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먼 미래의 얘기겠지만, 언젠가 ‘긴 여름’을 리메이크해서 부르고 싶어요.” 일견 소박하게 들리는 전시우의 바람은, 그러나 음반을 만들며 보냈을 그 해 여름의 치열함을, 애탐을, 희열을 농축하고 있었다. 새 음반을 홍보하는 인터뷰 자리였건만, 전시우는 “아직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긴 여름’”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지난달 발표된 EP ‘그 밤, 우리에게 남은 빛’은 시우가 소속사 클래프컴퍼니와 전속계약한 뒤 처음으로 만든 음반이다. 시우는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동시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계신 만큼 남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부담감은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시온의 피아노 연주로 아침(1번 트랙 ‘다시 아침’)을 연 음반은 기억을 마주하는 저녁(4번 트랙 ‘돌아가는 길’)으로, 그리움에 침잠하는 깊은 밤(2번 트랙 ‘밤’)으로 청자들을 데려간다. 시우는 “1번 트랙에서 5번 트랙의 멜로디가 나온다”면서 “음반을 반복 청취하고 싶도록 만든 장치”라고 귀띔했다.
시우는 계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팀이다. 전시우는 “가장 많은 영감을 받는 대상이 날씨, 계절, 시간”이라면서 “봄에 들으면 좋은 시우의 노래, 여름 혹은 가을에 들으면 좋은 시우의 노래처럼 매 계절을 대표하는 노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가을 문턱에 선 기분이 좋단다. 전시우는 “바람이 춥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시원하게 불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음반이 가을 감성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는 홍보도 잊지 않았다.
흔히 봄은 생명의 시기로 가을은 풍요의 계절로 설명되곤 한다. 대척점에 서 있는 여름이나 겨울은 고난의 시간으로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아침과 밤의 관계도 비슷하다. 하지만 시우는 여름과 겨울을, 밤과 어둠을, 외로움과 괴로움을 부정하지 않는다.
“‘긴 여름’을 내던 여름을 잊지 못해요. 당시엔 정말 힘들었는데 음반이 나오고 나면 그 힘듦이 엄청난 희열로 돌아와요. 제가 해왔던 모든 것들이 제겐 밑거름이 되고 어둠 속의 빛이 돼서 돌아와요.”
요즘 시우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공연’이다. 작은 규모로나마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단다. 노래도 노래지만 멘트에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두 멤버 모두 ‘달변’과는 거리가 먼 탓에 한 때는 공연 멘트를 통째로 외워간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키워드 위주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법을 터득해나가는 중이다.
“예전에는 상대방 눈을 보고 얘기하는 것도 잘 못했다”던 전시우는 공연을 하면서 상대방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그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노래하는 게 정말 좋다. 내 감정이 조금 더 가까이 가닿는 기분이 든다”고 말하며 웃었다.
“가양역 인근에서 거리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공연이 자주 열리는 곳이 아니라 무대도 없고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만 많았거든요.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봐주신 분들께서 앙코르도 외쳐주시고 같이 참여도 해주셔서 즐거웠어요. 어떤 분은 공연이 끝난 뒤에 ‘시우라는 팀을 너무 늦게 알게 돼 미안하다’는 말씀도 해주셨어요.”
시우의 이름은 때 시(時)에 비 우(雨) 자를 써서 표기한다. ‘적절한 시기에 내리는 비’라는 뜻이다. 팀의 감성적인 색깔이 비와 잘 어울린다는 이유로 이 같이 이름 지었다. 동시에 이것은 쓸모 있는 음악을 만들겠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힘들고 슬플 때 ‘힘 내’라고 말하는 것만이 유일한 위로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엉엉 울고 나면 시원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우리도 감성적인 음악으로 위로를 드리고 싶어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발전하고 나아가는 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