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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12년 독재정권 끌어내린 4·19혁명, 정의ㆍ민주주의 부르짖던 시민들…이시원ㆍ다니엔 린네만 출연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역사저널 그날' 대한민국 헌법에 또렷이 담긴 4·19 민주이념과 4·19혁명의 가치를 확인해 본다.

14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4·19혁명 60주년 기획으로 “피의 일주일, 4.19부터 하야까지”특집으로 12년의 독재정권을 끌어내린 4·19혁명, 정의와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이 땅에 시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부정선거 다시 하라”, “이승만 대통령 하야하라”를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고, 경찰의 무차별 발포가 이뤄졌다. 186명이 사망하고, 무려 6천여 명이 다쳤다. 무자비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항거는 들불처럼 번졌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한다. 피의 화요일이 일어난 지 일주일 만이었다.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17세 김주열의 사망 미스터리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 한 구가 떠올랐다.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주검은 마산상고 진학을 앞둔, 17살 김주열이었다.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시위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지 한 달여 만이었다. 애타게 아들을 찾아 나선 어머니의 노력으로 이미 마산 시민들까지 한마음으로 김주열을 찾기에 동참한 상황이었다. 시신을 보기 위해 구름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은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특히 김주열의 눈에 박힌 포탄은 군사용으로 당시 경찰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최루탄과는 모양이나 기능이 달라 의혹이 더욱 증폭됐다. 1960년, 마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자세히 밝힌다.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3·15 부정선거의 노림수

1960년 3월 15일 대통령 선거 당시 투표소 곳곳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깡패를 동원해서 회유와 협박을 하고, 사람들을 3명, 5명씩 짝짓게 하여 공개투표를 지시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개표 현장에서도 거침없는 부정이 자행된다. 쌍가락지표, 피아노표 등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개표 조작이 펼쳐진다. 심지어 수면제를 탄 닭죽을 먹여 상대 진영 관계자들을 재운 뒤 투표용지 바꿔치기까지 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조병옥 후보가 급사하면서 대통령 선거는 자유당 이승만 단독 후보로 진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최악의 부정선거가 치러진 이유가 무엇인지, 자유당의 노림수는 어떤 것인지 알아본다.

◆학생을 정치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4·19혁명이 시작되기 직전 가장 앞서 시위에 나선 건 10대 청소년, 학생들이었다. 특히 2월 28일 대구에선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해 고등학생들이 시위에 나선다. 마산에서 이어진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여한 이들도 17살 김주열을 포함한 학생들이었다. “학원의 자유를 달라”, “학생을 정치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칠 수밖에 없었던 1960년대 정치적 상황을 들여다보고, 투표권 없는 학생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를 알아본다.

홍선화 기자 cherry31@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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