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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성국’ 발해 건국부터 멸망까지 '역사저널 그날'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해동성국’ 발해의 건국부터 멸망 이야기를 '역사저널 그날'에서 만나본다.

4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발해 초기 당나라 등주를 공격한 대조영의 아들 무왕의 이야기와 발해의 시선으로 바라본 당시 동북아시아 정세까지 재조명 한다.

668년 고구려 멸망 28년 후, 고구려 유민 대조영은 발해를 건국한다. 이후 발해는 영토를 넓혀가며 해동성국이란 별칭까지 얻는다. 하지만 우리는 발해를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의 최수종으로 기억할 뿐 실제 발해의 기상과 위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발해 시조 대조영의 아들인 무예와 문예. 이름은 비슷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달랐던 두 사람의 인생. 형제의 난을 연상케 하는 두 형제의 갈등은 발해가 펼친 대 당나라 정책을 상징한다. 발해를 배신하고, 조국을 공격한 동생 대문예와 고민 끝에 자신의 동생을 죽일 결심을 한 형 대무예. 영웅의 아래에서 태어났지만, 결국 파국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대조영의 두 아들. 그 안타까운 형제의 삶을 '역사저널 그날'에서 이야기한다.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728년 4월, 당나라에 숙위宿衛로 가 있던 무왕의 아들 대도리행의 사망 소식에 전해진다. 왕위 계승자가 사망하자 발해는 혼란에 빠지고, 왕위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다. 더군다나 무왕의 명을 거역하고 당나라의 벼슬을 받은 동생 문예는 당 현종의 명을 받아 발해 토벌 사령관으로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당나라 기습공격에 나선 무왕. 신생국인 발해가 당대 최강국인 당나라의 요충지, 등주를 공격한 이유,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당과 손을 잡은 신라군의 북진. 과연 발해는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고구려에 광개토대왕이 있었다면, 발해에는 무왕이 있었다. 발해를 대국으로 이끌어갔던 무왕의 결단력과 비결이 낱낱이 공개한다.

당대 최강국 당나라를 견제하며 동북아시아의 균형을 맞춘 무왕. 그 후 발해는 주변국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빠르게 발전을 이루고, ‘해동성국’이란 칭호까지 얻은 발해. 하지만 영원히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발해가 건국 228년 만에 거란족의 침입으로 보름 만에 멸망했다고 한다. 한순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발해이기에 세간엔 ‘발해 멸망 미스터리’까지 떠돌고 심지어 백두산 폭발과 관련이 있었다는 말까지 나돈다. 남겨진 기록이 없어 더욱 궁금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발해의 건국부터 멸망 이야기를 살펴본다.

홍선화 기자 cherry31@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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