소현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