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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모 칼럼] 길, 음주운전과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유진모 칼럼니스트]

(이투데이DB 방인권)
(이투데이DB 방인권)

길이 두 번째 음주운전으로 입건돼 비난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왜 사회지도층 인사와 유명 연예인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수입에 비해 아주 미미한 돈만 지불하면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것일까?

먼저 우리나라의 술에 대해 관대한 문화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음주상태에서의 성범죄에 그동안 사법부가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는 여론이 높아 처벌규정을 강화한 데 주목하면 쉽다. 우리나라의 음주운전 처벌은 최고 면허취소 및 벌금 1000만 원에 불과하다.

말레이시아는 음주운전자를 즉시 수감할 뿐만 아니라 기혼자의 경우 배우자까지 하루 감옥에 가둔다. 브라질은 혈중알코올농도 0.001%라도 음주운전으로 규정하고, 인사사고를 냈을 경우 살인죄로 기소한다.

전통적으로 음주운전에 관대했던 미국도 모든 주가 처벌을 강화했는데 워싱턴 주는 사망사고를 냈을 경우 1급 살인죄를 적용해 최소 징역 50년형에서 최고 종신형에 처한다. 불가리아는 초범은 훈방하지만 재범은 교수형에 준하는 큰 처벌을 내리고, 엘살바도르는 즉결총살형에 처한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가치관이나 법적 기준이 달라지는 현대사회다. 이제 생활필수자격증이 된 운전면허 발급의 기준도 더 강화된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즉, 국가는 자신은 물론 타인의 안전을 충분히 보장할 만한 운전실력과 더불어 그런 인성과 정신상태를 갖춘 자에게 면허를 지급하는 게 당연하다.

혹시라도 해당 기관이 면허를 취득한 자에게서 뒤늦게나마 자격을 충족시킬 만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점을 발견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그 자격을 박탈하는 게 사회의 건강을 위해 지극히 마땅하다. 택시운전기사의 노령화로 인한 잦은 사고에 해당 기관이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갖고 예방과 강력한 처벌로의 보완에 힘써야 하는 이유다.

스타나 사회지도층이 음주 후 운전대를 잡는 심리적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직도 우월의식이 잔존해있기 때문임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른바 슈퍼맨신드롬. 자신은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기에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는 착각이고, 그 저변엔 ‘내가 누군데’라는 빗나간 계급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힘’이 있거나 유명 스타라고 봐주던 시절은 이미 지났지만 혈연 지연 학연 등 불순한 인맥의 연결고리에 약한 감정이 남아있는 게 우리 사회다.

물론 ‘나는 안 걸리겠지’라는 요행수를 바라는 심리도 존재한다. 자신의 동선에 음주운전단속이 있을 가능성을 가늠하고, 행여 있더라도 그 수많은 음주운전자 중에 자신만 콕 집어 단속하지 않을 것이란 경우의 수에 대한 맹신이 있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아니라면 푼돈이 아깝거나, 가까운 매니저나 대리운전자마저 믿을 수 없는 불륜 및 불법과 연관이 있거나, 그것마저도 아니라면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튼 음주 후 운전대를 잡는 심리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은 슈퍼맨신드롬임에는 틀림없다.

정윤철 감독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8)라는 영화가 있다. 자신의 이상과는 다른 허접스런 신파 다큐멘터리를 찍던 외주제작사 PD 송수정(전지현)이 전 재산인 카메라를 날치기 당한다. 그러자 동네 아저씨 같은 남자가 ‘짠’하고 나타나 카메라를 되찾아준다.

자신이 한때 슈퍼맨(황정민)이었다는 그는 대머리 악당이 자신의 머릿속에 크립토나이트(슈퍼맨을 약하게 만드는 광물질)를 심는 바람에 초능력을 잃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친다. 수정이 좇는 카메라 속의 슈퍼맨은 ‘바바리맨’을 혼내고,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아주는가 하면, 태양이 지나치게 가까워 북극의 얼음이 녹는다며 물구나무서기로 태양으로부터 지구를 밀어내려한다.

사실 그는 예전에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차 안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그는 구경꾼들에게 가족을 구해줄 것을 애원했지만,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어 그렇게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에 좋은 추억 등 기억을 상실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을 비난하거나 사회를 비관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비겁하지 않은 슈퍼맨이 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사회에 알려진 초능력이라는 게 거의 대부분 마술이거나 과학임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슈퍼히어로 영화는 수많은 관중을 동원한다. 그건 그만큼 답답한 이 세상에서 진정한 정의를 수호하고,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영웅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염원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부장님’부터 고위공무원 등 각계의 지도자들을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연예스타와 사회 고위층은 슈퍼맨 같은 초능력은 없지만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사뭇 다른 초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이 슈퍼스타가 되고, 재벌이나 고위공직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남다른 재능을 타고났으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인 것은 맞겠지만 대중의 지지가 없었다면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제정 로마 초기에 왕과 귀족들에 의해 생긴 투철한 도덕의식과 공공정신 그리고 희생정신 등을 가리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양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한국전쟁 때 미군 장성의 아들 142명이 참전해 35명이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었다.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은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

길 등의 연예인에게 이 정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건 맞다. 연예인의 첫째 목적은 삶에 지친 대중을 위무하는 것이다. 시름을 잊도록 가벼운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일부 예술가들에겐 부족한 지적 유희에 대한 허영심의 대리충족 기제가 작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연예인의 임무 중 첫 번째는 대중에게 즐거운 휴식을 주는 것이다.

단, 연예인의 주머니의 무게를 결정하는 건 대중의 지지도란 점을 절대 간과해선 안 된다. 대중의 열광이 없다면 제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갖춘 연예인이라 할지라도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없다. 이병헌이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대중 앞에 고개를 조아리기를 망설이지 않았던 건 그만큼 대중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충분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중은 외계인의 침공을 막아줄 슈퍼맨을 원하는 게 아니다. 술을 마셔도 안 취하는 운전기사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의 고민과 슬픔에 잠시나마 안식을 줄 수 있는 광대, 자신의 답답한 마음에 시원한 청량제가 되는 말과 행동에 앞장서주는 ‘소셜테이너’를 그리워할 따름이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인기가 ‘벼슬’이 된 것은 맞지만 그 감투는 대중이 씌워준다는 게 금과옥조라는 것 역시 불변의 진리다.

황정민은 “남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이라는 겸손한 수상소감으로 슈퍼스타가 됐다. 유아인이 숱한 루머 및 병역면제 논란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열렬한 지지를 얻는 이유는 사회정의를 위한 시의적절하고 적확한 쓴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변호인’ 출연과 시국선언 동참으로 블랙리스트 명단 상단에 오른 송강호는 급감한 출연제의에 단 한 번도 불평한 바 없이 내친 김에 서슬 퍼렇던 지난해 중순 ‘택시운전사’까지 찍었다. 슈퍼맨은 따로 있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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