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노년을 즐기지 못하고, ‘죽지 못해 산다’는 노인들의 넋두리는 척박한 현실을 대변한다. 우리는 지금껏 잘 사는 것에 치중했지만, 영화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는 이런 우울한 현실과 마주한 이들에게, 혹은 여전히 활기찬 젊은이들에게 ‘잘 죽는 법’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영화는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 분)을 통해 우리 주변 소외된 이들의 삶을 담담히 풀어낸다.
소영은 죽여주게 서비스를 잘한다는 소문이 난 성매매 할머니다. 가난과 소외 속에 곧 죽어갈 노인들을 상대로 몸을 팔며 살아간다. 그러다 한 때 자신의 단골 고객이자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 노인으로부터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다 그를 진짜 죽여주게 된다.
영화는 주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인물들을 토대로 외롭고, 아픈 가난한 노인들이 마주한 냉혹한 현실을 담아냈다. 우리는 닥쳐올 노년과 죽음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죽여주는 여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의 비극적인 결정을 통해 아름답게 죽을 권리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준다.
제목처럼 여러모로 ‘죽여주는 여자’ 소영이 성과 죽음을 파는 소재는 다소 파격적이다. 하지만 그들의 아픈 사정은 자극보다 위로의 메시지를 준다. 노인들의 소외된 삶과 죽음, 성매매로 시작하지만 영화 전반에 우리 사회가 꺼리는 비주류 인생들로 범위를 넓혀간다. 그럼에도 영화는 생각보다 우울하지 않다.
“상황이 어둡다고 인생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이재용 감독의 뜻에 맞게 따스함이 스며들어 있다. 성매매를 하고 살아가는 소영은 자신도 혼자 살아가기 퍽퍽한데, 잠시 혼자가 된 코피노를 데려와 먹이고 재운다. 또 다세대 주택에서 트렌스 젠더, 장애인과 이웃하며 정을 나눈다.
그들을 향한 동정이 아닌 각 개인의 삶을 인정할 수 있는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어딘가 소영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누군가의 인생을 그저 어둡게만 보지 않았다. ‘죽여주는 여자’는 늙고 병들어도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어 죽음을 택한 노인들과, 청재킷을 입고 젊은 시절 화양연화를 가슴에 품고 사는 소영의 인생이 그저 불쌍한 걸로 귀결되지 않는다.
‘죽여주는 여자’는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만 남길 뿐이다. 정답 없는 먹먹한 질문에 답을 내리는 건 당신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