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라효진 기자]
지난 7년은 박서준에게 도약의 순간이었다. 2011년 래퍼 방용국의 뮤직비디오로 처음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낸 후 한동안은 앳된 학생 역을 맡았다. MBC 주말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에서는 ‘밉상 중의 밉상’이 ‘국민 사위’로 거듭나는 과정도 보여줬다. 이는 박서준이라는 배우의 연기 성장을 목도할 수 있는 장이기도 했다.
이후는 ‘기칠운삼’이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박서준은 트렌디 드라마의 가장 ‘맛깔나는’ 배역들만을 쏙쏙 골라 맡았고, 그렇게 서게 된 자리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KBS2 ‘쌈, 마이웨이’를 통해 껑충 뛰어오른 그는 영화 ‘청년경찰’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배우로서의 깜냥을 확실히 보여줬다.
박서준의 열정
공교롭게도 ‘쌈, 마이웨이’와 ‘청년경찰’ 모두 청춘의 한복판에 박서준을 세웠다. 전자에는 서른을 앞둔 소꿉친구 사이의 애정담이 섞였고, 후자는 멜로 한 방울 없는 20대 초반의 ‘브로맨스’다. 그 흔한 러브라인 없는 ‘청년경찰’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박서준과 강하늘의 ‘케미’였다. 언론배급시사회 이후 반응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놀랍죠. 이렇게까지 좋은 반응을 기대하진 않았거든요. 우리끼리 재미있게 찍은 작품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봐 주셨으면 좋겠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었어요.
작품을 선택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결정하는 과정들을 보면 제가 살아왔던 시간 속에 있는 인물들이었어요. ‘청년경찰’의 기준도 저의 대학 시절 경험이 있으니 접근하기가 쉬웠죠. 다만 제가 지금 서른 살이니, 스무 살 배역이 가능할지에 대한 걱정은 있었어요. 그래서 외적으로 가능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죠. 지금 아니면 언제 스무 살 연기를 하겠어요.”
스무 살의 얼굴을 보여 주기 위해, 박서준은 수시로 라면을 먹으며 붓기로 젖살을 표현하려 했다. 각종 훈련을 받는 신입생 시절을 찍을 때는 나트륨 위주 식사를 했다며 웃던 그는 이후 액션 장면 등을 소화하기 위해 다시 관리에 돌입했다고도 밝혔다.
“액션 장면에서는 기본적인 내용 말고는 거의 콘티가 없었어요. 현장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한 번도 해 본 적 없지만 갑자기 샌드백에 매달려 보기도 하고요.”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그가 “매일 놀러 가는 기분이었다”고 증언했듯, 상대역 강하늘과 김주환 감독의 시너지는 ‘청년경찰’이라는 이야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촬영장에서 쉼없이 나눈 대화들은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각 캐릭터의 호흡을 최상으로 끌어올렸다. 덕분에 처음에는 전혀 상반된 성격을 갖고 있던 기준과 희열이라는 인물은 후반부로 갈 수록 한 사람을 보는 듯 닮아갔다.
박서준의 집념
‘청년경찰’의 기준은 왜 경찰대학교에 진학했냐는 물음에 “학비가 공짜라서”라고 답한다. 기실 경찰은 그의 꿈이 아니었다. 클럽에 놀러가서도 경찰대생이라고 하면 “돈 못 버는 것 왜 하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경찰은 기준의 꿈이 된다.
“저도 스무 살 때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연기학원을 처음 다니기 시작했는데, 일단 대학을 가자는 게 당시의 목표가 됐죠. 입학하니까 너무 좋긴 했지만 인생의 목표가 사라졌더라고요. 그래서 한 학기 동안 엄청난 방황을 했어요. 분명 연기자가 되기 위해 대학에 왔는데, 뭘 해야 할 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점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작아지고,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숨게 되더라고요. 무엇 때문에 내가 이 학교에 들어오게 된 거지? 하면서요. 기준의 고민도, 다른 사람들의 고민도 비슷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역하기 직전을 떠올려 보면, 정말 파이팅이 넘쳤거든요. 나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와 보니까 다 하기는 뭘…(웃음) 오디션 기회를 잡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계속 떨어지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되니까 이 길이 맞는지 혼란스럽더라고요. 목표의식이 사라지고 잡생각만 많아지니까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야 되겠다 싶었어요.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스케줄을 엄청 빼곡하게 짜서 일년을 보냈죠. 전철로 이동할 때도 무조건 시간을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람들을 괜히 고나찰하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제 자산이 된 것 같아요.”
꼭 정공법이 아니더라도 다른 길로 돌아서 얻는 것이 많았던 박서준의 청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태권도 국가대표를 꿈꾸다가 격투기 선수로 전향해 링 위에서 다시금 빛난 ‘쌈, 마이웨이’의 고동만이 겹쳐 보였다. 혼란스러울수록 자신의 생각 안에 갇혀 있기 보다는 외부의 작은 자극도 소중히 하려 했던 박서준의 집념은 캐릭터 속에 고스란히 녹아났다.
박서준의 진심
짧다면 짧은 7년이었다. 그 사이 가파르게 인지도를 상승시킨 박서준에게 있어 여러가지 변화가 있을 듯했다. 반면, 전혀 변하지 않은 것도 있을 터였다.
“바뀐 것은 상황이예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일이 없을 때는 굉장히 빡빡하게 살았잖아요. 당시의 고민은 ‘내가 언제쯤 작품에 참여할 수 있을까’였는데, 지금은 늘 선택의 기로에 놓여요. 고민의 크기가 아니라, 종류가 달라졌고 부담감이나 책임감도 커졌어요. 가끔은 주는대로 급식을 먹고 싶을 때도 있는데,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어렵게 다가오죠.
변하지 않은 것은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늘 감사하고 있어요. 제가 처음으로 팬에게 받은 선물이 제 얼굴이 그려져 있는 머그컵과 편지였거든요. 정말 신기했어요. 그런 존재가 생긴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정말 감사했죠. 초심을 무너뜨리지 않고, 바쁜 스케줄에 불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너무 피곤하면 오늘은 쉬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긴 하지만요.(웃음)”
그래서인지 박서준은 배우 생활 초기에 만난 최우식과의 인연을 무척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최우식과 함께 했던 KBS2 ‘닥치고 패밀리’에서, 박서준은 비로소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경직이 많이 됐던 시기였어요. 막 대사 하나하나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그런데 최우식을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화면 속에서 ‘놀았던’ 것 같아요. 자신감도 많이 붙었어요. 당시 최우식의 집이 여의도였는데, 세트장은 여의도 별관이어서 같이 자고 촬영 가고 했죠.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오는데 촬영 끝난 다음 맥주 사 가지고 가던 기억이 나요.”
여름 성수기 박스오피스 최약체로 평가됐던 ‘청년경찰’은 각 배급사의 텐트폴 무비 ‘군함도’, ‘택시운전사’와 동시기에 극장에 걸리게 됐다. 이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냐는 질문에 박서준은 진지하게 말문을 열었다.
“요즘 다양한 콘텐츠들이 생겼잖아요. 장르도 많아졌고요. 저희는 두 작품과 다른 장르이기도 하고,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시는 시기이기 때문에 충분히 경쟁력은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 분들이 저희 영화에 허락해 주신 109분이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되길 바랄 뿐이예요.”
‘청년경찰’에는 기준이 시험을 보던 도중 ‘열정, 집념, 진심’이라는 답을 적는 대목이 나온다. 오답인지 정답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그러나 배우 박서준에게 ‘열정, 집념, 진심’은 분명 해답이었다. 그가 ‘청년경찰’에서 만난 이 세 단어의 힘은 배우 인생의 또 다른 자양분이 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