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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영광의 알 수 없는 인생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배우 김영광(사진=와이드에스컴퍼니)
▲배우 김영광(사진=와이드에스컴퍼니)

가수 이문세는 지난 2006년 발표한 노래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이렇게 묻는다.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얼마나 살아봐야 알까요.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같은 질문을 배우 김영광에게 돌린다. 세상까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언제쯤 자기 자신을 알게 될지, 언제쯤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게 될지. 그는 답한다.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덧붙인다. “하지만 늘 저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어요.”

열아홉에 모델로 데뷔해 스무 살에 연기자로 발을 넓혔다. 출연한 작품 수는 이제 영화와 드라마를 합쳐 스무 편에 달한다. 늘 호평이 따랐던 것은 아니다. ‘한 방’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큰 키와 다부진 몸매, 트렌디한 외모가 먼저 시선을 빼앗아 정작 그의 이야기가 흐려지는 때도 있었다. 그래서 김영광에 대한 칭찬은, 박했다. 하지만 그는 믿는다. 언젠가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크게 터지는 날이 올 것임을. MBC 월화드라마 ‘파수꾼’을, 그리고 이번 인터뷰를 거치며 나도 믿게 됐다. 언젠가는 김영광의 이야기가, 곡해나 번짐없이 사람들에게 가닿을 것이라고.

Q. ‘파수꾼’이 지난 11일 막을 내렸습니다. 작품에 대한 첫 인상은 어땠나요.
김영광:
만화 같았어요. 장도한이라는 인물을 만화스럽게 표현하면 재밌겠다 싶었어요. 성격의 간극이 큰 인물이잖아요. 캐릭터를 잘 만들어놓으면, 나중에 얘가 갖고 있는 비밀을 다 보여줬을 때 큰 충격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당신이 연기한 장도한은 숨기는 게 많은 인물이에요. 직선적인 표현보다는 곳곳에 암시를 남겨야 하는 타입이었고요. 연기하기 어렵지는 않았어요?
김영광:
극 중 인물들을 속이기 위해 보여주는 모습을 연기하는 건, 사실 어렵거나 불편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진지한 장면을 찍는 게 어려웠죠. 장도한이라는 인물이 조수지(이시영 분)를 만나 달라지는 과정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하다 보니까 나아지더라고요.

Q.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장도한을 만들어 갔는지 궁금합니다.
김영광:
준비한 건 많았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극 중에서도 다른 인물들을 속여야 하는 역할이잖아요. 장도한이 상대해야 사람들을 그룹핑해서 그들에게 다른 태도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가령 장도한이 입는 슈트의 색깔도 그룹마다 다르게 가져갔어요. 복수 상대를 만날 때는 무채색의 슈트를 입었고 코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는 밝은 색 의상을 입는 식으로요.

▲배우 김영광(사진=와이드에스컴퍼니)
▲배우 김영광(사진=와이드에스컴퍼니)

Q. 결말이 다소 충격적이에요. 시청자들의 반응 또한 호의적인 편은 아니고요.
김영광:
저는 초반부터 장도한이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열린 결말’에 대해서도 감독님, 작가님, 배우들 모두 동의하고 있었고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게 조금 아쉬워요. 시청자 분들께서 워낙 많은 애정과 기대를 쏟아주셨는데, 그걸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던 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Q. 장도한이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왜요?
김영광:
장도한에게 죽음은 속죄의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장도한은 오로지 복수를 향해 가던 사람이잖아요. 윤아의 죽음을 방관한 것도 결국 복수 때문이었고요. 반면 조수지는 굉장히 행동파고 감정적이에요. 그게 도한이의 어떤 부분을 깨워줬다고 생각해요. 조수지로 인해 도한이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신의 죄의식을 되묻게 되고, 결국 속죄를 위해 희생했다고 봐요.

Q. 검찰과 경찰이 고등학생 윤시완(윤솔로몬 분)에게 좌지우지됐다는 점을 두고도 설왕설래가 있었죠.
김영광:
나름대로의 개연성을 찾아가면서 연기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감독님에게) 왜 윤시완을 잡지 못하느냐고 했더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대요. 뒷부분을 촬영할 때는 육체적으로 힘든 게 아니라 (개연성을 찾느라) 머리가 아팠습니다.(웃음)

Q. 타당성에 대한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보여주고자 했던 건, 앞서 말한 장도한의 드라마인가요.
김영광:
네. 복수를 위해 괴물이 된 인물이 복수를 마치고 난 뒤에 어떻게 될까, 그것이 제게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어요. 장도한이 사고로 인해 죽은 것으로 보일까봐 걱정이 많았습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허락돼서 장도한이 죄의식을 자각하고 속죄의 의미로 희생을 선택했다는 설명이 들어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워요. 그렇지만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감독님께서 편집을 굉장히 잘해주셨어요.

Q. 스스로 개연성을 찾아가려고 했지만 도저히 찾지 못할 경우도 있었나요. 그럴 땐 설득을 하는 편이에요, 당하는 편이에요?
김영광:
저는 설득하려는 편에 가까워요. 도한이로서 느끼는 감정이 납득되지 않으면 감독님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죠. 제 생각이 꺾이지 않을 때에는 두 가지 버전을 다 찍어놓기도 합니다.

▲배우 김영광(사진=와이드에스컴퍼니)
▲배우 김영광(사진=와이드에스컴퍼니)

Q. 연기를 하다가 막힐 때 조언을 얻는 사람이 있나요.
김영광: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상담을 해주신 분이 있어요. 못해도 7-8년 정도는 만난 것 같아요. 대본을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가거나 대안이 떠오르지 않을 때 도움을 구하죠. ‘파수꾼’을 촬영하면서는 두 번 정도 만난 것 같아요.

Q. 한 작품에 두 번이면 많이 만난 편인가요, 적게 만난 편인가요.
김영광:
적지도 많지도 않아요. 캐릭터의 감정이 모호하다고 느껴지고 어떤 방식이 나을지 모를 때 도움을 받아요.

Q.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던가요?
김영광:
도한이가 아버지를 처음 보여주는 장면과 청문회 장면이요. 아버지와 대면하는 첫 촬영에서 제가 너무 많이 울어버린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감정은 안 맞는 것 같더라고요. 다시 촬영한 장면이 방송에 나갔는데 그게 더 울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청문회 장면은 일단 굉장히 길었고, 장도한의 히스테리를 총망라해 보여줘야 해서 어려웠어요. 청문회라는 장면이 준 중압감도 있었고요. 감독님께서 편집을 잘해주셔서 다행스러웠어요.

Q. 장도한은 결핍을 가진 인물이에요. 쉽게 공감이 됐어요?
김영광:
아니요, 저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웃음) 탐구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복수를 준비하고 신분을 바꿀 정도로 큰 결심을 한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 얼마나 흘릴까 생각했죠. 장도한은 모두에게 미움을 받은 인물이에요. 외로운 사람이었죠. 사람들 안에 있어도 고립돼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배우 김영광(사진=와이드에스컴퍼니)
▲배우 김영광(사진=와이드에스컴퍼니)

Q. 오로지 복수만을 바라보던 장도한은 조수지를 만나 죄의식을 느끼고 속죄에 이르러요. 조수지가 장도한에게 영향을 준 것처럼 당신을 달라지게 만든 사람이 있나요.
김영광:
우리 소속사 사장님이 그러신 것 같아요. 절 충격 받게 만드신 적이 있죠. 군대에 가기 전, 제게 ‘네가 그만 좀 놀았으면 좋겠어. 일도 똑바로 하고’라는 말씀을 하신 거예요. 저는 충격적이었죠. 내가 그런 모습으로 보이나? 나 그렇게 놀지 않았는데!(웃음) 오히려 요즘에는 하도 안 놀아서 놀고 싶지도 않아요.

Q. 놀지 않으면 뭐 해요?
김영광:
일하는 게 더 좋고 일할 때가 더 편해요. 한 달만 쉬어도 조급해지고 불안해요. 일중독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2-3주만 쉬어도 회사에 전화해요. 괜찮은 작품 없냐고. 쉬면 뭐해요~

Q. 처음부터 일이 더 좋았어요?
김영광:
어렸을 때는 노는 것도 좋아했죠. 지금은 일이 더 좋아요. 으헤헤헤.

Q. 연기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작품은 무엇인가요.
김영광:
다 재밌었어요. 너무 어렵기도 하고요. 어떤 장면에서는 고도의 예민함이 필요한데 어떤 장면에서는 바보같이 연기해도 시청자 분들이 속으시더라고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사실 연기를 대하는 자세는 처음부터 진지했는데, 그게 사람들에게 보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아요. 제가 심하게 동요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혼자서 생각하는 것은 많으나 티를 잘 안 내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꿈의 크기가 커지고 농도가 진해지는 것 같습니다.

Q. 다행히 ‘파수꾼’과 장도한은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김영광:
그러니까요. 그동안은 그런 게 없었는데 별로. 으흥흥흥. 사실 저는 시청자 분들의 반응을 잘 안 보는 편이에요. 대본의 의도를 따르지 않고 시청자들의 반응을 먼저 우려하고 경계할까봐서요. 이번에는 주위에서 반응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하도 그러니까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 들어가서 네이버에 ‘파수꾼’을 쳤죠.

Q. 그랬더니 어떤 글이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오던가요.
김영광:
약간 비속어 같은 느낌이긴 한데… ‘핵소름’이란 표현이 있더라고요. ‘아이, 이게 소름이 돋았나~? 좋은데에~?’ 하면서 봤죠. 으흐흐. 시청자 분들이 ‘이렇게 재밌는 걸 사람들이 왜 안 보지? 우리가 홍보해서 시청률 10%를 넘겨보자’하면서 으싸으싸하는 게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찡했어요. 귀엽기도 했고요.

Q. 새로운 원동력을 얻은 셈이네요.
김영광:
그렇죠. 시청자 분들을 더 놀라게 만들고 싶었고 정말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드라마에게도 고맙고 격한 반응을 해주신 분들에게도 고마워요. 특히 그 ‘핵소름’, 진짜 고마웠어요.(웃음)

▲배우 김영광(사진=와이드에스컴퍼니)
▲배우 김영광(사진=와이드에스컴퍼니)

Q.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 가까이 되는데 아직 대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은 없어요. 주목 받고 싶다는 갈증은 없나요.
김영광:
격하지는 않아요. 다만 작품을 계속 하면서 김영광을 대표할 수 있는 연기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커요. 가령 류승범 선배님이 양아치 연기의 1인자로 평가받듯 저도 한 영역에 있어서 독보적인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Q. 당신에게 맞는 장르, 찾은 것 같아요?
김영광:
아직 작품을 많이 안 해봐가지고요, 다섯 개만 더 해보고 말씀드릴게요. 으흐흐흐. 저는 진한 장르물이 재밌더라고요. 전쟁을 다룬 작품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싸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충격이나 공포감, 도를 넘어선 감정들이 있잖아요. 그게 저를 통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해요.

Q. 주연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김영광:
네. 제가 작품 안에서 어떤 캐릭터로 존재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중요해요. 주인공 의식이 꼭 필요한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 네. 필요하죠. 하하. 날씨가 더우면 아이스크림 사다드리고, 이런 것들을 해야 하잖아요. 으흐흐흐. 그리고 ‘파수꾼’을 하면서 알게 된 건데, 시청자분들이 주인공들의 감정에 쉽게 이입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개떡같이 얘기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듣는 순간들이 있어서 놀라웠죠.

Q. 연기를 대하는 자세는 처음부터 진지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배우로서 당신에게 전환점이 있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김영광: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순간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더 열심히 살자’는 생각을 들었죠. 현실감이 생겼다고 할까요. 무서운 거죠. 연예계 일을 시작했고 연기자가 됐는데, 이러다가 망하면 어떡하지? 배운 건 이것밖에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저를 너무 불쌍하게 생겼던 것 같아요. 으허허허.

Q. 생각은 많은데 티는 안 내는 타입이라고 했어요. 혹시 주변에 티는 많이 안 냈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이 있나요?
김영광:
사실 저는 단순하고 즉흥적인 사람이에요. 누구든 완벽하게 자신을 알지는 못하잖아요. 언제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고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렇지만 항상 제게 기대를 걸고 있고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가지려고 해요. 그러면서 조금 스스로를 푸시하게 되기도 하고요.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난 항상 기대가 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어요. 언젠가 그 기대가 터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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