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조의석 감독이 김병서 감독과 공동 연출했던 전작 ‘감시자들’을 떠올려본다. 2013년 하반기를 묵직하게 열었던 ‘감시자들’의 성취를 말이다. 홍콩영화 ‘천공의 눈’을 리메이크 했던 ‘감시자들’은 ‘선택과 집중’이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원작의 소재와 기본적인 인물 구도는 취하되, 불필요한 잔가지들은 최소화 하며 극에 리듬을 부여했다. 편집도 탁월했다. 잘 짜여진 컷 분할과 다양하게 시도된 카메라 구도, 리드미컬한 편집이 영화에 연신 생동감을 선사했다. 그래서였다. ‘감시자들’은 그해 55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비평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 세 배우의 만남만으로 화제를 모은 ‘감시자들’에 기대를 더한 것은 바로 조의석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공동연출이 아닌 혼자만의 감식안으로 돌아온 그가 ‘감시자들’의 성공 이유를 증명해 낼 것인가. 아쉽게도 ‘마스터’는 ‘감시자들’이 일군 성취에서 정반대의 지점으로 고꾸라진다.
러닝타임 무려 143분. ‘마스터’의 긴 러닝타임은 자신감의 일환이라기보다는, 세 A급 배우를 배려하느라 자르지 못한 혐의가 짙다. 배우가 캐릭터에 복무하는 게 아니라, 누구 하나 섭섭하지 않도록 분량을 확보해 줘야 한다는 부담 하에 캐릭터가 배우에 끼워 맞춰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오프닝에서부터 감지된다. 영화는 이병헌이 연기한 원네트워크 진현필 회장의 연설로 문을 여는데, 제법 긴 연설을 편집하지 않고 고스란히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는 아마도 진회장이라는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가를 이병헌의 연기력을 빌어 설명하려는 심산이었겠으나, 결과적으로 심심한 오프닝이 됐다. 아무리 연기를 잘 하는 이병헌을 내세웠다 할지라도 영화의 인상을 결정짓는 첫 신을 이토록 길게 늘어뜨린 것은, 심지어 그로 인해 러닝타임을 잡아먹은 점은, 과연 효율적인 선택이었나를 생각하게 한다.
편집이 길이 뿐 아니라 배합도 상당히 아쉽다. 신과 신 사이의 연결이 잘 붙지 않는 영화는, 구성의 밀도보다 크기에 힘을 준 탓에 흥과 탄력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화려한 연기가 여백의 미를 갉아먹을 때도 있고, 어깨에 힘 준 대사가 장황하게 들릴 때도 있다. 통쾌함을 위해 심어둔 반전도 그리 고단수는 아니다. 기시감은 수두룩하고 창의성은 드물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액션 시퀀스 또한 극장을 빠져나오면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마스터’는 있을 건 다 있는 그것을 제대로 마스터 하지 못한, 시장에 차고 넘치는 기성품 같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나뉠 듯하다. 이병헌의 연기는 사실상 ‘마스터’를 이끌고 가는 동력이다. 유려한 영어 실력을 가진 그가 짝퉁 영어 발음을 구사하는 장면 등에선 ‘역시 이병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내부자들’ 안상구 캐릭터와 중첩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의 장기가 보다 다양하게 쓰이기에는 캐릭터 자체가 지닌 운신의 폭이 좁아 보이기도 한다.
가장 아쉬운 건 강동원이다.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강동원)은, 도전을 즐기는 강동원이 데뷔 후 처음으로 맡는 형사 캐릭터다. 하지만 지나치게 멋들어진 말을 되풀이하는 이 캐릭터는, 결과적으로 강동원의 감춰진 단점을 노출시킨다. 캐릭터 자체의 결함인지 연출의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강동원 특유의 매력이 탈색 돼 있다.
의외로 극의 활기를 불어 넣는 건 김우빈이다. ‘기술자들’ ‘스물’ 캐릭터와 겹치는 감이 없지는 않으나 선배 연기자들 앞에서 기죽지 않고 유들유들하게 극을 끌고 나간다. 조금 더 힘을 빼면 좋을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나, 이는 좋은 연출을 만나면 쉽게 나아질 부분처럼 느껴진다.
‘건국 이래 최대 게이트’라는 홍보 문구를 내세웠던 이 영화는 최순실 게이트의 역풍으로 인해 ‘썩은 머리 이번에 싹 다 잘라낸다’로 문구를 바꿔달았다. 카타르시스를 노린 문구겠지만, 정작 영화엔 기대했던 통쾌함이 잡히지 않는다. 화려한 외형과 호화 캐스팅만으로 밀고 나가는 이 영화는 좀처럼 발화점을 찾지 못하고 내내 미지근하다. 좋은 재료만으로는 좋은 요리가 나오는 게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흥행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