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굴욕적인 장면이 되어버린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살펴본다.

1973년 8월 8일 낮 1시 일본 도쿄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서 김대중이 납치됐다. 백주 대낮에 토교 시내 한복판 호텔에서 대한민국 야당 지도자를 누가, 왜, 어떻게 납치한 것일까? 충격적이게도, 김대중을 납치했던 사람들은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의 공작원들. 김대중이 풀려난 직후 동교동 자택에서 가진 기자회견 당시의 김대중의 생생한 육성을 입수해 베일에 싸여있던 그날 129시간 미스터리를 '역사저널 그날'에서 복원한다.

공작단에게 납치되어 끌려가 손발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채 중앙정보부의 공작선 용금호에 감금된 김대중. 공작원들은 그의 오른 손목과 발목에 수십 킬로그램짜리 돌을 매달고는 ‘던질 때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라’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추후 밝혀진 공작 계획안 관련 증언에 따르면, 야쿠자를 이용해 김대중을 납치해 데려오는 것과 암살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데. 그런데 공작원들이 납치했던 김대중을 의사의 진찰을 받게 한 후 서울 동교동 자택 앞까지 데려다줬다? 김대중 납치의 목적은 살해인가, 경고인가? 그날의 생생한 증언을 '역사저널 그날'에서 만나볼 수 있다.

대한민국도 아닌, 일본에서 야당의 지도자인 김대중이 중앙정보부에게 납치됐다. 유신체제 하에서 해외로 나가 거의 유일한 반유신 활동을 했던 김대중. 강경한 수사를 하겠다는 입장이던 일본이 갑자기 납치사건 수사를 흐지부지 마무리하기에 이르렀고, 한국의 모 재벌이 다나카 수상에게 4억 엔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소문까지. 납치 사건의 최종 기획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납치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대한민국은 고개를 숙여 일본에게 사과했고, 국제적으로 깡패국가로 낙인찍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