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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수현, 당신이 조금 더 영리했으면 좋겠다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리얼’ 인터뷰가 진행되는 마지막 날, 김수현을 만났다. 영화가 개봉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작품을 향한 날선 혹평, 여러 외적인 잡음들과 개봉 첫날 스코어로 증명된 흥행 빨간불로 인해 김수현이 적지 않게 지쳐 있다는 말을 홍보팀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쉽지 않은 인터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김수현은 김수현이었다. 특유의 ‘다나까’ 말투에 힘을 주고, 작은 농담 하나에도 해사하게 웃으며, 엉뚱한 허당 매력을 흘리는 배우. 그 타들어가는 속을 모르지 않았기에 애써 괜찮은 척 하는 모습이 눈에 밟히기는 했으나, 몇몇 순간에서 이 배우가 지금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나름 현명하게 잘 넘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찰리 채플린이 말한 대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브레이크 없이 달려온 김수현에게 지금 이 시련이 어떤 의외의 깨달음을 줄지, 또 모르는 일이다.

Q. 인터뷰 마지막 날입니다.
김수현:
네. 내일(6월30일)부터는 무대 인사를 열심히 다녀야죠.

Q. 무대인사까지 끝나면 뭘 하고 싶나요.
김수현:
두 달 전부터 머릿속에 ‘리얼’ 밖에 없었어요. ‘언제 개봉하나’ ‘드디어 나오나?’ 참 많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무대인사까지 끝나면 머리에서 ‘리얼’을 빼고, 마음에서도 빼는 작업을 깊이 해 보려고 합니다.

Q. 촬영이 끝나면 작품과 이별하는 시간을 깊이 가지는 편인가요?
김수현:
아니요. 굳이 그런 작업을 하지 않아도 잘 보내주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리얼’ 촬영 끝나고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여러 인격들을 담아내기에 제가 그렇게 넓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여행도 홀로 다녀왔죠.

Q. 어디를 다녀왔나요.
김수현:
멀리는 못 갔어요. 가을이 되기 전에 일본 북해도를 갔죠. 기차를 정말 원 없이 탔습니다.

Q. 한국 사람은 없었나요? 요즘은 어딜 가든 한국 여행자들이 많은데.
김수현:
북해도가 생각보다 땅 덩어리가 크더라고요. 삿포로처럼 이름 난 곳이 아니면 조용해요. 기차타고 넋 놓고 창 밖 풍경을 보면서 ‘리얼’을 보내줬어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웃음)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다시 만났네요.(웃음)
김수현
: 네. 또 데리고 왔네요.(웃음)

Q. 이별 후 다시 재회한 셈인데요, 어떤가요.
김수현:
지난 생각이 많이 나죠. 저는 캐릭터를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감정이 곱하기 5로 더 크게 다가왔어요. 어쩌면 외로움이나 육체적 고통까지도 기대하고 영화에 들어갔는지 몰라요. 그래서 작품을 다 마쳤을 때 저 스스로에게 큰 위로를 보냈고요.

Q. 왜일까요. 왜 외로움과 고통이 있을 줄 아는 길로 갔을까요. 추측컨대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이후 충무로의 많은 시나리오들이 당신에게 들어갔을 겁니다. 그 중엔 지금보다 쉬운 선택지도 있었을 테고, 의지하면서 갈 수 있는 작품도 있었을 텐데요.
김수현:
사실 시나리오로 장태영을 처음 접했을 때, 제가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리얼’이 품은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고생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다른 데 보내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결정했어요. 연기하면서는 원 없이 담기도 했고, 원 없이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한만큼, 최선을 다 한만큼, 딱 그 만큼의 만족감도 느꼈고요. 남김없이 후회 없이 마친 작품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Q. 구체적으로 어떤 면을 원 없이 담은 건가요?
김수현: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 공부 해 왔던 것들, 혼나고 깨지면서 얻은 것들, 이런 것들을 농축해서 ‘리얼’에 풀어놓았습니다.

Q ‘리얼’이 김수현에게 어떤 영화인지 밑그림이 그려지는군요. 그럼에도 지금의 분위기는 뭐랄까. 당신이 원 없이 풀어 놓은 것이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장태영을 2시간 넘게 봤지만, 아직 장태영을 잘 모르겠다는 의견들이 많은데요.
김수현:
비유하자면 ‘리얼’을 큐브 같은 영화입니다. 이 큐브를 풀고 있는 건지 섞고 있는 것인지 혼동이 되는 면이 있지만, 사실 큐브의 해답은 정해져 있거든요. 그 해답을 찾아 큐브를 비트는 과정에서 다양한 단면이 나옵니다. 각자의 마음에 드는 색이 나올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럼 그 모양 그대로 각자가 봐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그런 생각도 듭니다. 닌텐도를 가지고 놀 수도 있는 배우가 큐브를 껴안은 느낌말이에요. ‘리얼’이 품은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고생을 했다고 했는데, 누군가에겐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김수현:
(웃음)‘리얼’에 도전하는데 있어, 제가 고집부린 부분이 있는 게 맞아요. 욕심 부린 부분도 많고요. 주위에서 그걸 또 존중해 줬기에 도전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욕심은 이전부터 있었어요. 저마다의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매력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서 연기를 시작했으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욕심을 부릴 참입니다.

Q. 영화 속 두 명의 장태영은 ‘진짜가 되고 싶은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음을 던지죠. 진짜란 뭘까.
김수현:
저는 ‘리얼’이 믿음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생각합니다. 제가 연기한 두 장태영의 가짜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굉장히 강한 인물들이에요. 실제로 자신이 진짜라고 외치잖아요? 그런데 그 믿음이 점점 흔들립니다. 그런 점에서 ‘리얼’은 두 인물의 믿음의 크기가 변화되는 과정이고,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의 선택을 담은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Q. ‘내 안에 존재하는 가짜와 진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은 때때로 달라지는 존재니까요.
김수현: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저도 지금 이렇게 차분한 톤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집에 가면 또 다른 모습들이 나오거든요. ‘리얼’ 속에 풀어놓은 여러 색깔들을 보면서 ‘저 모습도 나의 일부’라고 인정을 하면서 감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리얼’이 가져 올 결과가 어떤 방향이든, 저는 이 작품에 굉장히 애착을 가지고 있고 계속 사랑을 할 겁니다.

Q.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지금 ‘리얼’에 쏟아지는 반응들이 좀 과하다고 느끼시나요.
김수현:
음…자연스러운 부분도 있고,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타인과 100% 교감하는 건, 불가능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Q. ‘은밀하게 위대하게’ 인터뷰 때 그런 말을 했어요. 갑작스러운 사랑에 “겁을 잔뜩 먹고 안으로 계속 가라앉게 된다”고. “조심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비밀이 돼 가면서, 많이 위축되고 작아지는 것 같다”고요. 4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요.
김수현:
지금은 다릅니다!(웃음)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확고하게 말씀하시네요.(웃음)
김수현:
네. 그게 얼마 안 됐어요. 서른이 된 지 이제 6개월 차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큰 변화는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앞에 숫자 하나 바뀐 정도인데, 움츠려드는 ‘나’가 많이 사라졌어요. 이전에는 ‘배우 김수현’과 비교하며 “난 필요 없나?” “인간 김수현이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가”라는 생각에 망가지고 부서지고 조각나는 기분이 늘 함께 했어요. 그러다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데…아, 이게(‘리얼’) 계기일 수도 있겠네요. 시기적으로 ’리얼‘이 끝났고 해가 바뀌면서 배우 김수현과 인간 김수현 사이의 간극이 많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어렴풋이나마 가까워지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저에겐 입대…입대가 있잖아요?(웃음)

Q. 아, 입대.(웃음)
김수현:
네. 입대가 있으니 본격적인 시작이 되려면 아마 그 이후, 그러니까 ‘입대 이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 그때를 기대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짜지는 않았지만 막연한 기대가 있습니다.

Q. 건강한 생각을 하고 있군요.
김수현:
네. 지금 방향, 아주 마음에 듭니다.

Q. 입대 전에 “한 작품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을 비추기도 했는데요.
김수현:
그런데 그건 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라서요. 타이밍을 지켜보는 중이고요, 조금 쿨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타이밍이 맞지 않을 경우 얼른 다녀와야죠.

Q. 망가지고 부서지고 조각나는 기분이 들었던 20대 때와는 확실히 달라진 것 같네요.
김수현:
올해 들어 조금 더 저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불행이라는 게 가까이에서 볼 때는 너무 아프고 너무나 큰데, 멀리서 보면 다르잖아요. 나만의 문제가 아닌 게 있더라고요.

Q. 스스로가 서른이라는 걸 아주 잘 자각하고 있네요.
김수현:
그렇다고 나이에 크게 연연하는 건 아니에요. 다면 “극복하는 과정이 시작된 느낌이 서른이라는 타이밍에 오더라”라는 이야기는 나중에 동생들에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언제가 김수현의 전성기일까요? 지나간 것 같지는 않은데요.
김수현:
‘별에서 온 그대’(2013)로 지나간 것 아닙니까…?

Q. 아… 이 대답에 속상해 할 팬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김수현:
(수습하며)아! 그럼 안 되는데.(웃음) 제가 표현하는 색깔들에 조금 더 여유가 묻어나는 시점이 제 전성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유가 묻어나면 마음이 망가지는 일도 없을 것 같고요. 목표로 하는 것에 얼마만큼 가까이 갈 수 있는지도 계속해서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Q. 목표는 어디입니까.
김수현:
관객들로 하여금 신뢰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오래전부터 가져 온 제 목표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유가 있어야 보는 사람들도 불편하지 않을까 싶고요.

Q. “신뢰를 받고 싶다” 이건 결국 타인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건데요. 타인이 어떻게 바라보든 자기만족이 먼저여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김수현:
연기를 하는 입장에 있어서는 제가 1번이에요. 연기를 밖으로 재생시킴으로서 가장 먼저 만족을 느끼고 있거든요.

Q. 볼링은 어떤가요. ‘무한도전’에서 볼링에 대해 “상대하고 싸우는 게임이 아니라 혼자만의 싸움이 되는 게임”이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김수현:
연기를 하는데 있어 볼링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볼링장을 떠올리며) 볼, 레인의 컨디션, 저기 서 있는 핀. 결국 이걸 얼마나 믿고 가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 볼이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믿고 던지는 거죠. 그걸 연기에 대입해 보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요. 결국 연기도 캐릭터에 내가 얼마만큼 몰입해서, 또 그걸 얼마나 믿고 던지는가 하는 문제거든요.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작품 외적인 부분을 좀 묻겠습니다. 전작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도 감독 교체가 있었어요. 연달아 두 번. 분명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김수현:
외부적으로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 ‘리얼’을 진행하는데 있어서는 두 감독님(이정섭→이사랑)이 함께 많은 의견을 나누셨어요.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단계부터 마지막 촬영 때도 함께 계셨습니다. 이후 영화의 방향성이랄지, 색깔을 결정하는 데 있어 그런 선택을 해야 했어요.

Q. 이 질문은 노코멘트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꼭 묻고 싶기에 마지막으로 드릴게요. 김수현은 많은 주목을 받는 스타입니다. 그런 배우의 작품에 감독이 교체됐는데, 그 감독이 가족이라는 건 ‘배우 김수현’에겐 분명 마이너스입니다. 이건 ‘리얼’ 완성도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여러 상상과 논란의 여지를 먼저 던진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그에 대한 우려, 없으셨나요. 대답이 곤란하면 안 하셔도 됩니다.
김수현:
(몸을 살짝 곧추세운다) 음…한 마디로 말씀을 드리자면…‘모두’의 선택이었습니다.

Q. ‘모두’의 선택…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군요.
김수현:
우리는 여러 가지 기준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기준들을 한가지로 통일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선택도 존중하지만 ‘나’도 조금 돌봤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수현이라는 배우가 조금 더 영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수현:
저도 제가 조금 더 매끄러웠으면 좋겠습니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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