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귓속말'이 정의가 실현된 진정한 해피엔딩을 맞았다. 권선징악으로 끝났지만, 그 의미는 남달랐다.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연출 이명우, 극본 박경수)이 23일 방송된 17회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악행의 중심에 섰던 법무법인 태백의 수장 최일환(김갑수 분)과 최수연(박세영 분), 강정일(권율 분)은 자신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수단으로 쓰던 법에 의해 심판 받았다.
'귓속말'은 시작 전부터 '펀치' 제작진이 다시 뭉친 작품으로서 주목 받았다. 선 굵은 필력의 박경수 작가가 선보이는 첫 로맨스라는 점과 '내딸 서영이'로 검증된 호흡을 자랑하는 이보영 이상윤의 만남, 독자적인 연기 색채를 갖춘 권율과 박세영, 명품 배우로 꼽히는 김갑수 김홍파 김창완 김해숙 등 다양한 요소가 '귓속말'의 흥행을 예상케 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귓속말'은 첫 방송부터 전작 '피고인'의 인기를 이어 받았다.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13.9%(이하 동일기준)이라는 높은 성적으로 시작한 '귓속말'은 17회에 이르기까지 큰 부침 없이 호조를 이어왔다. 마지막회인 17회는 20% 벽을 뚫는 데 성공하기까지 했다.
물론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귓속말'은 경쟁작 '역적'과 시청률 1위 자리를 두고 여러 번 엎치락뒤치락 했다. 뚜렷한 '한방'이 없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 중 하나였다. 시청률 면에선 1위 기조를 이어갔으나 화제성 부문에서는 미미했다. 다소 투박했던, 서사가 약한 로맨스도 지적의 대상이었다.
'펀치'에서 돋보였던 송곳 같은 풍자보다는 의미심장한 대사들로만 점철되는 경향 또한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서로 '뒷통수'를 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는 시청자들에 피로도를 높인다는 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의 '뒷통수'를 치는 반전이 이어지다 보니 오히려 이 타이밍에서 반전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반응 또한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귓속말'은 유의미한 가치를 남겼다. 바로 '권선징악'이다.
법을 이용해 비리를 저지르는 법률비적, 속칭 법비가 판치는 '귓속말' 속 사회는 우리네 사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국정농단 파문이 일며 헌정 초유의 탄핵 사태까지 벌어졌던 올 상반기의 정국이 '귓속말'에는 은유와 비유로 담겼다. 그리고 법비들은 법을 이용해 자신들의 위기를 넘기려 했지만, 결국 법에 의해 정의로운 이들에 심판 받았다.
마지막회 말미에 나온 이동준의 대사는 '귓속말'이 지향하는 바를 더욱 명확히 보여줬다. 피고인으로서 법정에 선 이동준은 "변명하지 않겠다. 날 무겁게 벌해 그 누구도 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걸 알려주고, 국민들에게 정의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희망을 갖게 해달라"고 말했다.

여기에 신념을 가진 주인공 신영주는 부패한 조직에 반기를 들고 이동준과 마찬가지로 내부고발에 나섰다. 그런 그가 경찰직을 버리고 택한 건 다름아닌 변호사였다. 법을 통해 정의를 구현하는 또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법비마저 법에 의해 처벌 받는 시대. '귓속말'의 권선징악 결말은 여느 드라마의 권선징악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 시대를 반영하는 자화상으로서, 안방극장에 '귓속말'이라는 작품이 가진 의미를 다시금 재확인시켰다.
앞서 이명우 감독은 작품의 제목을 기존 '진격'에서 '귓속말'로 바꾼 이유에 대해 "'이 세상에서 귀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작은 속삭임'이라는 의미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사회에서 오피니언 리더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작은 속삭임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것에 귀 기울이는 주인공, 그로 인한 큰 변화가 시작점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감독의 말처럼, '귓속말'은 여주인공이자 사회의 기득권이 아니었던 신영주의 작은 외침을 외면한 법관 이동준의 잘못된 선택에서 많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이후 이동준은 신영주의 '귓속말'과 같은 작은 소리에 귀 기울였고, 그 지점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법으로 심판 받는 법비들, 다만 하나의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약자를 지나치지 않는 사람들. '귓속말'이 그린 변화의 시작은 곧 우리네 사회 모습과도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