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제보 메일이 빗발쳤던 적이 있었나. 최근 기자의 메일함에는 Mnet ‘프로듀스101 시즌2’ 출연 연습생들과 관련한 팬들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내용은 다양하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에 대해 항의하거나, 출연 연습생의 부정행위를 폭로하거나, 폭로에 대해 다시 해명을 하는 식이다.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계속되는 폭로 및 해명 양상이 점점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시즌1 역시 열기와 화제성이 대단했지만 팬덤 간 공세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화면을 나노 단위로 쪼개 멤버들의 매력을 알리거나 돈을 모아 선물을 준비하는 정도였다. 지금은 어떤가. 지하철역에 홍보 전광판을 내걸고 번화가에서 홍보물을 배포하는 건 애교 수준이다. 상위권 연습생의 독주를 막고자 인지도가 낮은 연습생에게 투표해 표를 분산시키고(‘견제픽’이라고 부른다), 타 연습생의 부정행위 의혹을 날선 눈으로 감시한다.
팬들의 행동은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며 치밀하다. 이들은 어디에서 여론이 형성되는지 혹은 어떻게 여론을 주도하는지 면밀하게 논의하고 행동한다. 팬 커뮤니티에는 ‘머글’(특정 팬덤에 속하지 않은 일반 시청자들을 이르는 말)들을 공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수시로 오간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 자료는, 설령 그것이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수준급의 완성도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같은 공세는 의도에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다. 팬덤 간의 싸움은 내부적으로는 치열할지언정 외부자인 ‘머글’들에겐 피로감만 안길 뿐이다. 너무 많은 팬덤이 너무 많은 정보와 주장을 너무 빨리 쏟아낸다. ‘머글’들의 귀는 자연히 닫힌다. 프로그램은 다수 대중으로부터 유리화된다. 결국 ‘프로듀스101 시즌2’의 팬덤 경쟁은 ‘그들만의 리그’로 남을 공산이 크다. ‘국민’ 프로듀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

이것은 극성 팬덤의 문제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팬덤이 극성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프로그램의 성격에 기초한다. 연습생들의 모든 언행이 평가 대상이 되고 이것이 곧 생존 여부로 직결되는 생리, 그러나 모든 맥락을 다 보여줄 수 없다는 한계. 이것은 팬들의 조바심을 발동시키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다.
엠넷 특유의 연출 방식 역시 팬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프로듀스101 시즌2’은 출범 초기부터 악마의 편집과 분량 편차에 대한 우려를 한 몸에 받았다. 연출은 맡은 안준영 PD는 “연출자로서 이름을 걸고 말하겠다. 악마의 편집은 없다”고 말했지만 그의 스타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팀 내에서 이탈자를 만들고 갈등을 부각시킨 뒤 극적인 화해를 그리는 방식 말이다. 이탈자로 지목되거나 갈등의 중심에 선 연습생의 팬들은 마음 졸이며 TV를 보고 맥락을 분석해 해명자료를 만든다. 극성스럽지 않으면 피해자가 된다.
분량 편차는 또 어떤가. 안준영 PD는 “촬영부터가 경쟁이다. 더 많은 매력을 보여주는 스포트라이트가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지만, 처음 1-3회에서 내내 1위를 차지하던 마루기획 박지훈 연습생의 분량은 눈물 나게 적었다. 시청자가 매력을 느끼는 연습생에게 연출자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연출자로서 감이 부족한 것이다. 그리고 응원하는 연습생의 당락이 연출자의 부족한 자질로부터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직감할 때, 팬들은 손수 ‘영업’을 시작한다. 극성스럽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국민 프로듀서님들의 손으로 소년의 꿈을 이뤄 달라’는 ‘프로듀스101 시즌2’의 호소에 코웃음을 치게 된다. 남자판 아이오아이를 만드는 것은 국민들이 아니라 연습생의 팬덤일 뿐이며, 다수 시청자들을 소년들의 꿈에서 멀어지게 만든 것은 방송사의 악마적 편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