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방송되는 KBS 1TV '이슈픽 쌤과 함께'에서는 한미동맹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다.
박원곤 교수는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장소들을 소개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한미동맹의 근간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처음 체결된 부산, 지난 44년간 연합방위체제의 핵심인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있던 용산, 동북아 최대 규모의 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이 한미동맹을 상징한다는 것.

이후, 정전협정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북한은 미군 철수를 요구했고, 한국은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안보 보장 없이는 북한이 다시금 남침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은 미국에 상호방위조약체결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조약 체결에 소극적이었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남한에 수용 중인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압박 전술로 대응했다. 이 사건으로 충격에 빠진 미국은 한국의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응하게 되었고, 동맹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를 보고 동맹을 믿지 못하겠다고 판단했고, 이후 율곡사업을 시작하는 등 자주국방 노선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1970년대 미국과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 진영 간의 긴장 완화 즉, 데탕트를 계기로 한국은 안보에 더욱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북한에 비해 부족한 한국 군사력에 대한 보완 조치를 강구했다. 이에 따라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었고, 한미는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 연합해 맞서는 동반자 관계가 되었다.

박 교수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주변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국익을 실현해 왔던 기존의 방식을 추구하기 힘들어진 오늘날, 미·중 갈등 선택의 상황에서 ‘전략적 명확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를 위해서 한국은 주변국들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 보편적 규범에 기초하는 입장을 취하고, 이러한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우리가 대한민국의 위상에 맞는 책임과 비용을 감당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면 더욱 발전하는 동맹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