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라효진 기자]
대중이 배우 고경표를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데뷔 초반 인지도를 tvN ‘SNL 코리아’에 빚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코믹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tvN ‘응답하라 1988’은 고경표의 출세작이다.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를 하는 모범생의 첫사랑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주연급으로 발돋움했다. 그런 그가 드디어 데뷔 8년 만에 메인 타이틀 롤을 따냈다. 지난 23일 종영한 KBS2 ‘최강 배달꾼’은 마지막회까지 자체최고시청률을 경신하며 바짝 가문 KBS 드라마판에 활력소가 됐다.
“서운한 마음이 커요. 너무나도 즐거운 촬영장이었거든요. 현장 분위기를 더 못 느끼는 것이 아쉽고, 많이 생각날 것 같아요. 사실 실감도 잘 안 나고요. 메인 타이틀 롤에 책임감도 있었지만, 다른 배우들이 잘 해 줘서 부담감이 덜했어요.”
고경표는 ‘최강 배달꾼’에서 5년차 떠돌이 짜장면 배달부 최강수 역을 맡았다. 한 곳에서 두 달 이상은 일하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동네를 접수해 버리는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로부터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골목 대장 같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경표는 드라마 이전까지 오토바이를 전혀 탈 줄 몰랐다고.
“지금은 기어 변속이 자유로운 스쿠터 정도는 잘 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클러치가 있는 오토바이는 능숙하지 못해요. 앞으로도 탈 생각은 없어요. 최강수를 연기하면서 배달부 분들의 노고를 좀 알겠더라고요. 음식을 배달받는 것이 일상의 한 부분처럼 흘러갈 뿐이었는데, 위험한 길을 왔다갔다 하시면서 고생하고 계신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그래서 그 분들을 웃으면서 친절하게 맞이하려고 노력해요.”
여러모로 위험한 촬영이었지만 다행히 부상은 없었다. 대신 면역력이 약해져 얼굴에 발진이 생기는 바람에 촬영에 차질을 빚었다며 미안함을 전한 고경표였다.
막판에는 생방송에 가까운 촬영 스케줄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이후 ‘최강 배달꾼’ 팀은 MT까지 떠날 정도로 돈독해졌다. 고경표와 김기두가 앞장섰다. 참석률이 무려 100%란다.
“이번 작품할 때는 정말 마음 놓고 웃고 떠들고 놀았어요. 주로 말장난을 하면서 노는데, 김기두 형이 동생들을 웃겨 주는 현장 분위기 메이커였죠. MT에서 술 게임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저는 3일밤을 새고 가는 바람에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MT 갔다 와서는 종방연에서 또 만나고. 너무 좋은 사람들이예요.”
모교인 건국대 후배 채수빈과의 호흡도 남달랐다. 고경표는 ‘최강 배달꾼’의 제작발표회 당시 실제로 대학 시절 채수빈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적도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건대 출신 배우 두 사람이 캠퍼스를 배경으로 마지막 키스신을 찍은 재미있는 우연도 있었다.
“‘응답하라 1988’ 때 류혜영과도 동문인데 현장에서 만났죠. 오래된 학과가 아니라서 만나게 되면 재미있고 뿌듯하고 즐거워요. 이번에 채수빈과도 엄청 친해졌고, 정도 많이 들었어요. 키스신은 저도 그렇고 작가님도 건대에서 찍길 바랐다고 하시더라고요. 힘이 돼 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힘을 많이 얻었어요. 연기도 잘 하고, 마음도 예쁘고 얼굴도 예쁜 좋은 배우예요.”
그러나 연인 발전 가능성은 없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연기하면서는 가슴이 뛰지만, 실제와는 결이 다른 두근거림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렇지만 연말 시상식 베스트 커플상을 타면 너무 좋을 것 같다며 웃었다.
고경표는 ‘모태 솔로’인 최강수와 오지랖이 넓은 점은 닮았지만, 연애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최강수처럼 예쁜 여자친구가 앞에 있는데도 공부에 집중할 수는 없다고 너스레를 떤 그는 연애 이야기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8년 동안 단 한 번의 스캔들도, 공개열애도 없었던 그다.
“연애요? 엄청 해요.(웃음) 대놓고 해서 오르내리지 않는 것 같아요. 유원지나 해외 여행도 안 가리고 다니지만,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생활은 존중 받고 싶은 마음이 커요. 혹시나 사인이나 사진 요청이 들어 왔을 때는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요.”
최근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류준열과 혜리의 열애 소식은 전혀 몰랐다고. 서로만을 바라보는 사랑, 주변에 휘둘리다 상처를 입어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는 사랑을 하라고 응원의 말까지 건넸다.
고경표와의 인터뷰에서는 유독 사람들의 이름이 많이 나왔다. 동문이자 동료 배우인 안재홍부터 시작해 tvN ‘시카고 타자기’를 함께 한 임수정, SBS ‘질투의 화신’에서 호흡을 맞춘 공효진 등 화려한 이름들도 많았다. 사람 이야기를 할 때면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처럼 생기가 돌았다.
“안재홍 형은 ‘최강 배달꾼’ 현장에 커피차를 보내 줬는데, 그러면서도 ‘이런 것보다는 내가 너를 위해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죠. 정말 고마웠어요. 좋은 사람들이랑 작업하게 돼서 너무 다행이고, 꾸준히 연락하고 있어요.”
최근 또래 배우들의 입대 러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고경표의 행보 역시 주목됐다. 그간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해 온 터라 조금은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말이 돌아왔다.
“잠깐은 비워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너무 내달리긴 했죠. 스펙트럼 넓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면서도 위화감이 없고 늘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제 목표예요. 전작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후에는 영화 ‘7년의 밤’ 개봉을 앞두고 있고, 드라마도 예능도 할 수 있으면 좋고요. ‘난 이것만 할 거야’라는 생각을 내려 놓은지는 오래됐어요. 군대 가기 전에 부모님께 번 돈을 다 드리고 다녀 올 거예요. 월세 보증금은 빼고요.(웃음)”
벌써 올해도 9월의 끝물까지 접어들었다는 사실에는 놀랐지만, 20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에는 담담했다.
“크게 와 닿지 않아요. 감흥이 없달까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라…. 지금도 약간 스무살처럼 설렐 때가 많아요. 30대가 아직 오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언제나 스무살의 마음이라면 서른이 되든 마흔이 되든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고경표의 논리는 타당했다. 사람 좋아하고, 연기 좋아하고, 이를 숨길 줄 모르는 고경표의 성장을 두고 보고 싶어지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