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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 칼럼] 택시운전사, 사회적 비극이 제3의 사람과 만날 때

[김동하 교수]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역사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모태다. 문화는 그 모태 위에서 새 역사를 창조한다. 현대 문화 상품의 선봉에 선 영화는 역사를 소재로 관객을 유도하고, 관객은 그 역사적 담론을 평가해 흥행을 심판한다. 영화 속 역사는 사실과 가깝거나 멀 뿐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창작자의 역량에 따라 때론 사실보다 더 진실로 다가간다. 먼 옛날의 역사는 편안하지만, 지금도 살아숨쉬는 가까운 역사는 불편하다. 요즘, 그 불편한 역사들이 영화에 점점 많이 등장하니 반갑다. 역사가의 고증도, 예술가의 비평도 아닌 경영학도의 영화 속 역사, 그리고 돈 이야기

택시운전사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37년전의 민감한 역사 소재를 과하지 않게 풀어낸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자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지만, 영화는 당시 사회적인, 의식적인 배경을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다. 1주일 앞서 개봉한 영화 군함도가 일본하시마섬에 강제징용된 한국인들의 참상을 여러 민족, 계층, 인물들간의 갈등을 통해 증폭시켰다면, 택시운전사는 철저히 광주를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풀어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독일인 기자와 그를 태운 택시운전사를 통해 당시의 역사적 본질보다는, 비극의 현장에서 피어난 인간애와 우정에 집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저마다의 앎의 수준에서 무난히 즐길 수 있는 내용으로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택시운전사의 총제작비는 156억원. 개봉 6일만에 손익분기점인 467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하지만 관람객과 비평가들의 반응은 좀 다른 것 같다.

국내 최대포털 사이트의 관람객 평점은 9점을 넘지만 기자와 평론가의 평점은 6점대 초반이다. 비평, 즉 critic은 그리스어 kritein으로 '가르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굳이 영화 택시운전사에 대한 관점을 독일 학자 아도르노가 말한 예술의 사회성과 자율성으로 갈라서 보자면, 사회성 측면에서는 허전한 측면이 있다. '화려한 휴가', '박하사탕', '꽃잎', '26년' 등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들과 비교해도, 택시운전사는 가장 사회성 짙은 소재를 가장 인간적인 측면에 집중해 강력한 '휴머니티'로 풀어낸 영화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1980년 광주와 전남 일대에서 신군부의 집권을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민중항쟁이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지고 18년간의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는 듯 했으나, 1979년 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필두로 한 신군부는 쿠데타를 실시해 정권을 장악했다. 1980년 5월부터 서울과 전국 37개 대학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기 위한 집회와 시위가 계속됐고, 시위가 활발했던 광주는 고립됐다. 5월17일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5.17조치를 단행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익환 목사 등 26명을 내란예비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5월18일부터 10일간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영화는 화려한 휴가, 26년 같은 영화들이 주목했던 가해자와 피해자, 발포명령의 진상과 책임과 같은 민감한 이슈 보다는 당시 참상을 전세계에 알렸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와 택시운전사 김사복(송강호 분)의 실제 인연에 중심을 두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항쟁이었다는 측면도, 힌츠피터가 왜 광주로 목숨을 걸고 왔는지의 소명의식에 대해서도 굳이 강조하려 들지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한 일이라는 기자의 인터뷰 멘트를 영화에서도 담고 있지만, 과연 특종보도만을 위해 목숨걸고 왔을까.

위르겐 힌츠피터는 베트남전 종군기자였다. 종군기자는 먹고 사는 것 이상의 소명의식이 없으면 뛰어들 수 없는 영역이다. 어쩌면 그는 베트남전을 취재하면서 참전한 한국군들에 대한 이미지를 가졌을 수 있고, 1937년생인 그는 나치의 참상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면서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체득했을 것이다. 군사정권의 독재적 통치를 또 다시 맞아야하는 먼 나라 사람들의 몸부림이 그에게는 먹고 사는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대선을 앞두고 정치영화 특별시민을 개봉했던 쇼박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택시운전사를 투자배급한 건 과감하고 시의성 적절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5월18일 광주를 찾은 자리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은 지금도 살아있는 현실이며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역사라고 말했다. 광주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며 헬기사격까지 포함하여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도 했다.

이같은 시류 속에서 개봉된 영화 택시운전사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만들어진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대배우들의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로만 기억된다면 못내 아쉬울 것 같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가 낳은 세월호 참사를 ‘안전불감증’이라는 개인의 차원에서 접근할 때 불편한 것처럼, 사회적 함의가 큰 사건을 개인의, 제3자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우리 문학계에서 있었던 순수참여논쟁이 지금 한국영화계에 펼쳐진다면 어떻게 진행될까. 군함도, 택시운전사 뿐 아니라 남한산성, 1987 등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줄줄이 선보일텐데, 관객 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평가도 궁금하다.

김동하 한성대학교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동하 교수 2nomd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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