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윤준필 기자]
2023년 9월은 배우 전여빈의 달이었다. 월초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너의 시간 속으로', 월말에는 영화 '거미집'으로 대중과 만났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의 촬영 시기 또한 일부 겹쳤다. 그 때문에 전여빈은 1990년대와 2000년대, 1970년대의 인물을 비슷한 시기에 연기하게 됐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비즈엔터와 만난 전여빈은 두 작품을 음악으로 비유했다. '거미집'에서 그가 연기한 신미도는 트로트 같은 인물이며, '너의 시간 속으로'에서의 권민주와 한준희는 클래식 같다고 표현했다.
전여빈이 '클래식'으로 표현한 '너의 시간 속으로'는 1년 전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를 그리워하던 준희가 운명처럼 1998년으로 타임슬립해 남자친구와 똑같이 생긴 시헌과 친구 인규를 만나고 겪게 되는 미스터리 로맨스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너의 시간 속으로'를 좀 더 아름답게 연주하기 위해 전여빈은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전여빈과 '너의 시간 속으로'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기로 했다.
Q. '너의 시간 속으로'에 '거미집'까지 바쁜 9월을 보냈다. '너의 시간 속으로' 시청자 반응은 찾아봤는지?
타인의 반응에 흡수가 빠른 편이기도 하고, '거미집' 홍보 일정도 남아있었기에 반응을 확인하지 않았다. 괜히 확인했다가 '거미집' 홍보 일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번 정도는 더 보고 객관적인 마음이 됐을 때 반응을 확인하고 싶다. 그땐 좀 더 건강한 마음으로 대중의 평가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Q. 시청자 반응에 예민한 편인가?
아직 자식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모든 작품이 내 손가락처럼 소중하다. 그래서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연륜이 더 쌓이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희일비하는 편이다.
Q. 워낙 인기 있는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보니 부담이 됐을 것 같은데?
몇 해 전 '상견니'가 공개됐을 때 나 역시 재미있게 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리메이크 소식을 들었을 때 누가 할지 막연하게 궁금했다. 모두가 탐내고 부러워할 만한 작품이기 때문에 캐스팅 이후엔 부담감을 느끼기보다는 기쁘고 감사했다. 그래서 겁도 없이 행운을 덥석 잡았다.
그런데 '상견니'를 마치 첫사랑처럼, 보물처럼 품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제야 마음이 무거워지긴 했다. 하지만 그 고민으로 내게 주어진 과제를 피하고 싶진 않았다. 좋은 책임감으로 받아들이려 했고, 좋은 에너지로 흘러가게 용기를 냈다.
Q. 원작을 다시 참고했는지?
원작을 본 건 몇 해 전이라,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감독님이 원작을 모방한다거나, 원작의 이미지에 갇히는 걸 극도로 염려하셨다. 나 역시 우리만의 새로운 그림을 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품 공개 후 정주행을 했는데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느껴졌다. 특히 감독님이 배우와 스태프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주셨고, 끝까지 모든 걸 책임지려 했던 감독님의 노력이 작품으로 느껴졌다.
Q. 1인 3역이나 다를 바 없는 연기를 했다. 비결이 있을까?
난 대본에 충실한 연기자다. 대본에서 느껴지는 인물에 집중하려 했고, 대본부터 인물을 잘 표현할 수 있게 구획이 잘 돼 있었다. 20대 준희, 30대 준희, 민주 몸에 들어간 준희, 준희인 척하는 민주 등 여러 상황에서의 캐릭터가 명징했다. 또 감독님의 생각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이 일치하는 편이었기에 감독님의 믿음 속에서 자유롭게 연기했다.
Q. 30대 초중반에 교복을 입었다. 교복 입는 연기가 은근히 많은 것 같다.
'죄 많은 소녀'가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많이 입게 된다. '낙원의 밤'(2021)에서도 잠깐 입었고, '빈센조'(2021) 홍차영을 연기할 때도 잠깐 입었다. 교복 입는 것이 이젠 매우 낯설다. 이번에는 계속 난 고등학생이라고 주문을 걸었다. 다행히 강훈, 안효섭도 같이 교복을 입었고, 그들과 함께 있으니 우린 고등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자신감으로 고등학생을 연기했다. 이제는 진짜 마지막일 거 같긴하다.
Q. '너의 시간 속으로'는 첫사랑에 관한 드라마였다. 전여빈의 첫사랑은 어떤 존재였는가?
난 항상 지금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지나간 시간보다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 첫사랑은 스쳐 간 사랑, 과거의 추억이다. 첫사랑보단 앞으로 다가올 사랑이 중요하다. 멋진 사랑을 하고 싶다. 하하.
Q. 준희와 연준은 운명처럼 만난다. 전여빈도 그런 운명이 있다고 믿는지?
운명을 믿고 싶진 않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애쓰면서 살고 있는데 운명이 있다면 내 노력이 너무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운명이 있다면 좋은 쪽으로만 있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우리 OST '네버엔딩스토리'의 가사처럼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믿음? 너무 선택적으로 운명을 믿는 걸까? 하하.
Q 결말이 원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말을 만족하는 편인가?
꼭 결말은 이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없는 편이다. 열린 결말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만큼은 준희와 민주를 비롯해 모든 인물이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그들이 자신의 소중한 사랑을 놓치지 않기를, 그 시간 속에서 온전히 행복하기를 바랐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주인공들의 행복을 믿을 수 있을 때 오는 행복감이 큰데, '너의 시간 속으로'의 꽉 닫힌 해피엔딩은 인물들을 꼭 지켜준 것만 같아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