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은 그럼에도 나아질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 열심히 부딪혀 쟁취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일상을 살게 한다. 하지만 그러한 무수한 다짐들이 현실의 벽 앞에서 번번이 꺾일 때 인간은 한없이 초라해지고 쓸쓸해진다.
예술가를 표방하나 현실은 무직인 남자친구, 노골적으로 차별을 해대는 학년주임. 보아하니 삶이 퍽이나 고단했을 효주(김하늘)는 미래가 불안한 계약직 여교사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다한들 하소연 할 곳 없는 그녀에게 ‘정교사 자리’는 인생의 큰 그림을 위해 반드시 뛰어 넘어야 할 높다란 허들이다. 효주가 욕망하는 저 힘든 목표물을 혜영(유인영)은 이사장의 딸이라는 이유로 ‘프리패스’한다. 그녀 인생에 들어온 빨간불. 낙하산.
타인과 비교해 자존감을 갉아먹지 않기 위해 인간이 쉽게 찾는 선택지는, ‘내가 당신을 미워할 수 있는 면죄부’다. 내가 당신보다는 나은 인간일 것이라는 믿음. 효주의 딜레마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효주가 자신의 질투를 정당화하기엔 혜영이란 여자, 얄미울 만큼 해맑다. 차라리 도도하게 굴면 좋을 텐데 살갑게 다가와 손까지 내민다. 저 해맑은 얼굴이 악마의 얼굴보다 효주를 더 비참하게 한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거나, 무시하고 넘어가기. 그러나 효주는 다르다. 이 상황에서 그녀는 묘하게 삐뚤어진다. 이것이 2014년 독립영화 ‘거인’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한 김태용 감독이 선택한 ‘여교사’의 노선. 김태용 감독은 적당히 멈출 생각이 없다. 효주를 통해 계약직의 설움을 다독일 생각도, 시스템을 공격해 카타르시스를 전달해 볼 생각도 없다. 효주가 느끼는 열등감을 동력삼아, 예상치 못한 극한의 지점까지 기어코 관객을 끌고 간다. 그래서 이 ‘골 때리는’ 영화는, 누군가에겐 불편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인상적인 자국을 남길 테다.
사실 이 영화가 처음 주목받은 건, ‘두 여교사와 그 사이에 낀 남자 제자(재하/이원근)’라는 설정이었고 실제로 영화는 치정극이란 띠를 두르고 있다. 그러나 그 띠 안에 진짜 담긴 건 감독이 탐험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여교사’는 숱하게 봐 온 삼각관계의 상투성을 끌어다 쓰면서도, 그만의 색깔을 입히는데 성공한다. 가령 금수저-흙수저로 대변되는 인물들의 전복된 (구애)관계, 순수와 영악함을 오가는 소년의 의뭉스러움 덧입혀 로맨스와 스릴과 서스펜스 장르를 미끄러지듯 유영한다.
‘여교사’는 논리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영화이고, 그래서 때론 이야기보다 배우들의 표정을 포착하는데 더 긴 시간을 쓰기도 한다. 때문에 논리적으로 비약이 심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또 그래서 팽팽한 날 것의 긴장을 확보하기도 한다. 아직 서른도 안 된 감독의 인간 심리를 꿰뚫는 시선이 때론 서늘하기까지 하다.
김하늘은 기본은 훌륭하지만 늘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는 아니다. 연출과 극의 분위기를 타는 배우라는 의미다. 그런 김하늘에게 ‘여교사’의 효주는 단순히 잘 맞는 옷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전진으로 보인다. 히스테릭한 동시에 자의식 강하고 사랑 앞에 쩔쩔 매기도 하는 효주는 김하늘을 만나 살아있는 개성을 입었다. 이원근은 지금까지 봐 온 얼굴 중 가장 좋다. 앞으로 다양한 곳에서 좋게 쓰일 얼굴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