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에는 평균나이 75세, 한글을 배우고 뒤늦게 만난 인생의 참맛. 까막눈 70년을 지나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는 충청도 한글교실 이야기가 밥상 위에 차려진다.

글 한 줄 못 쓰던 이들이 평생 만들어온 음식 요리법을 삐뚤빼뚤 투박한 글씨로 적어 책을 냈다. 어릴 적 한국전쟁으로 피난 시절을 겪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아이 키우랴, 농사지으랴, 일하랴 포기할 것이 너무도 많던 시절이었다. 생계를 짊어지던 우리의 어머니들은 평균나이 75세 만학도가 되었다.
칠순이 넘어서야 다시 배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녀들! 가방 메고 공부하러 가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데. 까막눈으로 자그마치 7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낸 그 속상함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이름 석 자 쓰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글을 배우고 뒤늦게 맛본 인생의 참맛. 충청도 할머니들의 공책을 빼곡하게 채운 인생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태안군 원북면 바닷가는 깜장굴이 제철이다. 깜장굴은 갯바위에 서식하는 자연산 굴로, 그 모양이 작고 까맣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굽은 허리로 굴을 따는 이들은 태안 한글 교실에 다니는 만학도들이다. “이것만 캐고 공부하러 가야 혀” 가장 먼저 굴 밭을 나서는 김선자 할머니(78)는 ‘보리밭’이라는 시화로 상까지 탄 우등생이다. 가난한 살림에 육성회비가 없어 학교를 못 다녔던 게 한이 되었다. 3년 전, 먼저 손을 내민 김은숙 선생님(51)과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천안 한글 교실에는 손발 척척 맞는 4총사가 있다. 이들은 서로 살아온 세월도 간직한 아픔도 비슷하다 보니 어느새 절친이 되었다. 시간 날 때마다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는데. 겨울이 성큼 다가온 지금, 큰언니 이묘순 할머니(81)를 중심으로 올겨울을 든든히 보낼 보양식을 만들어 먹을 참이다.


보령호에 안쪽에 숨어있는 작은 섬.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서 흘러 겨울이면 얼음이 둥둥 떠다닌다고 하여 빙도(氷島)라 부른다. 지금은 보령방조제 건설로 육지가 되었지만, 20년 전만 해도 바닷물이 드나들며 넓은 갯벌이 펼쳐지던 섬이었다. 평생 어부로 살다가 농부가 된 빙도 주민들은 가끔 배를 타고 나간다.

뭍에서 살다가 53년 전 배를 타고 시집온 유성금 할머니(76)는 7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동생들 돌보느라 배움의 때를 놓쳤다. 칠순이 넘어서야 한글 교실을 다니며 그 한을 풀고 있다는데. 글을 배워 곡절 많은 자신의 인생사를 기록하는 게 할머니의 목표다. 바다와 갯벌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여전히 집마다 말린 생선이 걸려 있고 밥상에는 해물이 빠지지 않는 빙도의 갯내 가득한 밥상을 만나 본다.

공주시 유구도서관에 매주 한글 교실이 열린 지 10년이 넘었다. 가장 처음 한글 교실을 만든 주인공은 김익한 할머니(85)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딸은 학교를 안 보내도 된다며 싸리문을 잠가 버렸고, 시집와서도 6남매를 낳고, 시누이 아이들 셋까지 기르느라 배움은 계속 늦어져 갔다. 아이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나서야 공부를 시작했다는 김익한 할머니. 13년 전 칠순이 넘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고파 무작정 도서관 문을 두드렸다. 사실 그녀가 그토록 한글을 배우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한평생 돌아가신 오빠의 호적으로 살아왔기 때문. 제 이름으로, 제 나이로 살지도 못하는 것이 배우지 못한 자신의 탓으로 느껴졌다는데. 이제는 자식들에게 편지도 쓸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매일 흙 부뚜막에서 도시락 아홉 개를 싸던 지난날. 가난한 살림에 변변치 않던 도시락이었지만, 자식들이 가장 좋아하던 음식은 ‘튀각’이다. 고추, 다시마, 싸리순, 가죽나무순 등 한 해 수확한 것들은 틈이 날 때마다 말려두었다가 겨우내 튀겨 먹는다. ‘적당히’ 말려 ‘알만치’ 튀겨내는 게 비법이다. 여기에 설탕과 소금까지 솔솔 뿌려주면 완성! 밤 요리도 곁들인다. 밤을 절여 담근 ‘밤깍두기’와 찹쌀에 밤, 은행, 대추 등을 버무려 찐 ‘밤버무리’까지 공주에선 밤도 좋은 반찬이 된다. 한평생 식구들의 매 끼니를 챙기며 쌓은 지혜와 정성이 가득 담긴 밥상을 맛보러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