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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人] 고은아 서울극장 대표 ‘60년대 은막 스타, 여전히 영화의 한가운데’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고은아(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고은아(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옥자’ 보러 10년 만에 서울극장 갑니다” “‘옥자’ 덕에 추억 돋네요.”

역설의 힘이란! 추억 속으로 밀려났던 서울극장을 다시 불러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최첨단 디지털 스트리밍 회사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다. 넷플릭스와 손잡고 제작한 까닭에 멀티플렉스로부터 보이콧 당한 ‘옥자’는 현재 수십 년 역사의 대한극장·서울극장·애관극장·만경관 외에도 씨네큐브 광화문·아트나인 같은 독립·예술영화 상영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옥자’로 인해 침체에 빠져 있던 추억의 개봉관들이 ‘반사 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넷플릭스는 한술 더 떠서 지난달 19일 주요 일간지에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흑백 영화 광고를 실었다. ‘넷후릭스 오리지날 映畵(영화)’ ‘팬들을 위한 특별 써-비스!’ ‘당장 예매하지 않을 텐가?!’

‘옥자’가 몰고 온 복고바람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극장을 찾았다가 근사한 회색빛 머리를 휘날리며 로비를 지나가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포스. 60-70년대 은막의 스타였던 여배우, 지금의 서울극장을 이끌고 있는 고은아 대표였다.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으나, 실례를 무릅쓰고 즉석에서 인터뷰를 요청 드렸다. 그리고 그녀가 답했다.

# 60년대 트로이카만 기억하십니까?

인생을 바꾸는 건 거대한 사건이 아닌, 소소한 에피소드일 수 있음을 고은아 대표를 보며 생각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고은아가 아닌 이경희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부산을 떠나 서울로 상경할 때만 해도 그녀가 마음에 품은 건 미술. 그러나 홍익대 공예과 재학 시절 우연히 찍은 사진 하나가 인생의 방향키를 돌렸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사진 속 주인공을 수소문했고, 그들에게 설득당한 여대생은 얼떨결에 카메라 앞에 앉았다. 그리고 모든 게 달라졌다. 여대생 이경희가 아닌, 영화배우 고은아로. 고은아는 ‘여대생 출신 여배우’라는 점만으로도 데뷔 당시 여러 이슈를 낳았다. 악극단 출신 여배우가 즐비했던 당시 충무로에서 미모는 물론 지성까지 겸비한 고은아의 등장은, 그러니까 김태희가 서울대 출신 학력으로 주목받은 것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60-70년대, 충무로 대표 배우로 활동하던 고은아
▲60-70년대, 충무로 대표 배우로 활동하던 고은아

정진우 감독의 1965년 ‘난의 비가’로 데뷔한 고은아의 진가는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같은 해 11월, 김수용 감독이 만든 ‘갯마을’은 고은아라는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다. 영화에서 고은아는 해변가 마을 청상과부의 기구한 삶을 복합적으로 그려내며 부일영화상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그녀는 당시 트로이카로 꼽히던 문희, 남정임, 윤정희와는 다른 매력으로 ‘여배우 주연 영화’들을 이끌었다. 그리나 인기 절정에 있던 1967년, 15세 연상의 곽정환 합동영화사 사장과 결혼하며 배우로서의 상승세엔 브레이크가 걸린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여배우에게 결혼이란 ‘커리어에 득보다 실이 많은’ 그 무엇이었다. 결혼 후에는 영화가 아닌 TV에 주력했는데 “밤낮 없이 촬영했던 영화 시스템과 달리, 야외 촬영이 많지 않고 스튜디오 촬영이 대부분이었던 당시의 TV 시스템”이 주부이기도 한 그녀에게 잘 맞았다고 고은아 대표는 회상한다.

# 자기 자본이 아닌, 투자로만 영화를?

1989∼1990년 방송된 MBC 드라마 ‘제2공화국’을 끝으로 TV를 떠난 그녀는 이후 CBS 라디오 프로그램만을 진행하며 연기와 거리를 뒀다. 그리고 1997년. 다시 영화판으로 등판할 때 그녀는 배우가 아닌, 합동영화사와 서울극장 대표 직함을 달고 있었다.

1964년 출발한 합동영화사는 한국 영화 중흥기를 이끈 영화 제작사다. 1978년 종로 세기극장을 인수해 이듬해 서울극장을 설립하면서 배급·극장업으로 사업 반경을 넓혔다. 합동영화사 설립자이자 고은아 대표의 부군인 고(故) 곽정환 회장은 영화 제작·수입·배급·투자·상영을 아우른 ‘충무로의 대부’로 불리며 한국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 고(故) 곽정환 회장과 고은아 대표는 2012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영화발전 공로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는데, 당시 시상자로 나선 배우 안성기의 멘트는 다음과 같다. “이 두 분이 만나서 우리나라에 영화사를 만들고 극장을 만들었다”

▲합동영화사에서 250여편에 이르는 한국영화가 탄생했다
▲합동영화사에서 250여편에 이르는 한국영화가 탄생했다

합동영화사는 송승헌 주연의 ‘그 놈은 멋있었다’(2004)를 마지막으로 제작에서 손을 뗐다. 시장이 커지면서 대기업 자본이 영화 시장에 손을 뻗을 때였다. “자기 자본이 아닌 투자를 받아서 영화를 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였는데, 그걸 우리 회장님이 너무 싫어하셨어요. ‘자기 자본이 안 들어가고, 남의 투자로만 하게 되면 제작비에 대한 개념이 희박해진다. 그러면 외형은 커지지만 내실은 적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셨죠.”

고(故) 곽정환 회장의 우려는 결과적으로 적중했다. 2017년 한국영화시장을 보라. “네. 정확한 예측이었죠. 하지만 당시엔 그렇게 안 하면 또 시대적으로 안 맞아떨어졌으니까…그렇게 제작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겁니다.”

# 서울극장 줄로 흥행을 가늠하던, 그 때

멀티플렉스가 등장하기 전, 서울극장은 영화인들에게 상징적인 장소였다. 서울극장의 매표소 줄로 흥행을 가늠하던 그때 그 시절. 최근 만난 봉준호 감독도 서울극장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는 개봉 날 서울극장 앞에 모이곤 했어요. 바로 옆 2층에 있는 ‘팡세’라는 커피숍에 배우와 관계자들이 쭉 둘러 모여 매표소를 내려다보며 노심초사했죠. 관객 줄이 길면 ‘중국집 가서 탕수육 먹자!’가 되고, 썰렁하면 ‘자장면 먹자’ 이랬어요.”

그 말을 전하자 고은아 대표는 “맞아요. 거기에서 모든 게 판가름 났죠. 모든 관계자들이 서울극장 옆 커피숍에 모여 표를 구매하는 관객 줄을 보고 흥행 여부를 판단했거든요. 당시 CCTV를 통해 매표소 창구를 보곤 했는데, 보다보면 참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의 창구엔 줄이 길게 뻗어 있는데 다른 창구엔 줄이 없으면 괜히 마음이 그랬어요. 그럴 땐 긴 줄을 뚝 떼어서 다른 쪽으로 붙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죠.”

▲서울극장(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서울극장(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예매시스템이 없었던 시대는 여러 진풍경을 낳기도 했다. 영화표를 현장에서만 살 수 있었던 그때, 관객들은 원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부지런해야했다. 인기 영화에 어김없이 ‘암표’가 뜬 이유다. 그 시절을 떠올리는 고은아 대표의 얼굴이 미소가 번진다. “몇 회차 표를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잖아요? 아침 일찍 온 손님도 오전 표가 매진되면 오후까지 기다리시곤 했죠. 긴 줄이 지금은 사라진 국일관까지 이어진 적도 있어요. 국일관은 서울극장과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죠. 그러다보니 암표가 많았는데, 저희가 아무리 단속을 해도 소용 없었어요. 단속이 뜨면 잠시 잠잠하다가, 돌아서면 바로 암표들을 꺼냈으니까요.(웃음).”

하지만 서울극장은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중심부에서 밀려났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추세라 생각해요. 그때는 극장이 강북에 몰려 있을 때였죠. 지금은 사라진 단성사도 잘 나갈 때였고요. 그러다가 CGV 등 멀티플렉스가 동네마다 생겨나면서 관객들이 굳이 강북까지 올 필요가 없게 됐어요. 마침 대중교통 노선이 세분화 되면서 신도시들도 생겨났고요. 그 모든 게 합쳐 시대적으로 온 변화이니 뭐라 할 수 없죠.”

그렇다고 고은아 대표는 낙담만 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꿈꾸는 넥스트! “멀티플렉스 역시 한계가 있지 않겠어요? 모든 것들이 너무 디지털화 되면 반대급부로 추억을 찾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니즈도 많아지리라 생각해요. 얼마 전에 지인들과 흑백영화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모두가 그 시절을 너무 아름다웠다고 하더라고요. ‘아, 지금 사람들의 마음엔 흑백이 마치 고향처럼 아름답게 느껴지는구나’ 싶었어요. 저는 지금의 극장이 먼 훗날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어요.”

▲고은아(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고은아(사진=고아라 기자 iknow@)

# 영화에서 영화로

보다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해 서울극장은 지난 3월부터 리뉴얼에 들어갔다. 현재 리뉴얼이 거의 마무리된 단계. 마침 ‘옥자’ 상영과 겹치면서 서울극장으로서는 여러모로 새로운 모습을 알리는 기회가 됐다. “시기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리뉴얼 거의 완성 단계에서 ‘옥자’가 나왔으니 말이죠. ‘옥자’가 이렇게 개봉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고은아 대표가 리뉴얼 과정에서 특히 신경 쓰는 건 1층 홀이다. “1층 홀은 여러 의미를 두고 만들었어요. 관객과의 대화 내지는 여러 영화 행사를 생각하고 있어요. 돌아가신 회장님은 영화를 너무 사랑했던 분이에요. 후배들이 그곳에서 영화를 가지고 토론하는 걸 보면 굉장히 좋아하셨을 겁니다. 그런 점을 고려해서 만들었죠.”

오랜 시간 영화와 함께한 인생. 그녀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일까. “영화라는 것 자체가 제 사회생활의 출발점이었죠. 그렇게 출발해서, 지금 여기에 서 있네요. 어떤 의미라기보다 그냥 제 인생이죠.”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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