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하반기 넷플릭스 K-드라마는 승승장구했다. '오징어 게임'의 대성공에 이어 '마이네임', '지옥'까지 공개와 동시에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그 흥행 질주에 빨간 불이 켜졌다.
24일 전 세계에 스트리밍을 시작한 공유, 배두나 주연의 '고요의 바다'가 보는 이들을 그대로 '침묵의 바다'에 빠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요의 바다'는 이야기 전개 속도가 느리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보이고 있다. 흥행의 골든타임을 망각한 모양새다.
영화나 드라마의 흥행을 좌우하는 골든타임은 10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상영 시작 10분 안에 관객들을 사로잡지 못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된 '지옥'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지옥'은 시작한 지 5분 만에 지옥의 사자들이 나타나 지옥행을 고지 받은 사람을 무참히 폭행하고, 고열로 태워 죽였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시청자들이 '지옥'의 남은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이유가 됐다.
10분이 힘들다면 최소한 1회 안에서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전 세계 히트작 '오징어 게임'은 1회 마지막, 유혈이 낭자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미스터리한 '오징어 게임'의 서막을 알렸다.
그런데 '고요의 바다'는 극 초반부 킬링 포인트가 없다. 넷플릭스 이용자들이 이 콘텐츠를 계속 봐야 하는 이유가 빈약하다.

'고요의 바다'는 필수 자원인 물이 고갈돼 황폐해진 근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달에는 5년 전, 방사능 유출로 인해 버려진 '발해 기지'가 있다. 한윤재(공유) 대장과 송지안(배두나) 박사는 발해기지에 남겨진 중요한 자료를 회수하라는 특수 임무를 받고 달로 떠난다.
그런데 우주항공국은 한윤재, 송지안을 비롯한 대원들에게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송지안은 생존 확률 10%인 미션을 우주항공국이 정말 성공하길 바라는 것인지 의문을 품는다.

도착한 발해기지는 방사능 유출로 죽은 시신이 아닌 익사체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발해기지 안에 살아있는 미지의 생명체가 있다. 여기에 대원 하나가 '물'에 감염되고,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대량의 물을 토하다 결국 죽음을 맞는다.
여기까지가 언론에 공개된 3회까지의 주요 줄거리다. 요약하자면, 달에 버려진 미스터리한 기지엔 익사체가 가득하고, 그곳을 찾은 대원들의 생명을 미지의 무언가가 위협한다는 내용이다. '고요의 바다'는 이 핵심 콘셉트를 설명하는데 무려 세 시간을 할애한다. 배우들의 호연과 우주라는 신비로운 배경은 느린 스토리텔링에 함몰된다.

공유와 배두나는 같은 임무를 받았지만 가치관이 다르다. 미션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인 공유와 과학자로서 진실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배두나의 대립은 느슨한 전개에 그나마 긴장감을 준다.
최항용 감독은 자신이 연출했던 동명의 단편 영화를 장편으로 확장하면서 개성 강한 다양한 인물들을 추가했다. 이준, 김선영, 이무생, 이성욱 등 탐험대원으로 변신한 배우들은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미지(未知)에서 발생하는 공포와 긴장감을 실감 나게 그린다.

언론에 사전 공개된 분량은 8회 중 3회까지였다. 3회 이후 전반부의 아쉬움을 다 덮을 만한 굉장한 이야기가 펼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이야기가 중후반부에 펼쳐진다 한들,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시청자들은 영화관에 들어서는 관객과 다르다. OTT 이용자들은 인내심이 많지 않기에 '노잼의 바다'에 빠진다고 생각이 들면 곧장 다른 콘텐츠를 찾아 나선다.
스트리밍은 시작됐고, 이제 평가는 넷플릭스 시청자들의 손에 넘어갔다. '고요의 바다'를 끝까지 헤엄칠 시청자들은 얼마나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