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의 재능을 보고 작아지는 순간에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룩백'은 '체인소 맨'과 '파이어 펀치'의 작가로 잘 알려진 후지모토 타츠키가 2021년 발표한 단편 만화다.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사랑받은 '룩백'이 실사 영화로 스크린 위에 구현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담담하면서 따뜻한 연출이 더해져 원작과는 또 다른 감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원작의 큰 줄기는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를 조금 더 세밀하게 쌓아 올렸다.
영화는 학교 신문에 네 컷 만화를 그리는 자신만만한 소녀 후지노(데구치 나츠키 분)와, 후지노를 동경하지만 세상 밖이 두려워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쿄모토(마키타 아쥬 분)의 만남에서 출발한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은 만화를 그리는 재능도 다르다. 후지노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만들고 인물의 개성을 살리는 데 뛰어나며 쿄모토는 놀라울 만큼 정밀하고 섬세한 배경을 그려낸다.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두 사람은 만화를 함께 그리며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간다.

두 소녀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담아내는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력은 이 영화에서도 빛난다. 감정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쌓아가는 방식이 두 소녀의 관계와 잘 어울린다. 일본 시골의 풍경과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인물들의 감정에 스며든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 이 영화가 주는 잔잔한 위로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후지노 역의 데구치 나츠키는 자신만만하고 당찬 후지노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만화를 그리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거침없이 몰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쿄모토 역의 마키타 아쥬는 그야말로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은둔형 외톨이의 수줍음과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의 어색함, 만화에 온전히 빠져드는 모습까지 쿄모토 그 자체였다. 특히 말보다 표정과 행동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이 인물의 순수함을 잘 살려낸다.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역 배우 나나세 후리와 오카다 로카도 눈에 띈다. 특히 어린 후지노가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쿄모토를 마주하며 느끼는 동경과 열등감,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어린 쿄모토의 모습 역시 귀엽고 생생하게 살아 있어 원작 속 두 인물이 실제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원작을 좋아한 사람에겐 반가운 작품이고,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나면 원작이 궁금해질 것이다. 슬프고 마음 아픈 장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다.
두 소녀가 만화를 그리며 함께 보낸 시간과 서로에게 남긴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나. 누군가의 재능을 부러워하면서도 내 일을 계속해본 적이 있었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 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인정받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오래전 잊고 있던 기억이 하나둘 떠오른다.

제목 '룩백'은 뒤를 돌아본다는 뜻이다. 지나간 시간에는 기쁨도 있지만 아픔과 후회도 남는다. 그렇다고 그 기억을 모두 지울 수는 없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어떻게 간직하고 앞으로 나아가느냐일 것이다. 원작을 아는 관객이라면 마지막에 한 문장이 떠오를 것이다.
Don't Look Back in Anger. (지난 일에 분노하며 돌아보지 말자.)
8일 개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00분.

