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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ㆍ정약전ㆍ정약종 사로잡은 천주교…엇갈린 운명은?(역사저널 그날)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천주교로 인해 엇갈린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삼형제의 삶이 펼쳐진다.

25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조선 최고의 천재 형제들을 사로잡은 천주교, 엇갈린 정약용 삼 형제의 운명을 재조명한다.

◆서양 선교사들의 신박한 선교 수법

동양에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던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리치. 관심을 끌기 위해 자명종, 천체망원경 등 서양의 진귀한 물건들을 가져가는 것은 물론, 역사에 길이 남을 세계지도, '곤여만국전도'까지 직접 제작한다. 유교가 지배하고 있던 동양에서 천주교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과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게 된 과정을 확인해본다.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정약용 삼 형제, 천주쟁이가 되다

노론이 정치를 주도하던 조선에서, 성호 이익으로 대표되는 남인 학자들은 주자학의 경직성을 비판하며 서양의 학문을 폭넓게 받아들인다. 남인 세력의 대표 격인 정약용과 그 형제 역시 이 과정에서 서학으로서 천주교를 자연스레 접하게 된다. 그러다 사돈인 이벽에게 천주교의 가르침을 받게 되고, ‘마치 은하수가 무한한 것과 같았다’며 본격적인 천주교 신자의 길로 들어선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을 ‘천주쟁이’로 만든 천주교의 매력을 소개한다.

◆조선을 발칵 뒤집은 제사 금지령

유럽 열강들의 선교 경쟁 과정에서 1715년 우상숭배로 규정되어 버린 동양의 제사 문화. 하지만 조선에서는 70여 년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접하게 되고, 정약용 형제를 비롯한 천주교 신자들은 배교냐 순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천주교의 제사 금지령이 왜 조선에 늦게 알려졌으며 이후 조선의 천주교사는 어떻게 전개되는지, 천주교 서울교구 김지형 제오르지오 신부의 유머스러운 입담과 함께 알아본다.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역사저널 그날'(사진제공=KBS 1TV)
◆배교와 순교, 엇갈린 운명

천주교의 제사 금지령에 따라 양반 윤지충이 어머니의 신주를 불태워 버린 진산사건. 이 사건 이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되고, 정약용과 둘째 형 정약전은 천주교를 버리고, 셋째 형 정약종은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다. 서로 엇갈린 운명을 맞이한 정약용 삼 형제의 삶. 그들이 배교하면서 혹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꿈꿨던 세상은 과연 무엇이었을지 알아본다.

맹선미 기자 msm@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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