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윤준필 기자]
약 30년의 연기 경력을 가진 배우 정재영에게도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는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 역을 맡았기에 중국어로 모든 대사를 소화해야 했던 것은 당연히 어려웠다. 언어보다 그에게 심적 부담을 준 것은 '노량'이 '명량'과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어 '이순신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라는 점이었다.
지난해 12월 20일 개봉한 '노량'은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를 그린 영화다. 개봉 2주차 만에 누적 관객 34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청신호를 밝히고 있다. 최근 비즈엔터와 만난 정재영은 천만 흥행 기대작이라는 표현에도 그저 "이순신 장군에게 누가 되지 않기 바라는 마음"이라며 겸손함을 드러냈다.
정재영은 '노량'이 우리 영화 역사에 유의미한 영화가 될 것이라 믿는다며 '노량'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고 했다. 배역과 시나리오가 좋아 선택하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노량'은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다룬 작품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출연할 이유가 충분했다고 말했다.
또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을 곁에서 직접 보며 느낀 감정도 털어놨다. 정재영은 김윤석이 연기한 이순신에 대해 '명량'에서의 용맹한 이순신, '한산'에서의 지략가 이순신의 모습을 모두 갖춘, 희로애락이 모두 녹아든 이순신이었다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하 정재영과의 일문일답
Q. '노량'에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시나리오가 가장 컸다. '명량'과 '한산'에선 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둬 통쾌함을 주는데, 노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이다 보니 글로만 읽어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가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해 '노량'에 꼭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출연을 결심한 다음 중국어로 연기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더라.
Q. 실존했던 명나라 장수를 연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상상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회화를 배우는 것도 아니고, 대사를 외우는 거라 더 어려웠던 것 같다. 누가 봐도 한국인인데 명나라 사람의 감정 표현을 해야 하니 쉽지 않더라. 중국 사극, 삼국지 시리즈 열심히 보면서 어떻게 하면 덜 고생할까 고민했는데 방법이 없더라. 무조건 많이 연습하고, 배우고 듣고 따라했다. 6개월 정도 공부했다. 어릴 때 그렇게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하하.
Q. 오랜만에 출연하는 사극이기도 했다.
'역린'(2014) 이후 9년 만의 사극이었다. '이끼' 때 노인 분장을 하면서 수염을 붙인 적이 있긴 한데, 사극에서 수염을 붙여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굴에 수염 붙이는 게 불편하고, 적응이 안 된다. 평상시의 몸가짐이 아니니 아무래도 불편하다. 그래도 왜군 분장을 하는 것 보면서 위안을 얻었다. 하하.
Q. '이순신' 김윤석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땠나?
사적인 자리에서 가끔 보는 사이지만, 한 작품에 출연하는 건 처음이었다. (김)윤석이 형은 현장에서도 영화 속 이순신의 느낌으로 계속 있었다. 다른 배우들이 덕분에 그를 이순신으로 바라보고 몰입할 수 있었다. 촬영하는 내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도 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적진을 향해 직진만 했을 것 같아도, 평소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그 느낌을 김윤석이란 배우가 현장에서 보여줬다.
Q. 조-명 연합의 일원으로 김윤석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는지?
현대물이었다면 같은 언어를 쓰기 때문에 즉각 우리의 케미가 느껴지는데, 윤석이 형은 한국어, 나는 중국어로 연기하고, 그사이 통역들을 한번 거쳐서 대화가 진행되다 보니 리액션을 바로 하면 안 되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만 윤석이 형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나는 그의 말을 바로 듣고 이해할 수 있으니까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게 어려웠다.
Q.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어떻게 그릴지, 궁금해서 '노량'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완성된 '노량'을 본 소감은?
시나리오로 볼 때보다 훨씬 좋았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표현되는데, 이순신의 한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이 크게 다가왔다. 최후의 전투에서 울리는 북소리도 참 많은 감정을 느끼게 했다. 북소리의 여운이 정말 기가 막혔다. 백마디 말보다 훨씬 울림이 더 컸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Q. '노량'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된 것이 있는지?
알면 알수록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난중일기'만 봐도 참 대단하다. 7년 전쟁 동안 일기 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또 7년 사이 투옥도 되고, 주변의 시기 질투도 있었고, 심지어 왕조차 그를 싫어했는데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았던 위인 아닌가. 지혜와 전략, 강단과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유비, 관우, 장비가 나누어 가진 걸 혼자 다 가진 장군이라고 말하고 싶다.
Q. '서울의 봄'에 이어 천만 흥행이 예상되는 작품이다.
물론 잘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고, 고민하는 건 크게 의미 없는 것 같다. 우리 영화 CG에 800명의 스태프들이 투입됐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가 이 영화에 투입됐다. 천만 관객이 보지 않더라도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에 와서 '노량'을 봐주셔서, '노량'을 위해 애쓴 모든 사람들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애쓴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예비 관객들에게 '노량'을 홍보한다면?
'노량'은 극장에서 봐야 영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2D 일반 상영관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도 스크린이나 사운드가 더 좋은 곳에서 볼 걸 그랬다고 아쉬워하는데, 나중에 OTT 통해서 TV나 휴대폰으로 보는 건 영화의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없다. 수고스러우시더라도, 친목도 다질 겸 가족, 친구들과 극장에 놀러 오셨으면 좋겠다. 사실 영화를 잘 만들면 관객들은 오지 말라고 해도 극장에 온다. 배우로서 극장에 갈 만한 영화를 계속 만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