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전파를 탄 MBC ‘자체발광 오피스’ 첫 회는 매우 현실적이기에 더욱 쓰고 아리다. 백 번 째 이어지는 면접. 나를 마주했던 면접관 중 열에 아홉은 하석진이 그랬듯 내 뒤통수에 ‘병신’이라는 조롱을 남겼을 것 같고, 고아성이 상상했던 것처럼 나를 탈락시킨 회사 로비를 엉망으로 부수고 싶은 심정이 불쑥불쑥 들곤 한다.
‘자체발광 오피스’는 계약직 신입사원 은호원(고아성 분)의 눈물겨운 직장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계약직 동기 도기택(이동휘 분)과 장강호(이호원 분), 냉정하지만 유능한 상사 서우진(하석진 분), 키다리 아저씨 서현(김동욱 분) 등 다양한 인물이 오피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슈퍼 을(乙)’로서의 계약직 사원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작품은 필연적으로 tvN ‘미생’(2014)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자체발광 오피스’는 유쾌하다. 은호원이 회사 로비를 때려 부수고 면접관 서우진에게 ‘칼질’을 하는 상상을 하는 장면처럼, 만화적인 연출이 곳곳에 묻어난다. 정지인 PD는 “당연히 ‘미생’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직장이라는 곳을 조금 더 따뜻하게 그리고 싶었다. 배우들에게서 사랑스러움을 많이 봤다. 톤을 귀엽게 가져가려 했다”고 설명했다.
때로 빤하고 자주 유치했던 이 같은 설정을 시청자들이 눈감아 주는 것은, 작품 내 갈등관계가 현실의 그것을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해소하지 못했던 불만을 드라마로나마 풀고 싶은 심리. 여기에 은호원이 자신이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된 반격, ‘은장도(은호원, 장강호, 도기택)’ 3인방의 유대 등이 어우러지면서 ‘자체발광 오피스’는 오피스물로서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 갔다. 아니, 만들어가는 듯 했다.

문제는 은호원이 시한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지면서부터 불거진다. ‘할 말 다하는 계약직 사원’이라는 설정은 그가 눈에 봬는 게 없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한 것인데, 전제 자체가 사라지니 갈등을 이어나갈 구실이 없어진 셈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계약직 사원의 고군분투에서 서우진-은호원-서현의 삼각 로맨스, 하우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옮겨졌다.
덕분에 지난 4일 방송된 마지막 회는 첫 회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와 연출로 채워졌다. ‘은장도’의 연대와 성장은 “그래도 오늘 하루 행복하지 않았느냐”는 미적지근한 대사로 갈무리됐다. 대신 본부장이 되어 회사에 복귀한 서우진이나 “(경영을) 제대로 배워 오겠다”는 서현의 성장에 훨씬 많은 무게가 실렸다.
사회(회사)와 인물 간의 대립은 희미해지고 인물과 인물 간의 대립이 부각되면서, 오피스물로서 ‘자체발광 오피스’가 갖는 소구력은 약해졌다. 정지인 PD가 제작발표회에서 언급했던 “‘여성 계약직’의 현실”이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음은 당연지사다. 가뜩이나 낮았던 시청률은 결국 반등을 이루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그리하여 ‘자체발광 오피스’는 ‘미생’도, ‘김과장’도, ‘직장의 신’도 되지 못했다. 익숙한 캐릭터와 갈등 구조만 기억에 남겼을 뿐이다. 우리네 모습과 닮아, 보기만 해도 마음 아렸던 ‘은장도’ 3인방이 행복한 미소를 띤 채 작별할 수 있었던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하지만 그 미소를 시청자들에게까지 전염시키고 싶었다면, 작품을 좀 더 잘 만들었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