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방송되는 EBS '다큐 잇it'에서는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실을 통해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청소노동자의 현 위치를 조명한다.
◆사람들이 나타나면 사라져야 하는 ‘유령’, 청소노동자
새벽 4시, 6411번 버스의 첫 차는 2대가 동시에 출발한다. 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어둔 새벽길을 달리는 버스의 승객은 90%가 청소노동자다. 첫 차를 타고도 늦을까 봐 발을 동동 구르는 이들은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일찍 일을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한다는 게 청소노동자들 사이의 불문율이다. 잠깐 쉴 때조차 남들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화장실 안, 청소도구들 사이에서 아픈 다리를 쉬어 가거나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비좁은 휴게실에서 고단한 몸을 뉘여야 한다. 일어서면 천장이 머리에 닿고, 앉으면 다리를 펼 공간조차 부족한 휴게실도 사람들의 눈에띄지 않는 곳에 있다. 후미진 건물 안, 지하 주차장 옆, 계단 아래다.

2019년 8월, 한 대학교 휴게실에서 쉬던 청소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폭염이 계속되던 여름날, 에어컨도 창문도 없는 1평 남짓한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휴게실을 바꿔 달라는 요구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한 생명이 희생되고 나서야 지하에 있는 휴게실은 지상으로 옮겨졌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훤한 대낮에도 전등을 켜야 하는 지하 휴게실에서는 환풍기를 통해 지하 주차장의 매캐한 공기가 드나든다. 1m 50cm가 안 되는 낮은 천장 때문에 수시로 머리를 부딪히고, 곰팡이가 핀 차디찬 벽에는 등을 기댈 수도, 비좁은 바닥에서는 다리를 펼 수도 없다. 아무리 답답하고 기침이 나도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점심시간에는 휴게실 밖으로 나와선 안 된다. 수도 없이 개선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현실.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은,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인식이 어떤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누군가의 관심이 바꾼 현실
올해 8월 초, 한 대학교에 처음으로 청소노동자 노조가 설립됐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현실 속에서 노조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긴 했지만, 엄두를 내진 못했다.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저하던 청소노동자들이 용기를 낸 건 이 학교 학생들 덕분이다. 매일 새벽, 직접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함께 청소하며 노조의 필요성을 설득한 학생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하지 않고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학생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수시로 휴게실을 찾아와 힘든 점이 무엇인지, 필요한 게 뭔지 확인하고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가 하면, 아무도 바꿔주지 않는 휴게실을 학생들이 직접 모금해 고쳐주기도 했다. 학생들의 관심은, 아무리 요구해도 바뀌지 않던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을 서서히 바꿔가고 있다.
◆우리는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휴게 공간은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대다수의 청소노동자는 정당한 요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후환이 두려워서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겠다, 인원을 줄이겠다는 말은 청소노동자들이 늘 듣는 소리다. 60대 이상의 여성이 대부분인 청소노동자들에게 이 말은 곧 생계가 걸린 협박이다. 제작진이 만난 청소노동자들은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하기를 두려워했다. 제작진과 청소노동자들의 만남을 감시하는 눈길도 있었다. 어렵게 용기를 내서 출연을 결심한 청소노동자들의 바람은 한 가지였다. 일을 계속하고 싶기 때문에 불합리한 현실이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